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이야기
1914년 12월 28일
바다는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장사꾼들로 북적댔다.
그 장사꾼 대다수는 일본인들이었다.
포경선의 허드렛일이나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죄다 전국 각지에서 몰린 조선인들이었다.
그 조선인들 중에 ‘한 영감’은 유독 특별한 인물이었다.
한 영감이 탄 포경선은 여느 포경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양의 고래를 잡았다.
그는 내로라하는 포경꾼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작살 실력이 좋았다.
그러나 작살을 휘두르는 기술뿐만이 아니라 항상 그에겐 ‘운’이 따랐다.
“ 아니,,,영감님은 무슨 접신이라도 받았는지... 딱딱 가리키는 곳에 고래가 떡 하고
지키고 있다니깐.... 그것도 덩치 큰 놈으로만... ”
“ 어디 그것 뿐이여? 저번에 고래 아가리에서 이 씨 살려낸 건 또 어떻고? ”
“ 그래... 내 생전에 그리 큰 고래는 첨 봤다 아이가..”
“ 진짜 보통 분이 아이다카이.”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지만 한 영감은 배 안에서 가장 쓸모 있는 선원이었다.
다른 선원들뿐만 아니라 일본인 선장까지 영감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눈치였다.
“ 영감님, 오늘 날씨가 영... 그렇네예.... ”
한 영감 옆에 선채로 김씨가 회색빛 하늘을 바라다보며 말했다.
“ 한낮인데 밤처럼 껌껌하미데이...”
영감은 깊은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다 입을 천천히 열었다.
“ 고래 무리가 오는데, 조심해서 한 놈만 지대로 잡아보자....”
놀란 김 씨가 되물었다.
“ 고래 무리요??.... 암만 봐도.... 그런 낌새는 안 보이는구만....”
김 씨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철썩 거리는 텅 빈 바다뿐이었다.
하지만, 회색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점점 덮여지기 시작할 즈음
배 뒤쪽과 떨어진 거리에서 심상찮은 물줄기가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다음부터 포경선 위의 모든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고래 무리가 배 위 선원들의 시야 안에 들어오자, 배 위에선 그물을 내렸다.
그물을 내린 자리 근처로 보트 두 대가 닿았고, 고래 한 마리를 그물 쪽으로 몰았다.
보트 안엔 한 영감을 포함해 여섯 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고래가 있는 쪽으로 작살을 힘껏 던졌다.
슉 슉 슉...
작살은 자비 없이 거칠고 날카롭게 쏟아져 내렸다.
고래 살갗을 스치기도 하고, 단단한 피부에 툭 하고 튕겨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 영감은 실수가 없었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결정적인 작살 한 방이 고래 살 어딘가에 깊숙이 꽂혔다.
그물 아래 고래는 움찔했고, 바다는 크게 출렁였다.
작살이 꽂힌 아래로 새빨간 피가 바다 속으로 흘러내렸다.
고래의 몸부림이 심해질수록 검푸른 바다는 빠른 속도로 진한 붉은 빛의 거품을 만들어냈다.
그 다음으로 몇 개의 작살이 더 꽂혔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고래가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렸다.
포경선 위에 남은 나머지 선원들도 아래의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되었다.
고래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보트 안의 한 사람이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다.
한 영감이었다.
그는 곧장 그물에 걸린 고래 곁으로 다가가 그 위로 기어올랐다.
집 뒤 야트막한 동산을 산보하듯 그의 발은 익숙하고 재빨랐다.
고래 등 위쪽까지 올라가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영감은 기다란 작살을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고래의 분수공에 나 있는 숨구멍 속으로 정확히 내리찍었다.
“ 크으으으으억.....킥....익...”
하늘이 흔들거릴만한 웅장한 소리가 그 주변으로 깊게 퍼졌다.
고래의 숨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 역시, 한 영감이야...”
“ 그래 귀신같이 탁 목숨줄을 끊어 버리네...”
포경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머지 선원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몰려있는 선원들 틈 사이로 더벅머리를 한 꼬마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한 영감의 손자, 재수다.
재수는 까치발을 하고 목을 쭉 빼서 배 바깥쪽을 내려다본다.
“ 와아. 할배요...”
양 볼이 통통한 사내아이의 얼굴에 기쁨이 흘러 넘쳤다.
재수에게 한 영감은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였으며, 유일한 가족으로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 재수의 머리를 누군가가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 할배 멋있제...”
재수가 뒤를 돌아보니, 절름발이 이 씨가 서 있었다.
이 씨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재수는 다시 씩 웃으며 답했다.
“ 예... 할배가 자랑스르브요..”
“ 그래... 자슥... 그물 올라와야하니깐 저 끝으로 가 있으라.. 위험타..”
“ 예.. 알긋스예...”
이 씨는 그물을 올리라는 수신호를 보냈고, 그물을 잡은 수 십명의 선원들이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보트는 아래에서 작업을 마감하고, 포경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배 위 선원들이 정신없이 포획한 고래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
선실 쪽으로 향하던 재수의 숨이 가파지기 시작했다.
“ 헉헉헉... 헉...꺽...윽...”
재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마 위로 핏줄이 꿈틀대며 올라왔다.
급기야 “흡” 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짧게 지르더니 양 사지가 오그라들었다.
근처를 지나던 가장 나이 어린 선원이 재수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 아가 와이카노... 재수야! 재수야!”
산짐승처럼 등허리를 웅크린 재수의 얼굴색이 퍼렇게 변했다.
어린 선원의 소리를 듣고 이 씨를 포함한 몇 명의 선원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 재수가 와이라노? 재수야! 정신차리라.”
“ 아가 갱끼하나? 아 잡긋다.”
“ 고래 잡는 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갱끼는 무슨 갱끼.”
절름발이 이 씨가 옆의 물동이에서 바가지를 퍼 재수의 얼굴 위에 뿌렸다.
그는 정신을 잃고 갑판 위로 쓰러진 재수를 두 팔로 껴안았다.
재수의 얼굴을 확인한 이 씨의 온 몸이 갑자기 떨리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헉... 아... 아 얼굴이 왜 일노... 왜 이렇노...”
“ 뭐꼬? 와 그라는데.... 와?? 알고!! 알고!! 이게 뭐꼬?”
“ 아 얼굴에 구....구멍이 .... 죄..죄다 마마막히..막힜다...”
그렇다.
무슨 영문인지 재수의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들이 꽉 막혀 버렸다.
개펄로 게구멍을 막아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나이 어린 선원은
“ 귀...귀신 짓이여... 이건 귀신...귀신짓..”
이라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무슨 일이야?!! ”
한 영감이 옆에 서 있던 선원들을 밀치며 나타났다.
그는 이 씨의 품 안에 안겨있는 재수의 모습을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당당하고 강인한 바다사나이가 말이다.
그 뒤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일본인 선장이 보였다.
한 영감은 이 씨에게서 재수를 건네받고 시퍼렇게 변한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 재수야.... 재수야.....”
그는 아이의 이름을 계속 불러댔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선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한 영감은 두 눈을 감고 아이의 이마에 입을 갖다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가 어떤 말을 자신의 하나뿐인 손주에게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낮아서 아무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하늘을 가리고 있던 짙은 회색빛 구름이 조금씩 걷히더니 그 틈으로 햇살이 비추었다.
그리고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누군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어? 어? 재수 얼굴이.. 재수 얼굴이... 돌아온다.. 돌아와... ”
배 위의 사람들이 모두 재수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다.
재수의 얼굴에 막혔던 구멍들이 하나 둘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입이 열리고, 콧구멍이 열리고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열렸다.
“ 알고, 알고,,,,,, 살았네... 살았어...”
“ 오메 오메 어쩐다냐... 진짜 다행이여.. 다행이여...”
“ 이게 뭔일이래... 진짜 바다신님. 하늘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원들은 눈물을 닦고, 서로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하늘에 대고 감사하다 절하고, 갑판 위에 입을 맞추며 감사하다 절했다.
한 영감은 품 안에 재수를 꼭 껴안았다.
“캑캑... 할배.. 숨막힌다...”
재수는 작은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한 영감은 “ 알았다... 알았다...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재수야.. 할애비가 미안하데이...”
라고 말하며 두 눈가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할배.. 뭐가 미안한대요??”
재수가 반쯤 감긴 눈으로 힘없이 물었다.
“ 재수야.. 할배가 미안한 게 있다. 그런게.. 니는 몰라도 된다.. 앞으로 이런 일 다시는 없을끼다... 없게 할끼다.. 절대로..”
재수는 한 영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영감은 아주 소중하다는 듯이 손주의 등을 토닥거리다 사람들 무리와 좀 떨어진 거리에 서 있는 선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표정은 기묘하고 너무나 차분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