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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우 Dec 25. 2023

훔친 체육복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잊으면 돼

친구가 말했다

담배를 피울 때만 너를 생각하기로 했다

손에서 담배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을 만났다

너와 같이 예술을 하고

너와 맞춘 지갑이 있고

너가 읽었던 책을 읽는 사람

나는 이제 슬픔을 공부한다


할머니를 잃고서 배운 지혜가 생각났다 책을 읽으며 슬픔을 견딘다

너는 할머니와 다르잖아 너는 언제든 만날 수 있잖아


죽었다고 생각해

친구가 말했다

같이 간 카페를 가면 좋아했던 네가 생각나

같이 안 간 카페를 가면 좋아할 네가 생각나

영화관, 파스타, 만두전골, 김사월, 박소은, 퀸사이즈 토퍼, 거북이 케이크, 지하철 투명문, 버스 뒷자리, 같이 걸었던 거리


너는 나보다 빨리 잊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모든 걸 나와 함께 여기 두고 너는 갔으니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까? 쫓아낸 사람은 없는데 쫓기듯 나갔다

그날이 오기 전 나는 서랍장을 뒤져서 너의 체육복을 훔쳤다

너는 언제나 예뻐 보이고 싶어 했는데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은 네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침마다 체육복을 입었다 울적한 기분보다 너를 입는 게 중요했다

이젠 입을 시간이 없다 네가 두고 간 것들과 함께 돌려줘야겠다


왕가위는 누구와 보는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했는데

러브레터는 아직도 너와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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