여덟번째 이야기
1914년 12월 26일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더벅머리를 한 사내아이가 바가지로 물을 퍼서 갑판 위에 뿌리고 있다.
" 챡착... 쏴아아아 ”
고여 있던 핏물과 기름기가 몽글몽글하게 엮여 아래로 씻겨 내려간다.
“ 알고, 우리 재수... 야무지게 일 잘한데이...”
아래턱 전체에 수염을 기른 김 씨가 한 손에 작업칼을 들고 말했다.
칼날에서는 가을 고추보다 붉은 핏물이 뚝뚝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른의 칭찬에 사내아이의 입이 위로 슬쩍 올라갔다.
김씨는 계속 말을 건넸다.
“ 냄새가 지독허지... 그라도 이게 하나 버릴 게 없다카이...
살맛은 소보다 달달허고, 흐물거리는 이 기름가꼬 불도 키고, 동동구리모도 만들고... ”
“ 히, 거기다가 창자가지고 국도 끓여 먹잖아요!! 저도 알아요. 아저씨..”
“ 허허, 그래.. 우리 재수 똑 소리난다카이.. 할배 닮아 그른나?”
“ 아뇨. 할배는 내가 엄마 닮았다고 하던데요.. 눈 빼곤 코랑 입이랑 영판 엄마래요..
엄마 얼굴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얼굴 안에 엄마가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엄마 얘기에 아이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 흐흠!! 헛헛...”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미안해진 김 씨는 괜한 헛기침을 한다.
마지막 남은 고래의 살점을 능숙하게 뼈에서 잘라내고
김씨는 굽은 허리를 쭈욱 폈다.
“ 알고고고고.... 죽겠다카이... 아 따마... 식겁해뿟네...”
“ 어이, 김씨.. 살 다 발라냈는가.. 영감님이 물으신다...”
어느 세 김 씨 곁으로 절름발이 이 씨가 다가와 물었다.
절름발이 이씨는 고래잡이를 하다 2년 전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정강이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와
고래의 꼬리에 부딪쳐 바로 아작이 났다.
이 씨는 그 날 사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1912년 10월 15일
그 날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모양새로 종일 안개같은 비를 뿌렸다.
뱃사람들 중 다섯 명이 이유 없이 설사병으로 생사를 헤매고 있었고,
칠 일이 넘게 고래 코빼기도 보지 못한 채 포경선은 울산 바다 위를 유령처럼 떠다녔다.
포경일을 한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 에이,, 씨부럴... 귀신 고래는 염병... 돌고래 새끼도 안 보이고..
이거 뭐꼬... 진짜... 니미럴.. 퉤..”
이씨는 갑판 위 난간에 기대 바다 아래로 침을 퉤 하고 뱉었다.
“ 잡히는 날이 있으면, 안 잡히는 날도 있는 기지... 비 맞으면서 뭐하노 여기서..”
김씨가 바싹 말린 다시마를 뜯으며 말했다.
그의 턱과 인중에 수염이 간간히 돋아나 있다.
“ 미친 새끼... 고래배 타고 나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래씨가 말랐나...”
“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선장이 고래 안 잡아도 월급, 배 타는 날 횟수로
쳐준다 아이가.. 영감님도 고마 조용히 계신데 니가 왜 나서고 이카노....”
“ 새끼... 그래도 잡으면 더 준다 아이가. 나는 마음이 급하다. 얼른얼른 고래 잡아가지고
고향에 내리가스 꽃분이 데꼬 살 끼다. 이번에 내리믄 이젠 고랫배 다신 안 탈끼다.”
“ 아따... 빙시같은 놈... 니는 꽃분이 타령 언제까지 할끼고? 그 꽃분이가 언제적 꽃분이고... 정신 차리라... 기카고, 니 배 안타믄 까딱하다가 일본놈한테 끌리 가는 거 모리나?
빙신 아니믄 다 잡아가는 거 니 몰라서 씨부리나...”
“ ..... 그게 아이고.....고래 잡고 난 날은 잠을 제대로 못 자겠데이... 니는 안 그렇나?...”
“ 갑자기 뭔 소리고... 고래도 물고기라 생각해뿌라... 소 잡고 닭 잡고 그런거나 마찬가진기라... ”
“ 새끼... 니도 맴이 찝찝한갑데이.. 그리 말하는 거 보믄...”
“ ... 물고기 치곤 커서 그런가? 바닷물이 피색으로 번져서 그런가? 아니면, 그 울음소리 때문에 그런가?... 쪼매 찝찝한 마음이 있긴 있제...”
“ 그게... 물고기도 아이고, 소도, 닭도 아니라서 글타... 그거는... ”
“ .....??”
바닷바람과 합쳐진 안개비가 이 씨의 코 위로 송골송골하게 맺혀 흘렀다.
둥글게 맺힌 빗물이 떨어져 두툼한 입술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 뭐꼬? 와 말을 하다 마노?”
김씨가 다그쳤다.
“ 고래 등에 작살을 내리 꽂으면 ... 사람 가슴팍에 내리 꽂는 드르븐 기분이 든다...”
“ 마... 니가 그카믄... 나는 아직 숨 붙어 있는 사람 오장육부 도려내고 뼈 발라내는
짓하는 기라... 그거 다 쓸 떼기 없는 생각이다.. 니도 똥병 낫나? ”
김 씨의 말에 이 씨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한쪽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김 씨가 다시 말했다.
“ 우짜카든, 나라 뺏긴 판국에 고래 걱정할 때가? 사람도 잡아다 고래처럼 난도질하고
팔아넘기는 판국에. 우리는 우리 살 생각이나 하자... ”
“ 쳇... 그래서 내가 지금 돈 모으고 있는 거 아이가. 돈 빡빡 긁어가지고, 꽃분이 데리고
저 지리산 산골로 들어갈끼다. 일본놈도 못 찾을끼다...”
“ 알고... 꿈도 좋데이...”
“ 새끼... 봐라... 긴가 아닌가... 나는 한다믄 한데이...
내는 꽃분이캉 살믄스 머스마 둘, 가스나 둘 낳고 잘 살끼라...”
“ 니가 그래 찧고 까불어봐도 니 맘데로 이 배가 안 멈춘데이... 다 선장하고 저기 저쪽에 ... 한영감이 결정하지...”
이 씨는 김 씨가 눈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이 배의 선장 일본인 아키야마와 한 영감이 보였다.
멀리서도 그들의 얼굴은 꽤나 심각해보였다.
“ 뭐라 씨부리노? 한 개도 안 들리네... 씨발..”
“ 마!! 마!! 씨발이 뭐꼬. 씨발이... 일본 놈은 그렇다쳐도 영감님한텐 말조심해라.”
“ 와? 그래봤자 노인네지.. 지가 뭐라꼬?”
“ 니 눈까리엔 저 몸이 노인네로 보이나? 니 같은 놈은 한 손으로 으깨뿐다.
저 팔뚝 봐라..”
“ 퉷.... 씨발... 그래봤자 일본 놈이 부려 먹는 조선놈인데 뭐...”
“ 니가 아직 정신이 안 차려지는 갑네...니 내니깐 참는 기지.. 내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 그 따위로 말하믄... 니 이 배 위에서 소리 소문 없이 배떼기 찔려서 물고기 밥된다카이.. 입조심해라이... 니 왜 이 배 선장이 일본인인데도 조선인한테 똑같이 돈 준다고 생각하노? 그게 다 저기 한 영감님 때문인기라.. ”
“ 작살 좀 꽂는다고 그게 그케 대단한기가? 나도 하는 기라..그건..”
“ 을그... 니는 이 배 탄지 삼 년이 지났는데도 모르겠드나? 눈치 없는 놈...
한 영감은 고.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젖은 다시마 조각을 바다 뒤로 던지고 김 씨는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새 이 씨의 머리카락이 푹 젖어들어, 툭툭 굵은 물방울이 이마 위로 떨어졌다.
비는 시원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친 것도 아니었다.
진눈깨비처럼 빗방울이 공기 중에 바람을 타고 춤을 췄다.
“ 쳇, 고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그런게 말이 되나? ”
배의 뒤쪽 난간에 홀로 남은 이 씨는 잔잔한 검은 바다 위를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그 때였다.
배 아래로, 커다란 물보라가 일었다.
그것은 아래에서 위로 회오리치듯 점점 거대한 동심원을 만들었다.
“ 뭐꼬?”
이 씨는 난간에서 몸을 좀 더 밖으로 내밀고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물 위로 층을 이룬 안개를 뚫고, 알 수 없는 거품이 올라왔다.
뽀글거리던 거품 한 가운데서 검은색 물줄기가 갑자기 “촥-”하고
나오며 이 씨의 두 눈을 명중했다.
“ 으아아악”
이 씨는 두 눈이 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그대로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물거품을 뚫고 시커멓고 거대한 귀신 고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씨의 비명 소리를 듣고 갑판 위로 달려 나온 선원들.
“ 알고. 알고. 저게 뭐꼬?”
“ 이게 뭔일이고?”
“ 이러고 있을 때가 아이다.... ”
고래는, 그들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큰 덩치였다.
서둘러 이 씨를 물속에서 건져내야 하지만, 처음 겪어본 일에 다들 우왕좌왕했다.
그런 선원들의 틈을 비집고 한 영감이 그대로 바다 아래로 몸을 던졌다.
“ 영감님!! 영감님!!”
“ 뭐하노?? 빨리 보트 띄워라..”
두 세명이 따라 물 속으로 몸을 던지고, 나머지는 보트 줄을 끊어내 보트 안으로 올라탔다. 작살과 란스 등 몇가지로 사냥 도구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얌전하게 내리던 비가 순식간에 사나운 표정으로 바뀌어 폭우를 내렸다.
수면 위로 간신히 떠오른 이 씨는 반쯤 뜬 눈으로 힘겹게 고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래의 꼬리는 묵직한 도끼날처럼 이 씨의 정강이를 두들기고 들었다 던져버렸다.
“ 으으으윽.. 악.”
고래의 일방적인 공격에 이 씨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씨발.. 이대로 죽는구나.... 꽃분아.. 꽃분아 ’
다리 아래쪽부터 불에 데인 듯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튀어나온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나온 것이 보였다.
고래는 그 바로 위로 다시 꼬리를 하늘 높이 쳐들어 내리치려고 했다.
이 씨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