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업무란?

교육을 위한 업무, 업무를 위한 업무

by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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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말 쯤, 학교 공문 번호를 보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확실한 건 10,000번이 넘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생산된 문서번호였다. 1년에 10,000건의 문서가 생산되어 저장되고 발송되고 보고되었다는 뜻이다. 보통 학교 수업일수가 190일이다. 학생들은 1년 중 190일 등교한다. 물론 교사들은 그보다 더 많이 출근한다.


1년 10,000건의 공문은 무슨 뜻인가? 1년 365일 모두 출근한다고 해도 하루 평균 27건이다. 200일 출근으로 잡으면 하루 50건이다. 교사들 주 업무는 공문처리가 아니다. 교육활동이다.


헌법상 교사의 교육권은 교사가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주적이고 전문적으로 학생을 교육할 권리이다. 하지만 학교에선 교육할 권리와 교육 준비를 하는 시간보다 업무처리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아니 업무처리 시간이 거의 다다. 그러니 학교 교사들은 학교 밖에서 가르치는 분들에 비해 수업 준비가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승진제도 또한 결이 비슷하다. 학생 곁에서 학생을 잘 가르치고 학생과 함께 하는 교사가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학생과 멀어질수록 승진에 유리한 구조다. 업무처리 능력, 관리자들 평가가 막강한 근무성적평정, 보직교사 경력, 연구학교 근무, 벽지학교 근무, 연수, 석박사학위, 연구대회 입상 등 점수로 승진하게 된다.


잘 가르치는 것보다 학교 일을 잘하는 교사가 승진하기 유리하다는 뜻이다.


난 공문처리에 미숙하다. 학교 업무를 주로 담임과 인성부장만 맡아왔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과 생활하거나 학폭, 학생자치, 학부모회 등 직접 만나고 몸으로 뛰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공문처리가 능숙하지 않다. 학교에서 업무처리로 보면 능력있는 교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교육부, 교육청에서 지시 공문이 내려오면 난 빨리 처리하지 못한다. 자료집계 공문이 와도 당황한다. 갑자기 정치인들이 3년간 무슨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이 오면 너무 싫다. 다음시간이 수업인데 3년치를 내가 어떻게 확인한다는 말인가?


지금은(3월 초) 교복비 지원, 뭐뭐 지원, 뭐뭐 조사 등 엄청난 공문이 쏟아진다. 취지는 공감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학교에서 교사가 일일이 확인해서 보고해야 하는가? 학생의 가정상태를 알 수 있는 곳이 학교인가? 교복비 지원 행정을 학교에서 하는 것이 최선인가? 대한민국 처럼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네트워킹이 잘 되어 있는 곳에서 교사들이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쉬는 시간마다 학생 찾아다니며 물어야 한다. 학부모님과 통화해서 여쭈어야 한다. 가정통신문을 나눠줘도 제 때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의 일을 처리하면 또 다른 일, 공문이 학교로 들어온다.


무슨 대회, 무슨 기념, 무슨 행사, 무슨 박람회, 온갖 공문이 학교로 들어온다. 부장교사할 땐 출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공문 정리다. 보고해야 할 것, 언제가지인지, 당장 해야할 것, 어디서 찾아야 하는 지, 이런 것들을 쳐내고 나면 수업이다.


정말 궁금하다. 교사는 학교가 직장이다. 근무지다. 학교 관련 일을 거의 교사들이 한다. 학교 컴퓨터 관리, 교사가 한다. 학교 인터넷, 교사가 한다. 공기질 검사. 보건 교사가 한다. 소방훈련, 행정실과 같이 교사가 한다. 안전교육, 강사와 같이 교사가 한다. 청소도구 구입, 교사가 한다. 기숙사 청소, 교사가 기안한다. 각종 민원, 교사가 한다. 손님 접대, 교사가 한다. 정수기 관리, 교사가 한다. 건물 노후화로 인한 공간 혁신, 교사가 행정실과 한다.


학생 생활지도, 수업, 교사가 한다.


많은 교육감 후보들이 아이들을 교사 곁으로 돌려 주겠다느니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느니,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느니, AI 교육을 하겠다느니,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느니 한다.


결국 그 일, 교사들이 해야 한다.


참 어렵다. 개인적으로 학교 업무 총량제가 있으면 좋겠다. 사회가 변하니 학교로 계속 새로운 일들이 들어온다. 문제는 일이 들어만 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부에서 내려오든 교육청에서 내려오든 상관없다. 다 일이다. 이 일이 꼭 필요한가?를 수차례 고민한다. 결론은 이거였다.


'면피용'


교육부는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교육청도 내렸다. 문제가 생기면 학교 책임이다. 담당 교사 책임이다. 수업 잘했다고 아이들과 소통 잘했다고 격려받는 교사는 보지 못했다. 일 잘 못 되었다고 문책 당하는 교사는 많이 봤다. 난 임용고시 준비하면서 업무 공부는 하지 않았다. 아니 시험범위에 업무는 없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와보니 80~90%가 업무다.


감히 말한다. 학교가 그나마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은 말없이 업무처리를 하고 학생들 곁에선 버티고 서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교사의 양심을 지키려고 없는 힘 쥐어짜며 아이들 앞에 웃으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늦게까지 업무처리하는 것을 참기 때문이다.


제목과 같다.


교육을 위한 업무는 대환영이다. 하지만 현실은, 업무를 위한 업무가 대부분다.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이 '가짜 일 30% 줄이기' 프로젝트를 보고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좋은 생각이라며 화답했다. 다른 부서도 고민해보라고 했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학교도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면 좋겠다. '가짜 일'이 너무 많다. 교사들 에너지가 업무처리에 많이 쓰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밤 10시 47분이다. 10시 20분까지 학교에 남아 업무처리하고 짜투리 시간, 쓰는 글이다. 그래서 글에 분노가 묻어 있을수도 있다.


내일 이 글을 다시 읽으면 후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겠다.


학교에 교육과 직접적 관련 없는 잡무가 너무 많다. 교사가 할 일이 너무 많다. 교사가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교사에게 교육적 결과를 더 많이 바라는 현실이 고달프다.


가짜 일을 줄이고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 일을 시키려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는가?


결론이다.


교사에게 업무란?


내가 이것 하려고 교사했는가 라는 회의가 드는 부분이다.


이제 남은 일, 마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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