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 세상 모든 아버지를 위하여 1

열두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1909년 5월

일본 규슈 지방의 다이지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우습게 볼만한 곳은 아니다. 그 곳은 전통적으로 고래 포경으로 악명이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키야마 겐토. 선장의 이름이다.

그도 이 곳 출신이다.


아키야마의 집안은 거대 고래 군단을 이끄는 포경 사업을 오랫동안 이어왔다.


그는 물려받은 수 십대의 포경선과 수 백 가지의 포경 기술로 젊은 나이에 많은 부를 쌓았다. 거기다 늘씬한 키와 온화한 외모, 교양 있는 품성을 가진 겐토의 인생은 흠잡을 것 없이 완벽했다. 그의 외동딸, 주리에게 병마가 덮치기 전까지 말이다.

겐토는 스무 세 살에 결혼하여 그 이듬해, 주리를 얻었다.

심성이 부드럽고 자상한 겐토는 딸에게 듬뿍 사랑을 주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주리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마을엔 알 수 없는 역병이 돌았고,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렸다. 처음엔 가려움증으로 시작해서 환부에 고름이 차고, 그 부위가 넓게 퍼지며 피부가 썩어 들어갔다.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자식을 잃는 부모들도 생겨났다.

겐토와 그의 아내도 불행을 피해갈 순 없었다.

별의별 약을 쓰고 용하다는 의사를 데리고 와도, 어린 딸의 피부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이지 마을의 원로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 곳에 포경 사업자 대표로 젊은 나이의 겐토도 참석하게 되었다.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그 주변에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한 노승이 일어나 말했다. 그는 오랜 명상 수련으로 허리까지 흰 머리가 내려와 있었다.

“ 고래 죽이는 걸 잠시라도 멈춰야 한다.”


사람들은 일제히 웅성거렸다. 고래 잡는 일은 다이지 마을의 유일하고 강력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색 제복을 입은 아야노 고였다.

고는 다이지 마을의 행정관으로, 계산이 빠른 인물이었다.


“ 그래도.... 그게 우리 마을의 주 수입원인데... 그걸 멈춰도 괜찮을까요? 사실.... 평소에도 스님은 고래잡이에 대해서 안 좋은 생각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에.... 그 말을 믿기가...”

고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승의 눈빛에 기가 죽어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 물론.... 돈벌이는 줄겠죠. 하지만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선택은 당신들이 하시오.”


고승은 고를 포함한 나머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부딪치며 말했다.

다른 때였으면, 고래 사냥을 멈추자는 고승의 말은 곧바로 무시되었겠지만, 그러기엔 지금 마을의 사정은 아주 심각했다. 고승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각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사방은 나무 장작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뿐이었다.


겐토가 손을 들어 물었다.


“ 스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게 됐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겐토의 질문에 노승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말했다.


“ 내가 이해했듯이, 여러분도 이해할 기회를 드려야하겠지요. 지난 일주일 동안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는 수많은 고래한테 잡아먹히는 우리 다이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너. 너. 너. 너. 너도. 너도. 너도. 그리고 너도.”


고승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너’라고 했다. 놀라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몇은 눈물을 흘리고 두 손으로 비는 이들도 있었다. 겐토는 전자에 속했다. 고승은 마지막으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우리의 결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 나갈 겁니다.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욕심 때문에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마시오.”


그리고 그날 원로 회의의 결과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한 동안 고래 사냥을 멈추기로 합의했다.

다이지의 어떤 고래잡이배도 바다로 출항하지 않았다.

수백 개나 넘는 작살들도 처음으로 한 달이 넘게 피가 묻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마을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역병의 기운이 사라지고, 치유의 바람이 불었다.

잃었던 웃음꽃이 피어나고 자리에 누워 있던 아이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다이지 마을 사람들은 다시 찾은 일상의 행복함에 감사해했다.


그러나 겐토 부부는 더욱 큰 절망에 빠지고 만다.

하나뿐인 딸, 주리는 처음엔 여느 집 아이들처럼 피부병이 점점 호전되었다.

피부병이 깨끗이 사라진 그 날, 딸아이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아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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