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 세상 모든 아버지를 위하여2

열세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 아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그 소리에 겐토는 그만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겐토의 부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딸을 끌어안고 통곡하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왜 갑자기 나한테만, 내 가족에게만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긴다 말인가?


인생의 실패란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겐토였다.

그랬기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어려웠다.

주변 사람들의 그저 그런 위로도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고승이 있는 깊은 산사를 찾았다.

법당 안에는 가부좌를 한 그 노승과 어린 동자승만이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노승은 한 참후에 눈을 뜬 후 ,

겐토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했다.


“ 자네... 여기 웬일인가?”

“ 스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저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 흠... 일어난 일을 그대로 인정하는 건 어떻겠는가?”


겐토는 순간 움찔했다.


여기 앉아만 계시는 스님이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

겐토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노승에게 매달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고개를 숙이고 겐토는 말했다.


“ 그럴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해서 고쳐 보고 싶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 할 수 없군. 자네가 그렇게 선택한다니. 나를 따라오게나. 가는 길 까진 알려주겠네.”


그리고 스님은 겐토를 지나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 깊은 산속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 다섯 개의 동굴을 연이어 지났다.

마지막 동굴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암흑 속이었다.

오로지 발의 느낌과 앞서가는 스님의 소리에만 의지해서 걸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는데. 이런 곳은 정말 처음이었다.


겐토의 온몸에 땀이 축축이 배었고, 걷다가 잠시 멈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앞장서서 가고 있는 노승은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동굴 한쪽 벽을 짚고 있던 겐토를 향해 노승이 소리쳤다.


“ 빛이 보이네. 다 왔어. 어서 오게나.”


겐토는 노승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 아하-”


그의 입 밖으로 자신도 모르게 함성이 나왔다.

시커먼 암흑 속에서 몇 줄기 새어 나온 빛은, 설레는 희망이었다.

그에게 지금 간절한 건 바로 그 ‘빛’이었다.

빛이 쏟아지는 지점은 한 발짝이라도 잘못 헛디디면, 절벽 끝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었다.


동굴 출구 쪽 벽을 붙잡고 있는 켄토의 손이 잘게 떨렸다.


“여, 여깁니까?”


그의 목소리는 원망에 가까웠다.


“ 그래, 저기 ‘그자’가 있다.”


겐토는 스님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바위틈을 뚫고 자란 소나무 가지 아래 작은 구멍이 있었다.

구멍은 사람 머리통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겐토는 고개를 끄덕이고, 최대한 몸을 절벽에 붙여 옆으로 한 발씩 옮겼다.

갑자기 스님이 겐토의 한쪽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부릅뜬 눈으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 정말 저곳으로 들어갈 텐가? 그저 일어난 일을 순순히 받아들일 순 없겠나?”


겐토는 스님의 반대편 쪽으로 걸음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 스님. 그래도 제게 선택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간신히 입구에 도착한 겐토는 힘겹게 제 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입구와 달리 내부는 너비가 꽤 넓고, 천장도 높은 편이었다.

천장에는 오색 가지의 부적들이 붙어 있고, 곳곳에 촛불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자’의 얼굴은 반이 남자, 반이 여자의 형색을 하고 있었다.

매우 기묘하고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더군다나 코끝에서 윗입술까지 기다란 보랏빛의 언청이 흉터가 그어져 있었다.

겐토는 이 상황에서 그 어떠한 의심도 갖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자’에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그’는 겐토의 입 위에 검고 울퉁불퉁한 손가락을 들어 보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다듬지 않은 손톱은 길고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잠시 후에, 겐토는 ‘그자’가 말을 하지 못하는 자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자’는 고개를 숙이고 돌판 위에 손톱으로 무언가를 빠르게 그려 나갔다.

모래와 자갈이 섞인 물가 주변의 돌이라 손톱이 지나간 자리에 눈에 보일만한 누런 선이 그어졌다. 번데기 같은 손톱이 휙휙 지나가고 돌판 위에는 물고기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고 나서, ‘그자’는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가리키고 팔을 최대한 뻗어 눈과 입을 벌려 과장된 표정을 흉내 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하지 못하자 같은 동작을 두 번 더 반복했다.


그는 눈치를 살피다 “ 크다?” 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제야 ‘그자’는 고개를 아래위로 빠르게 끄덕였다. 머리 위에 걸친 구슬방울들이 심하게 떨렸다. 그리고 겐토는 다시 돌판 위 그림을 집중해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새우처럼 몸을 숙이고 양 손가락을 펴고 허리위에 부채처럼 펼쳐 흔들었다.


겐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물?” 이라고 묻자,

‘그’가 다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구슬 알이 흔들리는 소리가 처음보다 크게 났다.

‘크다’와 ‘물’, 그리고 물고기 그림. 겐토는 자신의 무릎을 ‘탁’쳤다.


“ 고래!!!”

겐토의 말이 떨어지자 ‘그’는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긴장하고 있던 겐토가 한 숨을 돌리던 찰나에

‘그’는 날카로운 이빨로 겐토의 오른쪽 손가락을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악!!!”


겐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런 공격에 방어할 틈도 없었다.

곧바로, ‘그자’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겐토의 손가락을 고래 그림 얼굴 부위에 ‘턱’하고 내려놓았다.

핏방울이 아래로 똑똑 떨어졌다.


그리고 그 피 묻은 손가락을 자신의 한쪽 눈에 갖다 대었다.


“눈? 고래의 눈?”


겐토의 답에 ‘그자’의 입이 크게 양옆으로 벌어지더니 혓바닥으로 언청이 흉터를 쓸어내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더니 일어나 고개를 연속적으로 끄덕이며 발을 콩콩 뛰었다.

겐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고래의 눈알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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