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번째 이야기
(아성의 꿈)
깊은 바다 밑이다.
‘ 여기가 이불 속처럼 포근해. 내 몸 어딘가에 아가미가 있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물속에서 이렇게도 편안할 수가 있지?’
아성은 궁금해졌다.
다리를 간질이는 해초의 흐늘거림과 유유히 지나다니는 작은 물고기 떼들.
그 사이를 서성이는 아성은 동화 속의 인어 같았다. 느리고 조용했다. 해파리 군집이 분홍 물감을 풀어내며 물살에 떠밀려 앞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은 소리 없는 불꽃축제 같았다. 함께 모였다 흩어졌다 분홍빛이 강해졌다가 다시 연해지기를 쉼 없이 반복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축제는 끝이 나고 주변은 다시 암흑으로 바뀌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전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물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바다의 위아래와 양 사방을 가득 채울 것 같은 압도적인 크기였다. 물속을 유영하는 거대한 비행기는 밑바닥에 엄청난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바닥에 잠자고 있던 따개비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고래다. 내 안에 있던 그 고래...”
아성의 얼굴에서 둥글고 커다란 공기 방울들이 연속적으로 피어올랐다.
고래는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크게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과 그 안에 떠다니던 피아노, 텔레비전, 파란지붕의 집과 2인용 소파, 그리고 노란색 자동차 한 대까지 모두 삼켜 버렸다.
아성은 떨어진 거리에서 그 광경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은 온순하고 착했다. 이곳이 선명한 푸른색의 초원이었다면, 고래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 같았다. 그렇다면 아성은 그 젖소 무리를 돌보는 어린 목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목동은 젖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길들일 대상이다.
아성의 얼굴 위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스치고 지난다.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그녀는 두 발로 물살을 박차며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점점 고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매끈한 피부 위에 손을 갖다 대어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자 아성은 마음 놓고 고래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얼굴 부근으로 다가갔다. 둘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을 사이 같았다. 고래의 커다란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잠시 후에 떠졌다. 깊은 눈동자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천천히 움직이다 아성이 있는 위치쯤에서 멈추었다.
검은 달빛이 아성의 몸 전체에 쏟아졌다.
“이제 눈을 떠야지.”
고래가 말했다.
“두려워. 눈을 뜨는 게. 여기 이렇게... 계속 있으면 안 될까?”
아성이 두 팔로 고래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주 커다랗고 투명한 공기 방울이 아성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꿈속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너는 할 일이 있잖아.”
고래가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 일?”
아성이 고래에게서 얼굴을 떼어내며 물었다.
“그래. 할 일. 너는 너의 일을 해야지.”
“그게 뭔데?”
“너도 알고 있잖아. 구원.”
고래의 말을 듣고, 아성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은 얼굴이다. 아성이 다시 말한다.
“난 그런 건 몰라. 구원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
아성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니, 누군가는 해야 해. 그게 너야.”
“왜? 나야? 난 그냥 예쁜 여자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야. 구원 같은 건, 다른 사람 찾아봐. 난 그런 거에 관심도 없다고.”
아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래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아른아른 춤을 추기 시작했다. 꼬리 끝에서 피어오르는 실타래들은 뭉실한 구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고래의 몸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래는 말했다.
“그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야. 있는 그대로를. 넌 이미 준비가 됐잖아.”
거대한 비행기였던 고래가 작은 보트만큼이나 줄어들었다.
아성이 다시 물었다.
“무슨 준비?”
“고통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 더는 죄 짓지 않게 그들을 거두는 일”
점점 줄어드는 고래.
작은 보트였던 크기가 이제는 피아노만큼 작아졌다.
“내가 ...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아성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물론. 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그들이 얼마나 절실히, 간절히, 너의 구원을 원하는지 알게 될 거야. 그러면, 언젠가 ‘그 날’이 오겠지.”
“그 날?... 이라니?”
“그 날. 모두가 구원을 받고 자유로워지는 날. 고통에서 벗어나서 전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날... 바로, 그 날..말이야.”
고래가 말하는 동안에도 몸이 줄어드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한 입에 자동차와 집을 삼켜버린 거대한 고래가 이젠 아주 작은 동전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아성의 입 안으로 쏙 들어갔다.
아성은 눈을 감고 그것을 꿀꺽 삼켰다. 고래는 그녀의 목구멍을 지나 뱃속 어딘가를 헤엄치고 다닐 것이다.
그 때, 물 밖에서 단단하고 기다란 무언가가 쑤욱 안으로 들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희귀한 것의 양 끝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붙어 있었다. 그 열 개의 손가락들은 세심하게 아성의 몸을 감싸 위로 들어올렸다.
“푸아아악, 퉵퉵”
하얀 햇살이 반짝이는 수면 위로 아성의 얼굴이 튀어 올라왔다.
“이제 정신이 좀 드니?”
굵고 아래로 낮게 퍼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목소리다.
천천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는 아성. 세상의 끝처럼 펼쳐진 하얀색 천장 위로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보인다. 푹신한 이불의 감촉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싼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멀뚱히 눈만 껌벅이던 아성이 입을 열었다.
“나, 지금 몇 살이에요?”
치원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잠시 멈칫하다가 부드럽게 달랜다.
“조금 있으면 열 살이 되지.”
“그래요? 난 지금 백 살은 넘은 기분이에요. 갑자기 할머니가 된 것 같아요.”
누운 채로 아성은 담담히 말했다. 그 모습, 치원은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곧이어, 자신의 몸 위에서 헐떡거리던 노인의 벗은 몸이 번개처럼 떠오른다. 순간, 부르르륵 온 몸이 떨리는 아성. 손과 발이 차가워지고, 저도 모르게 이까지 떨릴 정도로 한기를 느낀다.
“괜찮아, 괜찮아.”
단단하고 거대한 품이 어린 아성을 껴안으며 속삭인다.
“이젠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다. 안심해도 돼. 괜찮아.”
치원은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는다. 아성의 떨림이 잠잠해질 때까지.
“어떻게 된 거예요? 그 ... 할아버진... 뭐예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너한테서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신 나타나지 않을 테니깐.”
“ ..... 죽었기 때문에?”
치원은 말없이 아성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버림받은 어린 짐승처럼, 아성은 몸을 작고 둥글게 만 채로 작게 웅얼거렸다.
“고래가 나타났어요. 내가 구..원..이란 걸 한다고 했어요. 내가 싫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묵직한 침묵 속에 아성은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아성은 그 이야기를 치원에게 반드시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군요. 결국 내가 그 구원..이라는 걸 하는 군요. 그냥 ...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일인 거죠. 삼촌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치원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 자신의 품 안에 안긴 소녀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사랑하는 건... 숨겨야 할 일이 아니잖아요.”
담백하게 툭 떨어지는 아성의 말이 치원의 가슴 한복판에 박혔다.
‘이 아이는 언제나 내 마음을 두드리는구나...’
치원은 가슴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오래전, 분홍색 포대기 속의 볼이 빨갛던 아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말랑하고 따뜻했던 온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달콤한 채취. 처음이었다. 평화로움이란 단어를 떠올려 본 것은.
그 때처럼 그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품에 안겨있다.
자신의 출생과 주변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과 사람들...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낳아준 여자에게서 얼굴 절반이 물어 뜯겨버렸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 아버지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단지 치원이 모셔야 하는 절대적 주인이었다.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건, 메마른 마음. 그 하나뿐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고독하며 텅 비어있는 그의 인생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있어서 의미 없던 모든것에 의미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 지금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는구나. 내가 지켜야 하는 단 한 사람이 있구나.’
그토록 오래 찾아왔던 ‘고래를 삼킨 아이’가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다.
이제, 치원은 안다. 자신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에 대해. 하나씩 조각이 맞춰지는 기이하고 잔인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너를 지켜줄 거야. 더는 무서워할 필요 없어.”
치원의 말이 끝나자, 아성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다. 작고 하얀 손가락이 치원의 날렵한 턱 선을 스치듯 지나 올라가더니, 머리카락에 가려진 오른쪽 눈 부위를 살포시 어루만진다.
“ 알아요. 그리고 믿어요. 당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마음이 들리는 일은 이런 기분이군요. 당신은... 왜 그토록 어둡고 차가운 시간을 지나온 걸까요? 왜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할까요? 왜 하필이면 나와 당신 우리여야 할까요?”
별처럼 반짝이는 아성의 눈을 바라보는 치원. 그의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 줄기가 연이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