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이야기
......
이를 꽉 물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있는데 다리 말곤 어디에서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귓가에 철썩 거리는 일정한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 씨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보았던 장면이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친 듯이 날뛰는 성난 고래 위에 한 영감이 타고 있었고
그들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얽혀 있었던 것이다.
영감의 손엔 란스도, 작살도, 식칼도 없었다.
그는 두 손바닥으로 고래를 토닥이며 달래는 듯 했다.
자신의 다리 한쪽을 뭉개버린 그 거칠고 거대한 괴물을 말이다.
영감은 그것을 순한 강아지처럼 대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 씨는 정신을 잃었다.
이 씨의 고향은 통영이다.
울산의 바다와는 또 다른 통영의 바다가 있다.
냄새만 딱 맡아도 이 씨는 둘을 구별할 수가 있다.
유채가 흐드러진 야트막한 언덕 위에 꽃 같은 소녀가 앉아 있다.
살이 올라 오동통한 양 볼이 마냥 귀여운 소녀가
한 손에 유채꽃을 들고 뱅글뱅글 돌리며 장난질을 한다.
소녀는 먼바다에서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반짝이는 바다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유채 언덕 위로 좀 더 올라가
동백나무 아래에서 젊은 사내가 소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사내는 이 씨다.
“ 꽃분아~ 꽃분아~”
이 씨가 양 손을 입에 갖다 대고 소녀를 부른다.
바다 내음이 묻어 있는 바람이 콧노래처럼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꽃분의 기다란 댕기머리가 그 노래에 맞춰 살짝 춤을 춘다.
소녀가 이 씨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 꽃분...아...”
갑자기, 이 씨의 눈가에서 눈물이 차올라 주르륵 흘러내린다.
기다란 댕기머리는 온데 간데 없고,
얌전하게 말아 올린 쪽진 머리를 한 꽃분이 자신을 바라본다.
왜 이제야 온 것이냐며 원망 섞인 눈빛이다.
“꽃..분아... 꽃분아... 꽃 분..”
- 타닥타닥타아닥
고래 기름에 담겨진 명주실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선실을 채운다.
침상 하나 놓을 수 있는 작은 방 안은 독한 약 냄새로 가득 찼다.
무슨 몹쓸 꿈을 꾸는지
이 씨의 눈가에선 눈물 줄기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영감이 입을 열었다.
" 깼나?”
아직 눈가에 물기가 그득한 이 씨가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 으으으악악”
오른쪽 다리의 고통으로 이 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누웠다.
“ 지 다리..으. 잘린 겁니꺼?”
그는 누운 자세로 아래 쪽 부분을 훑어 보았다.
부목을 댄 채로 헝겊을 칭칭 감아 올린 틈에 피가 흠뻑 묻어 있었다.
“ 잘랐으면 좋았겠나?”
영감은 흰색 가루가 담긴 한지 조각을 이 씨에게 건넸다.
“ 이게 뭡니꺼?”
“ 잘랐으면.., 니 지금 말도 못했을 기다. 일단 이 가루 좀 무라. 아픈 게 좀 나을기다.”
이 씨는 코를 대고 가루의 냄새를 잠시 맡다가, 영감을 쳐다보았다.
“ 니는 뭐 그리 의심이 많노? 싫으면 말든가.”
영감이 자신 쪽으로 손을 뻗어 한지 조각을 가져가려고 하자,
이 씨는 흰색 가루를 얼른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흰색 가루가 입 안으로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속이 녹아내리면서 아래쪽에서 퍼져 올라오던 고통이 먹먹해졌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한 영감이 물었다.
“ 니 새끼고래 잡았나?”
몽롱한 기운에 빠져들던 이 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 무슨 소린교? 내가 와 그걸 잡습니꺼?”
“ 그라지... 내가 분명히 이 배에선 새끼 고래 잡는 거 안 된다고 말했었제..니도 알고 있을끼고. 니는 꽤 머리도 돌아가는 놈이니까 까묵지도 않았을끼야. 근데 니 와 새끼고래 잡았노?”
“ 뭔 소린교? 나는 그런 적 없어예.”
“ 다시 묻는다. 새끼 고래 니가 잡았나?”
“ 영감님이 지금 뭐라 카는 줄 모르겠심더.... 와이캅니까?”
불안에 가득 찬 이 씨의 눈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
그것과 마주한 한 영감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갑기만 하다.
“ 돈 때문이가? ”
“ 진짜 아이라니깐 와이캅니꺼? 지는 아니라예!!”
이 씨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 잡고 절규했다.
“ 영복아. 니 이름 맞제? 이 영복이. 니가 말 안 해도 나는 다 이미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니한테 기횔 주는 기다. 니한테 새끼 잡으라고 시킨 놈이 누꼬.”
한 영감은 한 손으로 시퍼런 도끼날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도, 원망도, 울분도 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 다리 구실 못 하믄 덜렁거리고 니도 귀찮겄제?”
얼굴이 허옇게 변해버린 이 씨는 저도 모르게 이가 달달 부딪힐 정도로 몸을 떨었다.
“ 죄....죄... 죄송함미데이... 딱...진짜 딱 한 번임미데이... 한 번...”
얼굴 위로 들어 올린 이 씨의 검지 손가락 하나가 애처롭게 떨렸다.
“ 누꼬.”
도끼날을 아래로 내리며 한 영감이 다시 물었다.
“ 하..... 선.... 선장님임...미더...”
이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영감은 그 대답을 듣고,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이 씨는 다시 입을 천천히 뗐다.
“ 선장님이 새끼 고래 두 어번만 더 잡으믄, 두둑하게 챙겨서 그날로 바로 뭍으로 보내준다고 했슴미더... 새끼 고래 잡으믄 그 기...길잡이 고래가 가만있지 않는다는 거 알고는 있지만... 지도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심더...죽을 죄를 지었어예..... 죄송함미데이.... 영감님... 용서해주이소....흑흑”
급기야 이 씨는 아이처럼 손으로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흐느꼈다.
한 영감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 씨의 흐느낌도 잦아들었다.
“ 고마... 알았다.”
라고 말하며 한 영감이 의자에서 일어서자, 이 씨가 침상에서 허리를 쭈욱 펴고 급하게 물었다.
“ 영.. 영감님.. 지는 배에서 쫓기나는 겁니꺼?”
“ 와? 니가 원한 거 아이가? 당연히 내리야지.”
“ 안 됩미더... 고향에 지만 바라보는 식솔들이 셋이나 됩미더..집 안 남자들은 죄다 징용에 끌리가고....
다리까지 다쳐서 제대로 일도 못 구하는데 ....제발... 여기 있게 해주이소. 뭐든 할 께예. 불...불쌍하게 흑흑 봐 주이소...함 만 살려주이소. 영감님. ”
“ 사내 자슥이 와 그리 우노. 고추 달린 거 맞나.”
“ 흐흐흑....”
“ 니 다리 뭍에 가서 지대로 치료받고 온나. 삼일 줄 꾸마. 고향도 다녀오고. 어머이도 뵙고 온나. 삼 년이나 됐제? 못 본지... 그카고 꽃분이가? 꽃순이가 하는 처자도 아직 맘 안 변했음 혼례도 치르고 오고... ”
한 영감은 저고리 앞섶에서 헝겊 주머니 한 개를 꺼내 건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씨에게 한 영감은
“ 받아라. 받아도 되는 기다.”
라고 덤덤히 말했다.
영감에게서 건네받은 손바닥만한 주머니는 꽤 두둑했다.
그 안에는 백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다.
“ 이....이게 ..이게 뭡니꺼? 영..영감님..”
이 씨는 너무 놀라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 와? 봐도 모르긋나. 니가 벌벌 떠는 돈이지... 니 다리 치료도 받고... 장가도 갈라카믄 그 정돈 있어야제..
뱃삯 받을라믄 아직 이 년은 더 남았을끼고. 니가 무슨 돈이 있것노. ”
영감의 말이 끝나자,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오열했다.
“ 알고...알고.... 영감님.... 진..진짜 고맙심더... 지 생명의 은인이시라예...지가 지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케 도와주시고.....흑흑흑....목..목숨 바치겠슴미더... 영감님...받아주이소... 흑흑”
“ 아이고. 야야.. 고마해라.. 돈 몇 푼에 목숨 말 하는 거 아이다. 다시 포경선에 탈 때는 하지 말아야 할 거는 하지 말아라. 그럴 자신 없음 그냥 고향 땅에 있으라. 알긋나.”
“ 예....예... 꼭 다시 이 배로 올라와서 영감님 모실낌미더...두고 보이소.”
“ 알았다. 그 일은 그 때가서 보재이... 이틀 뒤에 뭍에서 보트 하나 들어오기로 되있다. 니는 그거 타믄 된데이. 이제 좀 쉬그라.. ”
영감은 이 씨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문 쪽으로 돌아섰다.
“ 영..영감님..”
“ 와 그라노?”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 영감은 고개를 돌렸다.
“ 근데예... 지가 바다에서 본 게 이해가 잘 안 됨 미더... 지가 헛것을 본 거겠지예?”
“ 뭔 소리고? 알아듣게 말해라.”
“ 그 괴물 같은 게.... 그니까 영감님이 그 큰- 고래를 맨 손으로 위에서 쓰다듬는 걸 지가 본 것 같아서예.. 작살도 아니고,, 맨 손으로.. 그게 말이 됩니꺼?”
“ 와 말이 안 되노.”
“ 예?? ”
“ 뭐시 그리 놀라노. 지 새끼 죽어서 맘 찢어지는 어미한테 작살까지 꽂아야 긋나? 그게 괴물 짓인기라... 인간이 괴수지.. 괴수야...”
“ 그 놈이.. 아..아니 그 고래가 어밉니꺼?”
“ 맞다.”
“ 그래예.... 근데 그거를 영감님은 우째 아셨습니꺼?”
“ 지가 애미라 카드라. 니가 지 새끼 죽잇다꼬 니 죽일라 카드라.”
“????”
어안이 벙벙하고 놀란 표정으로 이 씨는 한 영감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하는 말을 당최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내가 미친놈 같제. 마. 그래 생각해라. 그게 속 편타. 이제 나는 고마 간다.”
영감이 나가고, 문은 닫혔다. 대마 냄새가 그윽하게 퍼지는 선실 안에서 이 씨는 오랫동안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