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무제(無題)

이소라 7집, 그리고 <Trcak 9>.

by 데미안
1689486206718.jpg



이소라의 7집의 앨범 이름은 그냥 이소라 7집이다.


무제無題라는 의미다.


이소라 7집의 앨범에는 Track 1 부터 Track 13 까지 총 열 세 곡이 수록되어있는데, 이들 역시 무제라고 할 수 있다. 수록곡의 이름이 ‘Trcak No XX’로 표현되는 방식은 카세트 테이프 그니까 마이마이 같은 기기들로 음악을 듣던 시절, 그리고 동그란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인 워크맨 같은 기기들에 CD를 넣고 음악을 듣던 시절, 그 기기들에서 수록곡이 표현되는 방식이었다. 각 수록곡마다 가수가 지어놓은 제목은 있으나, 그 시절 아날로그 기계들이 그것을 다 표현하지 못해서, 하나의 곡이 시작할 때 ‘Track 01’, 그리고 ‘Trcak 01’의 재생이 끝나고 다음곡이 시작할 때 ‘Track 02’라는 식으로... 앨범에 수록된 수록곡에 수록 순서를 붙여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수가 지어놓은 음악의 제목을 다 표현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굳이 다 표현하지 않고 무제의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제목이 있음에도 그것을 무제로 만든다는 것은, 고유명사를 일반명사로 치환한 셈이기도 하고, 동시에 존재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보편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나는 나의 노래를 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는 당신의 몫이다. 싫어해도 좋고, 좋아해도 좋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내게 그러하듯이, 나 역시 당신에게 그렇다. 나는 노래를 할 뿐이고, 당신은 들을 뿐이다. 이 앨범의 음악들은 당신과 나를 잇는 매개가 아니다. 이 앨범속의 음악은 음악일 뿐이고, 나도 당신도 오로지 음악과 매개할 뿐이다 ···.


인간의 음악은 유희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본성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서양도 동양도 같고, 니체 역시 음악의 자유로운 속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그것이 가장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라고 칭한 바 있다. 즉, 음악이란 자유로운 바람과 같은 것이어서, 무엇가에 얽매이고 묶이는 순간 부자연스러워진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소라의 7집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자유로운 음악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흥얼거린다. 그 자유로운 흥얼거림은 곧 노래가 된다. 이소라 7집의 수록곡들은 하나의 통일된 메세지를 관통하지 않는다. 컨셉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불어오지만, 그 가벼운 바람은 열기를 식히고, 습기를 걷어낸다. 이소라 7집을 듣고 있자면, 이런 느낌이다. 너무도 맑은 날씨지만 낮은 구름이 곳곳에 걸려있어 맑은 날씨임에도 어딘가 뿌연 높은 산등성이에서. 뜨거운 햇빛과 습도로 지쳐가기 좋은 그런 곳에 서있는 이에게 산들바람이 끝없이 불어온다. 이 미풍은 비구름을 가져오진 못한다. 그렇다고 모든 습도를 없앨 정도의 시원한 바람도 아니다. 하지만, 이 미풍은 지나친 열기를 식혀주고, 지나친 습도를 덜어낸다. 등산객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고 뜨겁고 습하지만, 이 산들바람 덕분에 그나마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의 가장 순수한 본질이며, 사실상 예술이 어떤 거짓도 기만도 없이 청자에게 다가올 때 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이기도 하다.




한 때, 음악을 통한 위로라는 주제로 음악을 수집했던 시절이 있다. 당시 수집했던 음악들을 떠올려 보자면, 어떤 음악은 대놓고 제목이 위로이기도 하고, 어떤 음악은 앨범의 제목이 위로이기도 했다. 그런 노골적인 음악들이 꽤나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그런 음악들을 보며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일단 모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음악들을 수집했다. 그 당시에 수백곡을 수집해서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아있는 음악은 몇 곡 없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너무 뜨겁게 위로하거나, 너무 차갑게 위로하는 곡들, 닭살 돋는 직접 화법으로 위로하는 곡들도 걸러내게 된다. 그렇게 많은 곡들을 걸러내놓고 보니, 남아 있는 곡들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우선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어야 한다. 즉, 노래하는 사람이 직접 작사를 한 곡들.

2. 직접 위로를 말하지 않는 곡들이어야 한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음악으로 잘 전달해야 한다.

3. 시적이어야 한다. 유치한 노랫말은 이제 듣기 어렵다.

4. 나쁜 쪽으로 자의식 과잉도 좋은 쪽으로 자의식 과잉도 좋지 않다.


이런 조건을 내걸자 살아남는 음악들이 몇 없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음악들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아직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있는 이 음악들은 앞으로도 평생동안 듣게 될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소라 7집》에 수록된 <Track 9> 이다. 삶이란 어쩌면 고독한 것이다. 이 삶이 고독하지 않다면 무언가 망가졌거나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인간은 결정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다. 잠깐동안 우리가 함께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함께일 수는 없다. 고독은 우리의 운명이자 숙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한 삶을 마주한 어떤 이가 부른 노래, <Trcak 9>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와닿는다. 우리는 그저 자기자신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 갈 필요가 있다. 평범한 불행과 평범한 고독에 익숙해지고, 오로지 내 자신으로부터 갈구하고, 내 자신으로부터 원하는 것에 목소리를 기울여야 한다. 삶이란 것이 원래 고독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삶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조금 더 귀기울일 때. 개인의 삶은 오히려 주체성을 갖고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고독이 타인과의 관계를 모조리 단절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고립이다. 그저 혼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고독(solitude)은 혼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때때로 기꺼이 혼자가 되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이끌리는 것,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가득 찰 수 있다. 내가 <Trcak 9>을 잊지 못하는 것은 고독을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나의 태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정말 중요한 것을 알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고독. 내가 끝없이 갈구하는 것이고, 끝없이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모두, 오롯이 하나를 위해서다.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까지 한 점의 아쉬움도 부끄러움도 없기 위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