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요즘 애인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 후에 전 애인과는 연락하느냐고 덧붙인다. 꽤나 궁금해서 몰래 카톡 프로필을 탐색한 시기가 있었다. 언덕이 높았던 동네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친구의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간다. 토요일 어느 나른한 아침에, 이유도 없이 굉장히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났었다. 친구를 통해 타로 온라인을 시작했다. 재회 운을 보았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헤어진 후에 각자의 삶에선 더 나은 모습일 것 같다는 말이다.
이별을 통과하면서 나는 이것저것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는 글을 쓴 것이다. '토해내기 위하여'라는 매거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글을 인쇄했는데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글에는 자책과 후회, 그리고 원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이 모든 걸 슬픔이 감당해내고 있었다. 나는 사랑이 정말로 무서웠고 그래서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했던 나 자신을 원망했다.
"다시 가벼워졌다. / 땅에 닿으려 애쓰다, 잠에 든다. / 중력은 돕지 않고 피곤이 더해진다."(끝난 뒤)
옆으로만 다닌 사람
그곳을 떠났겠다 싶어 혼잣말을 했다. 너에게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이다.
부담이 되어 나를 영영 찾지 않을 말이었다.
왜?라는 질문은 언제나 너를 괴롭혔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는 이유를 묻고 싶었다.
너는 이유 없이 사는 아이였고, 나는 이유가 있어야 움직였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나지 않기 위해 옆으로만 다녔다.
너는 우연으로 사는 아이였고, 나는 노력으로 움직였다.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보다 써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이 죄스러웠다.
마음이 쫓는 건 거의 없었다.
아직 남아있던 너는, 마음에서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답장을 했다.
그다음 날부터 매일 나는 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난 싸움들에 모두 이기려고 했던 의지를 후회하고 / 사랑하면 지고 싶다는 대사를 이제 이해하고"(내 하트)도 이와 비슷하다.
갈등 자체가 싫었던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많았다. 늘 내 멋대로 한 것이 아니었나, 그녀의 양보를 나는 충분히 인지했나? 라며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가도 나는 그를 원망했다.
"너는 나보다 빨리 잊겠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모든 걸 나와 함께 여기 두고 너는 갔으니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까? 쫓아낸 사람은 없는데 쫓기듯 나갔다"(훔친 체육복)
"너는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 미래 곳곳에 네가 있다 이 거짓말쟁이야"(알트 피)
"나를 사랑한 너를 미워하고 / 너에게 고마워하고 /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 속상해서 울고 만다"(개구쟁이 미소)
가장 정점인 계약 종료라는 글이다. **라는 표시로 욕을 암시하며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이때 막 같이 살던 집을 정리한 시기였다. 몸도 마음도 몹시 힘들었다. 내가 여기 혼자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나를 버렸다는 분노가 다시금 올라왔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글은 이곳에 적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적개심, 분노는 창피한 마음까지 든다.
"슬픔, 눈물, 고통, 자책, 우울, 외로움의 향"(입장은 자유)를 건네받은 나는 일 년은 족히 아팠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전 애인의 짐은 우리 집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꼭 여기에 아직 살고 있는 듯했다. "나밖에 없는 집 현관문을 열다 / 좋은 냄새가 나는 주인 없는 방을 거닐다 / 밥그릇 하나, 국그릇 하나를 찬장에 두고 밥을 먹다 / 빈 베개에 이불을 덮어주다 / 일어나서 좋은 냄새가 나는 방을 거닐다 / 라이터를 켜 인센스에 불을 붙이다"(장면들)
"치즈가 아니라 상한 두유였고 궁지로 내몰린 나의 위는 아프고 커피는 너무 쓰다"(업데이트 안 보기)
시간이 지나면서 이별을 인지했다. 바뀔 수 없는 상황을 깨닫고서 깊이 아팠다. 밤낮으로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밤에 울지 않는다. 아침 일곱 시에 눈물이 난다. / 술을 마시고 울지 않는다. 문서 작업을 하다가 축축한 휴지 더미를 버리러 일어난다. / 코를 훔치다가 어느 밤에 울던 나를 달래주던 네가 생각나서 마스크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슬픔에 잠기기 싫지만 잠겨있고 싶다. 너를 추억하고 싶지만 몹시 괴롭다."(다이빙 선수)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속이 시끄럽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생각해 보니 웃기다. / 너를 생각하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니 낄낄 소리 낸다, 하나도 안 웃기다"(화장실에 가고 싶어)
"익숙해진 추위에, 옆구리가 시린 것도 모르고 잘도 돌아다닌다. 겁쟁이는 술을 먹고서 바닥을 기어 다닐 때만 그 사람의 뉴스를 듣는다."(뉴스)
주로 울었다. 울고 또 울고,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충분히 울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듣고서, 그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니 변주가 생겼다.
슬퍼하는 나를 위로했다. "너를 기억하면 유독 아파하는 세포가 있다. 그들을 감싸는 새로운 물질이 생겼다. 아파도 괜찮아. 슬퍼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내가 여기 있을 게. 이리 와. 내 옆으로 와. 내게 안겨. 내가 널 안아줄게. 착하지, 우리 아가. 다 지나갈 거야. 항상 네 곁에 있을게."(손바닥)
슬픔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향수를 쓰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 생각을 하는 너의 손엔 슬픔의 위안, 향수를 읽고 있다"(버스 안에서)
연인 시절을 추억으로 떠올렸다. "티브이가 없던 그 집엔 노트북 두 개가 있었고 13인치 16인치로 세상에 떠다니는 사랑 이야기를 탐색했다"(얌얌뇸뇸늄늄)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재조명하고 미안한 마음을 고백했다. 여전히 죄책감을 느꼈다. "그 아홉 살이 받아먹고 싶었던 애정을 / 벌거벗은 신체를 내보였던 간절을 / 외면하지 못하고 / 너를 놓고 그와 함께 우물로 돌아갔어. / 옹졸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서 미안해 / 승인할 용기를 남에게 떠넘긴 자의 최후랄까"(승인할 용기)
혼란한 마음은 여전했다. "내 인생에 그 사랑 하나밖에 없다며 체념하다가도 / 영영 누구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고 / 다시 만날 그날을 생각하며 나를 벼리다가도 /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냉소한다."(사랑이 아니고(래))
"지난 날들 분노와 그리움이 엉클어지다가 요즘은 그녀 일상에 행복이 넘치기를, 그 마음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 이 정도면 꽤 영글었다"(그 단어 꽤 자주 쓰네요)
그 사이에 어느 쯤에 시전한 '어쩌라고' 태도는 특히 마음에 든다. 나는 내 고통에 대해서 계속 써내려고 가고 싶었다. '내 아픔, 실연, 이거 다 내 거야.' 하면서 말이다. 특히 길게 이곳에 담고 싶다.
걔가 이런 글 쓰지 말라고 하면 그만둘 거야.
여전히 아름답더라.
반갑게 내 허리를 두르고 나에게 말을 걸어,
깜짝 놀란 나는 어안이 벙벙해.
어제 너 이야기를 많이 했어. 그래서 나를 만나러 왔나?
만나보니 알겠다. 이제는 네가 이전만큼 떠오르지도 않고 눈물도 줄었지만. 여전히 두근거린다. 예지몽이었으면 좋겠어.
무르지만 칼 같은 네게 기대할 수는 없다. 뭐 혼자만의 착각인데. 걔가 부담 가질 만한 것들은 모두 정리했다. 혼자 빠져있게 내버려 둬. 친구들은 최소 이 년은 아프다는데 나는 겨우 삼분의 일을 통과하고 있다.
누군가 이름의 뜻을 물어봤다. 그런 건 없어. 걔가 눈치채지 않았으면 해서 갑자기 만들었거든. 피해 주고 싶지 않아. 구질구질.
친구가 내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걔가 만약 다시 만나자고,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할래? 질문만으로 설레는 건 뭔데. 그럴 일은 없어. 떡 줄 사람은 없는데 생각에 잠긴다.
어쩌라고. 걔가 이런 글 쓰지 말라고 하면 그만둘 거야. 그렇지만 걔는 절대 몰라. 나에게 관심이 없거든. 망상도 허락받아야 하니? 슬픔은 오로지 내 몫이다. 원하지 않지만 바꿀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 그게 바로 슬픔이야.
오늘도 눈물 좔좔. 안구건조증은 걱정 없다, 얘
사실은 따뜻한 눈빛, 다정한 목소리, 포근한 품, 개구쟁이 웃음, 양배추롤, 너무 그리워. 나는 마음껏 그리워한다. 고갈될 거라 생각하고.
아니면 어떡하지?
내가 이별을 소화하는데 많은 이들이 도움이 주었다. 한 친구는 매일 같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괜찮으냐고 안부를 걸었고, 다른 친구는 언제든지 전화를 하라며 나를 위로했다. 또 다른 친구는 내가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언제나 말문을 텄다.
"떠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해둔 커다란 밥. 먹지도 버리지도 못한다. 그러는 사이 한 명씩 퍼간다. 내가 겨우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남아있는 밥을 바라본다."(커다란 밥)
그때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었다. 서비스, 회계, 프로그램, 지원사업, 이직, 클라이언트 등. 그 바쁜 일들로 견뎌낼 수 있었다.
"아주 바쁜 날들이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밤 열 한시에 집에 들어오는 날의 연속이었다."(일곱 포기)
토해내기 위한 마지막 글을 썼다. 2024년 11월, 지금으로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자 헤어지고 나서는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다. 그녀와 함께 보았던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이별하고서도 여전히 이별 중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마지막 글을 쓰면서 나는 이제야 완전히 이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생각났다. 또 그리워했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품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생각해 본다. 이름표가 있는 관계에서는 분명 시작과 끝이 있지만, 내 안에서 완전히 이별한다는 건 허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내 삶과 마음에 흔적이 되었는데, 흔적이 있다면 이별이라는 건 대체 뭘까?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이별했는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흘러가는 대로 두기로 한다.
바람이 통했던 창문과 창문 사이의 방들
비슷한 시기에, 그러나 나보다 이른 날에 만나 헤어진 친구가 나를 위로한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많은 걸 해결하겠지만 작은 돌멩이 하나는 평생 안고 가게 될 거야.
이별하는 시간은 날씨와 같았다. 봄에는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여름에는 수박을 자르고 가을에는 돗자리를 펴고 겨울에는 목도리를 매는 것처럼 헤어지고 처음 맞닥뜨리는 계절과 기념일, 어떤 장소에서 마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나는 그 마음을 달래다가 혼내다가 울다가 욕을 하다가 지나치곤 했다.
써보지 않던 시를 갈기고 평소에 읽지 않을 사랑 에세이를 뒤지고 마음 한 구석이 시려오는 글을 베끼고 아스팔트를 달렸다. 사랑이 원망스러웠지만 사랑을 계속 읽었다.
내가 없어도 여름이 오면
누군가를 너를 읽어주겠지.
어느 시인의 문구에 너를 담은 마음을 한 스푼 떠낸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네가 아니라 그런 장면들 아닐까.
네가 아꼈던 갈색 서랍, 네 주위를 맴돌던 향기, 라면이 없어 즉석에서 내놓은 마라탕면, 세 가지 거짓말, 바람이 통했던 창문과 그 창문 사이의 방들, 깔깔하고 웃었던 밤들.
반가운 친구 연락을 받고서 나는, 다시 우리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그때로 돌아간다. 처량하고 쓸쓸했던 폐허 같았던 그때로
우리는 함께일 때보다 각자일 때 더 잘 살 것 같다는 어느 타로 리더의 말과 '만약에 우리 헤어진다면, 내가 여자를 만나는 게 더 기분이 나쁠 것 같아, 아니면 남자를 만나는 게 더 기분이 나쁠 것 같아?'라는 질문에 서로 엇갈린 대답을 하며 서로를 신기해했던 대화.
토해내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는데 늘 무언가를 쓰던 네가 떠올랐다.
쓰기를 알려줘서 고마워. 안녕.
제 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