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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예담 Aug 15. 2021

경계선 성격장애 - 나를 좀 이해해 주세요

경계선을 걷는 기분



10살,


“죽어, 나가 죽어라.”

아빠의 고함 소리. 아빠의 손아귀에 힘 없이 휘둘리는 엄마의 몸뚱이.

피가 온 바닥에 벽에 방울방울 튄다.



*

엄마가 외삼촌과 이모, 이모부, 외할머니와 함께 돌아왔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고함 소리.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해변에 다녀왔나 보다. 

바다에 가면 내가 꼭 모으던 구멍 난 흰 조개껍질을 한 움큼 주고 말했다.


“너는 아빠랑 성이 같으니까 아빠랑 살아야 돼.”


그렇게 나와 동생은 아빠와 남겨졌다.

친가 어른들은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간 나쁜 년이라고 한다. 아빠도 내가 엄마를 닮아서 잘못됐다고 한다.


그래서 더 착실히 공부하고 아무 일도 없는 척 지냈다.

근데 이상하게 학교에 가기 싫다.



*

전학 온 학교가 낯설다.

다른 아이들은 나와 다르게 반짝 거리는 것 같다. 


나만 이질감이 든다.


집에 가면 아무도 없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싫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중이 안된다.

죄를 짓는 것 같다.



*

아빠가 자꾸 여자를 집에 데려온다. 안방에서 뭘 하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빠한테 화가 난다. 


아빠가 나에게 생각 좀 하고 살라고 한다.


이렇게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뭘 더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머리가 이상한 것 같다.



*

내가 괴로운 건 내가 감사할 줄 모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탓이라고 한다. 내가 한 일도 하지 않은 일도 전부 나 때문이라고 한다.

아빠 말대로 내가 잘못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이상한 것 같다.


내가 이상한 걸 알면 친구들도 나를 피하겠지.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아무한테도 나를 들키면 안 된다.


내 방안에 혼자 있을 때만 숨이 쉬어진다.


눈을 뜨고 있는 매일매일이 긴장된다.

긴장하는 것도 고쳐야 한다고 아빠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그만하고 싶다.

지나가는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31살,
 

여전히 나 자신이 이상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날 괴롭게 한다. 싫다. 사실 싫은 건 나 자신이다. 


사랑받고 싶다. 칭찬받고 싶다. 관심받고 싶다.


싫어도 좋은 척하고, 억지로 웃어 본다. 

늘 뭔갈 실수한 것 같다. 나는 결국 소외받을 거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왜 말을, 행동을 그렇게 하지?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내가 이해한 만큼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다.

화가 난다. 억울하다.

사람들이 나쁘다. 나쁘다. 나쁘다. 잘못됐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나는 혼자가 괴롭다.


삶이 공허하다.

삶이 의미 없을 만큼 외롭다.


사랑받고 싶다. 칭찬받고 싶다. 관심받고 싶다.





나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 같은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다. 엄지발톱으로 간신히 균형 잡을 듯 예리한 경계선 위를. 까치발 든 발가락이 고통에 피가 철철 흘러 어느 한쪽으로 픽 쓰러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나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허용되는 곳은 시퍼런 경계 위, 거기뿐이다.


언제부터 그 위를 걷기 시작했는지, 왜 걷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벗어 날 수가 없다.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사라지면 편해질 수 있을까?



고요씀.


*이 글은 위윌 자조모임 정회원 고요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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