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우 Sep 03. 2023

"사실 같이 집중해서 게임을 하고 싶었어요"

진짜 마음과 연결하기

두 명일 때는 서로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하곤 한다. 서로 놀 사람이 없으니까. 세 명은 다르다. 한 명을 떼어놓고 둘이서 놀 수 있기에 갈등 해결에 소극적이다. 센터에 한 아이가 들어오면서 저학년에 세 명의 또래가 생겼다. 서로가 서로를 왕따 시키는 피곤한 삼각관계가 되지 않도록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또는 할 수 있을까?

기존에 다니던 어린이 두 명을 불러서 가감 없이 내 걱정을 말했다. 이미 어린이들도 알고 있다.


"우리 OO이가 새롭게 들어왔잖아.  명이 함께 놀면 속상한 일들이 생기곤 해. 그게 뭐일 것 같아?"

"한 명만 빼놓고 노는 거요"

"맞아. 선생님은 그게 걱정 돼. 나를 왕따 시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 없이 편하게 즐겁게 셋이 같이 놀았으면 좋겠어. 너희 생각은 어때?"

"저도 그래요."

"다 같이 놀면 더 재밌어요" 

"그렇다면 다 같이 놀기 위해선 어떤 약속을 하면 좋을까?"


약속을 다 정하고서 한 어린이가 "근데 OO이도 같이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거니까요" 하고 말했다.

"그러네. OO이가 오늘은 아파서 일찍 집에 갔으니까 내일 선생님이 이야기할게. 말해줘서 고마워."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한 명(A), 두 명(B, C)으로 따로 놀고 있는 걸 발견했다. 두 명(B, C)에게 가서 물었다. "한 명은 따로 놀고 있던데 혹시 무슨 일 있었어?", " 어 그게 말이에요"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 명을 따로 불러서 대화를 시작했다. 순서는 공감 능력이 높은 어린이를 앞에 했다. 보통 먼저 하는 질문은 "너는 그 상황을 어떻게 겪었는지 설명해 줄래?"하고 묻는다. 이유는 그 상황을 상대적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말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같이 게임을 하다가 한 명(C)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고, 그걸 본 다른 아이(B)가 웃었는데 나머지 한 명(A)이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치지 말라고, 웃지 말라고 말하다가 저 마음대로 친구들이 해주지 않자 A가 B에게 "너 웃는 거 싸패(사이코패스) 같아"라고 말했다. 그걸 들은 C가 A에게 "그럼 너도 싸패야"라고 말하곤 B에게 "우리 여길 떠나자"하고 놀이방에서 나온 것이다.

상황이 파악되고서 내가 이해한 걸 어린이들에게 다시 이야기하며 확인한다. "선생님이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까 이런 이런 상황이던데, 선생님이 맞게 이해했어?"


그다음 질문은 "너는 그때 마음이 어땠어?"하고 묻는다. B, C는 A의 말을 듣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특히 C는 B가 상처받았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고 한다.  어려웠던 건 A"몰라요"하고 대답했을 때다. 이전에는 이런 대답을 들으면 당황스럽고 난감해 머리가 아팠다. A가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과 이 대화에 건성이라는 비난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 한편에 A가 자기 마음을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연민이 올라왔다. "네가 친구들에게 '너 싸패 같아'라고 말했을 때 네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건 뭐였어?" 이 질문은 마법 같았다. 굳어져 있던 어린이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눈가 촉촉해지며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같이 집중해서 게임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그때 어린이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게임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했니?" 어린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A의 마음을 물어보고 공감하고 알아주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 마지막 질문을 했다. 세 명의 어린이에게 모두 마찬가지다. "그럼 우리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너 생각은 어때?" A와 B는 서로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넌 어떤 걸 사과받고 싶어?", "넌 어떤 걸 사과할 거야?"라는 질문을 하면서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하고/듣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했다.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C의 경우가 그랬다. C는 A와 어린이집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A에게 쌓인 것도 많아 보였다. A가 B에게 싸패 같다고 말한 건 잘못했지만, 그렇다고 A만 떼어놓고 둘이서만 노는 건 따돌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설명에 C는 동의하지 않았다. 옛날에 A자기를 따돌렸기 때문에 자기는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는 건 의미도 없기에 난감한 마음이었다. 일단, 사과하고 싶지 않은 C의 마음과도 연결하자고 생각했다.


"어린이집 때 A가 너를 따돌려서 네가 많이 속상하고 외로웠겠다.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어서 아직까지도 A를 볼 때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셋이서 모일 때 대화하는 걸 지켜만 봐도 괜찮아."

"A가 여전히 너를 따돌릴까 봐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도 느껴. 선생님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 일은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눌까? 선생님은 네가 편안하고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어서 더 이야기해보고 싶어."

린이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고, 세 명이서 만나서 서로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보기

A의 대답"(내 마음이 어땠는지) 몰라요"과 C의 대답"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가장 난감했는데, 연민으로 반응했던 나 자신을 축하하고 싶다. 한 명씩 대화하는 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집중력도 많이 필요해, 중재가 끝나고 체력이 정말 바닥났다. '중재를 잘해야지'라는 마음이 앞서서 내 마음과 연결을 잘하지 못했다는 애도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