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이야기
또 다시 물기둥들이 솟구쳤고, 사방으로 퍼진 물방울이 늙은 몸 위로 자비없이 떨어졌다. 얼굴, 목, 팔과 손등에 묻은 점액질들이 빠르게 안으로 흡수되며 그 부분이 붉게 변했다. 그 부위가 간지러워지더니, 점점 볼록하게 부풀어 올랐다. 콧구멍 안에서도 커진 종기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 입구를 막아버렸다. 어렴풋이 재수의 어린 시절, 한 장면과 묘하게 겹쳐진다.
재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얼굴과 몸을 세게 긁었다.
피부 속에 있는 세포들을 찢어발기듯 긁어댔지만, 가려움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으으으으윽윽”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살가죽을 벗겨내서 이 가려움이 사라진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할 것 같았다.
“ 그. 만. 해 제발!!!!! 으아아아아악악악”
입천장이 훤히 보일만큼 찢어진 재수의 입안으로 순식간에 공중에서 솟구치던 물기둥들이 빨려들 듯 사라졌다.
번쩍 눈을 뜬 재수.
방바닥 한가운데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홀로 누워있다. 거짓말처럼 가려움이 사라졌다. 그러나 손톱 사이사이에 파고든 살점과 함께 뭉쳐진 핏덩이들을 보면, 분명 거짓은 아니다. 팔과 다리, 그리고 목 주변에 위에서 아래로 선명하게 그어진 손톱자국. 찢어진 그의 피부 틈 사이로 계속해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거울에 비친 재수의 얼굴은 더욱 처참했다.
들개의 이빨에 얼굴이 뜯겨버린 것처럼 움푹 파인 부분마다 피가 맺혀있었다.
“세드나를 찾아야 해. 절대로 이렇게 죽지 않는다.”
악에 박힌 목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는 게걸스럽게 CCTV화면들을 눈으로 핥기 시작했다. 굶주린 개의 눈알은 본관 예배당을 비치는 15번 화면에서 멈추었다.
예배당의 중앙 자리에 두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성직자 연기에 푹 몰입된 사기꾼이 현란하게 입을 놀리고 있었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희생자의 얼굴을 클로즈업 해 본다.
여자는 처음부터 ‘슬픔’이었다.
둥글고 하얀 얼굴에, 전반적으로 순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불현듯, 재수의 머릿속에 ‘아키야마 주리’의 어린 시절이 짧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상실’에 익숙해 보이는 여자의 눈빛은 ‘몸’보다는 ‘감정’이 먼저 떠오르게 했다. 교회를 지은 후, 그런 대상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저 여자가... 세드나일지도 모른다.’
빨간 버튼을 누르는 재수의 손가락이 환희에 들떠 심하게 떨렸다. 그는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15번. 중앙에 검정 긴 머리, 하늘색 블라우스.”
안내원을 따라 유선이 기다란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 또각또각....
잔잔한 불빛이 흐르는 벽은 터널 안처럼 작은 소리도 둥글게 울려 퍼진다. 유선은 자신이 적어도 20분은 넘게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보다 다섯 걸음 앞서 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대단히 고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신을 지금 어디로 데려 가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렴 어때? 어디로 가는지 내가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그냥 내려 놓아버렸다. 6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의 몸과 마음은 난도질당해 찢기고 밟히고 더러워졌다. 다섯 번의 유산과 시모의 폭행, 자해, 정신병원에서의 3개월.
인생의 어느 부분부터 잘못되었는지,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더 이상은 희망 같은 것에 기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을 도망치듯이 빠나와 남편과 살게 된 시골에서의 나날들.
그녀는 낡은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자그마한 교회로 매일 여덟 시간씩 기도를 하러 다녔다. 하루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그 당시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삶이었다. 쓸쓸한 낡은 예배당 한쪽 구석에, 유선은 그림자처럼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한 목사가 나타났다. 그날도 평소와 어김없이 유선은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목사는 반짝이는 피부와 세련된 외모를 가진 자로, 어림잡아 30대쯤으로 보였다.
시골 마을과는 어울리기 힘든 분위기를 가진 그는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일까?
역시, 이방인은 이방인을 쉽게 알아보는 법일까?
아무 말 없이 유선을 내려다보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닙니다. 여기선, 아무것도 구원받을 수 없어요.”
유선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목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머리 뒤로 비치는 강렬한 빛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일까?
유선은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목사의 얼굴을 마주했다.
“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신가요?”
유선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자매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목사의 얼굴엔 여유가 넘쳤다. 유선은 주변을 둘러보고, 예배당 안에 자신과 목사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매님, 수양동 회색 교회로 가십시오. 그곳엔 자매님을 위한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 따윈 필요 없습니다...”
유선의 목소리에 확신과 불안이 뒤섞여 끝부분이 조금 떨리듯이 들렸다. 그러자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목사가 말했다.
“아니요. 당신은 구원을 원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 달 넘게, 이곳에 틀어박혀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진 않겠죠. 당신은 절실히. 아주 절실히 구원을 원하고 있어요. 구원은 당신 같은 사람한테 가는 게 마땅하죠.”
그 순간. 구원이라고 말하며 둥글게 퍼지는 입술의 모양. 목사와 유선 사이를 지나다니던 햇살에 비친 먼지들. 목사의 뒤로 보이던 십자가에 걸려 있는 예수의 앙상한 다리. 그 공기의 냄새와 미묘한 분위기가 유선의 머리 안에 사진처럼 찍혀 버렸다.
그 이튿날부터, 그녀는 집에서 수 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수양동 회색 교회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회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160이 좀 넘어 보이는 적당한 키에 몸은 마른 편이었다. 손과 발이 하얗고 깨끗했으며, 코는 작았지만 오뚝한 편이었다. 동그란 검은 눈동자 안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 안에서 빛으로 싸인 노인의 몸이 드러났다. 동시에 굵고 나지막한 음성이 방 어디에선가 실뱀처럼 흘러나왔다.
그것은 이렇게 말했다.
“자매여. 그대가 왔도다. 그대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그대의 절망이 끝난다. 그대가 이룬다. 바라던 구원을.”
소리는 위에서 아래로, 바닥에서 천장으로 울려 퍼졌다. 수족관 안의 물이 음파의 진동에 따라 약하게 출렁였다. 여자는 스스로 하늘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고, 짙은 갈색의 주름치마를 벗었다. 속옷을 모두 벗고 알몸이 되었다. 배꼽 아래에 있는 선명한 수술자국 말고는 여자의 몸은 대체로 깨끗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발가벗은 여자는 천천히 물이 찬 수조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적당히 따뜻했고, 부유물 없이 깨끗하고 맑았다. 곧이어 노인의 앙상한 발목이 깊숙이 들어왔고 엉덩이, 등, 목이 순서대로 물속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 들어차자, 수조 밖으로 찰랑하며 물이 조금 흘러내렸다.
교미는 배와 배를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수염고래 같은 덩치가 큰 고래가 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때로 옆으로 생식기를 부딪치거나 수직으로 서서 접촉하기도 했다. 여자와 노인은 물속에서 꼬리뼈에 힘을 주고 몸을 곧추세워 배와 생식기를 접촉했다. 물은 심하게 찰랑거리며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노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핏줄들이 터질 것처럼 팽창해 있었다.
교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노인은 수조 밖에 서 있던 오른쪽 눈을 가린 남자를 불렀다.
“치원아, 아래를 받쳐라.”
남자는 수조 안으로 들어와 아래로 잠수하여 노인의 허리를 두 팔과 다리로 떠받쳤다. 노인은 널빤지처럼 하늘로 배를 내밀고 평평하게 누워있었고, 여자는 말을 타듯이 앉았다. 3분 정도가 흘렀고, 여자의 비명 소리와 함께 요란한 교미는 끝이 났다.
물 밖으로 나온 남자의 양쪽 귀에선 피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