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밝게 자란다.

좋은 것을 기억하는 아이들.

by 김용만

<목요일 발행 했어야 하나 학교 축제 관계로 늦어졌습니다. 양해바랍니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중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체벌이 허용되는 때였다. 가출한 학생이 있었다. 학생을 찾으러 사천까지 갔었다. 데리고 왔다. 체벌을 했었다.

"이 놈아, 정신을 차려야 할 것 아니냐. 언제까지 이렇게 살꺼냐. 부모님들도 걱정하시고 하는데 학교는 졸업해야 할 것 아니냐." 잔소리를 하며 체벌했다. 학생은 묵묵히 맞았다. 그리고 자리에 들어갔다. 당시엔 이게 옳은 방법인지 알았다.


학생과 대화하다 알게 되었다. 이 학생은 집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부모님은 학생과 있을 땐 다른 모습을 보이셨다. 학생은 집이 무서웠던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주말에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 집 나왔어요."

평소 어려운 집이었다. 아버님이 안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와 생활하는 학생이었다. 소위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장난끼가 많고 공부는 안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 어디고? 밥은 먹었나?"

"아니요."

"어디고 샘이 데리로 갈께."

당시 난 총각이었다. 학생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라면을 끓여주고 과일을 먹였다.

"와? 와 집나왔노?"

"그냥 짜증나서 나왔습니더. 엄마가 머라캤어예."

"이유가 있을꺼 아이가!"

"모르겠어예. 그냥 집 가기 싫어예!"


밥 먹이고 과일 먹이고 온갖 시중을 다 들었다. 마음 풀어주려 애썼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샘! 이제 갈께예. 저 갈랍니더."

"어딜?"

"집에예."

엥? 무슨 소린가?

"집에 간다고?"

"네. 배도 부르고 어두워졌으니 집에 가야지예."

당시 중1이었던 이 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갔다. 난 이 놈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아 이 놈은 가출을 한 게 아니고 그냥 집을 나왔던 거구나...그리고 저녁 때가 되니 집에 가는 거구나...'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인문계 였지만 예체능을 준비하던 학생들도 꽤 있었다. 이 학생들은 저녁 보충수업을 듣지 않고 6시 전에 하교했다. 대부분 학원을 갔었다. 우리반에 미술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있었다. 우연히 알았다. 미술학원에서 작품전을 한다고 했다.

그 날이 학생 작품을 전시하던 때였다. 마침 야간자율학습 감독이었다. 우리반에 들어갔다.

"오늘 000 미술학원에서 작품전시 하는 날입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학생은 미술이 공부만큼 중요한 학생입니다. 우리반 친구이니 선생님과 같이 작품전에 친구 응원하러 갑시다."

"와!!!" 아이들은 좋아했다. 야자를 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친구 응원에 감동해서 지른 함성이라고 믿고 있다.

교실 칠판에 크게 적었다.

"담임선생님과 마실 나감, 곧 돌아올 것임. 도망친 것 아님."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음료 한 박스를 샀다. 밤에 학생들과 학교를 나와 걷는 길은 유쾌했다. 신나하는 아이들을 보니 귀여웠다. 학원에 도착했다. 원장선생님을 만났다. 음료를 드렸다. "누구누구 담임입니다. 우리 학생, 잘 부탁드립니다." 원장선생님께서 깜짝 놀라셨다. "아이고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반 친구들도 오셨군요. 학생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학원에서 만난 학생은 달라 보였다. 앞 치마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물감이 많이 묻어 있었다. 예술가 같았다.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난 학생 작품을 찾아 보고 장미 같은 것 한 송이와 작품이 멋지다는 응원의 포스트 잇을 붙여두었다.


대안중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말 그대로 학교 부적응학생이 있었다. 겨우 1학년이었는데 노는 물이 달랐다. 아니 심각했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했다. 욕도 곧잘 했다. 학교를 자유로이 다니던 학생이었다. 점심 시간 아이가 운동장에 앉아 있었다.

"뭐하노?"

"그냥예, 학교 나가고 싶어서예."

"갑갑하제?"

"네"

"니 자전거 탈 줄 아나?"

"네. 왜요?"

"저 자전거 갖고 온나. 자전거 타고 학교 나가서 실컷 타고 온나."

"예? 나가도 됩니꺼?"

"샘이 허락했다 아이가. 단! 내 시야를 벗어나면 안된다. 할 수 있겠나?"

"네!!!샘! 고맙습니더!"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주변에 논 뿐이었다. 학생은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나갔고 학교 주변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다. 30분 정도 타고 들어왔다. 표정이 밝았다.

"샘! 좋습니더. 다음에도 또 타도 됩니꺼?"

"그래, 그래라. 샘한테 꼭 말해야 된다. 자전거 타고 학교 생활 견뎌보자. 수고했다."

"고맙습니더!"

웃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일반 중학교, 인문계 고등학교를 거쳐 대안학교에 근무 중이다. 아이들 삶도 어른 삶과 다르지 않다. 집에선 편하고 학교에선 사회생활을 한다. 어른들 직장생활이 아이들 학교 생활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른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작은 배려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친절한 교사가 아니다. 하지만 나를 고마워하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생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한다.

"선생님께서 그 때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예."

"선생님께서 그 때 저에게 간식을 주셨어예."

"선생님께서 그 때 저에게 이렇게 대해 주셨어예."

"선생님께서 그 때 저의 어깨를 토닥여 주셨어예."


난 좋은,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감히 어찌 내가,

적어도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노력을 할 뿐이다.


나에게 상처 받은 학생도 있다. 내가 무례하게 대했던 학생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10번 못해줘도 1번 잘해주면 그것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렸다.

난 당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아이들은 고맙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밝게 자란다.


난 밝게 자라는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고맙다.


내일도 아이들을 만나러 학교에 간다. 한번씩 학교 가는 것이 싫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좋다. 좋은 동료들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행복한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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