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번째 이야기
12월의 바다는 더없이 어둡고 쓸쓸하다.
야간 당직 시간이 흘러가면서 바닷바람이 점점 더 거세게 분다.
선장실 벽에 동그랗게 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파도가 거칠게 보인다.
그 위로 보이는 불그스름한 달은 짐짓 차가운 얼굴로 하늘을 채우고 있다.
선장은 영감 앞의 빈 잔에 사케를 부었다.
시큼하고 달달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팽팽하던 공기가 조금은 느슨해졌다.
“ 손주는 좀 어떻습니까?”
일본인 치고 그의 조선말 수준은 꽤 높았다.
선한 눈빛에 둥근 콧방울을 가진 그는 퍽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 쪼마 나아졌지예....”
누런 솜옷을 겹겹이 입은 영감은 사케 한 잔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놓았다.
“ 다행입니다. 정말.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 고래 잡는 일을 이제 고마해야겠다...”
결대로 정리된 선장의 눈썹이 살짝 꿈틀하더니 이내 정리되었다.
그는 자신과 한 영감의 잔에 같은 양의 사케를 적당하게 부었다.
배가 살짝 흔들리는 지 잔 안의 든 술이 조금 출렁거렸다.
“ 그렀군요.”
선장은 술잔을 한 손에 들고 난로 가를 서성대며 건조하게 답했다.
석탄 난로가 설치된 벽 쪽으로 뜨끈한 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 열기를 바라보다 영감이 있는 쪽으로 뒤돌았다.
“ 좋습니다. 영감님. 하지만 약속은 지켜주시죠.”
돌상처럼 앉아 있던 한 영감이 고개를 들어 선장의 눈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 약속.... 약속.... 움하하하하하”
영감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과장되고 우렁찬 웃음소리는 별안간 딱 하고 끊어졌다.
선장은 그런 영감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 지금 약속이라 했나? 선장이 할 말이 아인 것 같은데?”
“ 무...슨 말입니까?”
“ 이번에는 또 어떤 얼라 시켜서 새끼 잡았노?”
“ 영감.”
“ 하, 몰라서 묻나?”
“ 물론, 저는 모르고 묻죠.”
“ 지금 다 죽자는 말이가?!!!”
영감의 얼굴이 분노에 흔들리고, 몸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뚜벅뚜벅.. 선장은 술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영감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 다 살자고 하는 말입니다.”
“ 새끼 고래 잡아다 죽이면서 길잡이 고래 찾을 라는 거 아인교? ”
“ 영감이 날 도와주지 않으니.... 나로써도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니겠소?”
“ 이 씨 병신 되는 거 못 봤나? 내 손주 얼굴에 귀신 짓 생긴 거 니 못 봤단 말이가?”
영감은 호랑이처럼 으르렁 거리며, 급기야 선장의 멱살을 잡았다.
“ 봤지. 봤어! 그러니깐 길잡이 고래를 찾아 마무리하고, 이 배에서 얼른 내리자고!! 그걸 얻지 못할 때까진 아무도 못 내려. 아무도!!!!!”
선장은 이제껏 보지 못한 강인한 얼굴로 분노를 쏟아냈다. 평소의 평온한 얼굴을 한 그와는 너무 달랐다.
마치 가면을 던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서로의 멱살을 붙잡은 채 한동안 타는 듯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선장이었다.
“ 5년이 지났습니다.”
거칠었던 숨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 길잡이 고래는 잡는 게 아니라고 내가 골백번 말했다 아이가.... ”
“ 압니다. 하지만 영감님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그걸 죽이자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선장의 눈빛이 흔들리며, 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마음이 약해진 한 영감은 이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눈깔만 뽑는 거랑, 죽이는 거랑 뭐가 다르다 말이고?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죽을낀데...”
그 때, 선장이 영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영감은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저도 압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 물론, 다치는 사람도 생기겠죠. 하지만.... 영감님은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고래와 통하는 뭔가가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고래의 말을 들으시고, 고래도 영감님의 말을 듣죠. 고래에 관한 영감의 꿈도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유인까지만이라도 해 주십쇼. 눈을 뽑는 일은... 제가 스스로 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이는 선장.
그런 선장의 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영감.
그의 얼굴에 안타깝고 불편한, 너무나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다.
잠시 후, 한 영감은 굳은 얼굴로 힘들게 입을 떼었다.
“ 선장... 니 사정을 모르는 건 아이지만도... 자네가 말한 것처럼 내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 그래서 내가 자네를 도울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기는 자네 딸을 살리는 게 아니라카이...위험해 질끼다... 내 말이 미친소리 같겠지만도, 내 말을 믿어야 한 대이... 그 길 밖에는 없다. 욕심을 내리 놓으라. 이제 그만하그래이.”
영감은 선장의 양 어깨 위에 살포시 두 손을 올려놓았다. 단단한 어깨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 욕...심.. 욕심...”
선장은 작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무대 위 연극배우처럼 그의 감정선은 아까와는 급격하게 달라져 있었다. 선장은 한 영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 좋습니다. 영감님 말씀. 무슨 뜻인지. 저는 여태껏 영감을 조선인이라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영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다른 조선인 선원한테도 언제나 적당한 대우를 해줬습니다. 아니, 적당한 게 아니군요. 아주 분에 넘치는 수준이었죠.”
영감의 표정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그러나 선장의 말은 계속되었다.
“ 나는 영감을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친구의 어려움을 모른 척 하진 않죠. 당신들이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는 잘 알지만, 일본인도 친구에게 신의는 가지고 있습니다.”
영감은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물었다.
“ 하고 싶은 말이 뭐꼬? 선장 본심을 말해 보소.”
“ 영감과 영감 손자는 안전하게 이 배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의열단 핵심 간부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말입니다. 한 동 수. 일본 경찰이 쥐 잡듯이 잡고 있는 광복의열단 행동대장.. 영감의 아들이죠? 자랑스럽겠습니다.
역시. 영감의 핏줄은 보통 피가 아니군요.”
“ 겁박하는 기가? 내를 잡아끌어서 일본 경찰에 넘길라꼬?”
“ 그럴 리가요? 그럴 생각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해에 있는 당신 아들을 그들보다 빨리 찾아내서 별 탈 없이 가족 곁으로 보내 줄 계획까지 염두하고 있습니다. 경찰을 속이기 위해서 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지요... 워낙 아드님께서 겁이 없으셔서 그뒤처리가 쉽지 않네요... 영감, 이런 게 친구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친굽니까?”
“ ..... ”
영감은 입을 굳게 다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거운 침묵이었다.
“ 한동주도 늙은 애비보단 지 아들 안위에 더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선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시위를 당긴 듯이 영감이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 육시랄.... 이 염병... 니 지금 우리 손주 어찌 하겠단 말이가? 어?!!”
“ 그러니까 좀 도와달란 말입니다!! 영감! 나도 거기까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애한테까지 손 댈 만큼의 괴물은 되지 않게 해 주십쇼! 분명, 영감의 꿈에 12월 끝에 길잡이 고래가 다시 한 번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5년 동안 기다린 기회를 헛되이 날려 보낼 순 없습니다. 도와줄 순 없다면,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선장은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낸 후 거칠게 숨을 몰아셨다. 영감은 절망한 눈빛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 선장이 말하는 내가 가졌다는 그 능력이란 게.... 얼마나 괴로운 건 줄 아나? 세상 온갖 것들의 마음을 다 들을 수가 있다. 그거는 지옥이야... 지옥... 들끓는 욕심이 바다 끝까지, 깊은 곳까지 뻗어서 멈추지를 않는다꼬. 얼마나 더러븐 일이고.... 어리석은 일인기라....그캐서 나는 인간보다 고래를 믿는다..고래가 한 마리를 주면, 나는 그 딱 한 마리만 잡겠다고 약속한기라. 그란데 내도 인간인기라... 내 꺼를 지킬라꼬 결국엔.....”
영감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원한을 풀어내듯 흐느꼈다. 심각한 얼굴을 한 채로, 선장은 귀 기울여 들었다.
“ 재수를 부탁함미데이.. 선장.”
갑작스런 영감의 부탁에 선장이 놀라 물었다.
“ 무슨 말.. 씀이십니까? 영감...재수를?”
“ 선장, 내 말 단디 들으라. 이건 눈알만 뽑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닌기라. 배 안에 사람들이 다 죽게 될 끼다. 선장 니도 목숨 내 놓고 해야 되는 일인기라. 내 그 동안 고래 억수로 잡아 준 거 잘 알제? 그게 내 목숨보다 더한 값어치인기라. 아무리 내가 작살질에 도를 퉜다고 해도 아마... 마지막이 될 기다. 동주는 상해에서 돌아오지 않을끼다. 살아서는. 내 자식이니깐 알지. 그니깐, 선장 니는 반드시 살아서 우리 손주, 재수 데꼬 일본으로 돌아가라.”
영감의 말이 끝나고, 선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자세를 가다듬고 고개를 아래로 깊숙하게 숙였다.
“ 부탁합니다. 영감. 이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