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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12. 2021

40년 후의 나에게 쓰는 답장

여전히 물음표인 인생

새해부터 생각지도 못한 편지였어. 미래의 나에게 온 편지라니 설마 타임슬립이라도 한 거야? 단지 기억을 떠올렸다기엔 너무 생생해서 말이야.

그래,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40년 후잖아. 시대가 급변하고 있으니 세상은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AI 천지인 세상에서 기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려나?

정말 끔찍하네. 지금보다 더.

너의 편지를 받고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지금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네가 그랬잖아. 더 큰 위협들이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고.

추억이란 그래서 달콤한 과자 같은 거지. 힘든 시기를 대비해 추억을 많이 비축해둬야겠어. 후후.




94세라니……. 난 92세에 죽겠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2년을 더 살고 있는 거잖아. 90대에 1년이면 10년은 더 산 것 같을 거야. 그렇지 않아?

시간이란 그런 거지.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재산이 시간이란 걸 깨달으니까.

언젠가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어. 시간도 사고파는 거라면 세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돈 많은 부자만 살아남았으려나? 가난한 사람들은 불멸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목숨과 같은 시간을 팔았을 거야. 그래야만 짧은 인생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을 테니까.

신이 하루에 24시간을 공평하게 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물론, 시간을 허투루 쓰는 사람들을 볼 때면 돈이 줄줄 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버릴 시간 있으면 날 주면 좋으련만. 24시간이 모자라~!


죽음을 앞둔 삶은 어떤지 늘 궁금했어. 그런데 넌 여유롭고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야. 중년이 되면 모든 일에 의연해져. 너처럼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라면 세상에 초연해졌다는 말이 훨씬 자연스러울 테지만. 넌 정말 그래 보여. 그게 너무 안심돼. 널 보니 다시금 조바심내며 살 필요가 없다 싶어.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고도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살고 있는 건지 의문일 때가 있어. 식지 않는 열정으로 인생을 하얗게 불태우는 삶이 맞는지 모르겠더라고. 적당히 안주하며 사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지. 인생을 미지근하게 흘러가게 만드는 게 너무 싫었어.

적당히 회피하고 타협하며 살면 편할 텐데, 난 왜 이렇게 끝없이 인생에 물음표를 다는 것일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내 인생에 답을 주진 못한다는 걸 알면서. 그건 소크라테스가 와도 정답을 줄 수 없는 일이야.




너는 그 답을 알고 있겠지. 이미 주어진 삶을 전부 살아봤으니까. 어쩌면 네가 준 편지에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살다 보면, 그래서 네 나이가 되어보면 자연스럽게 그 답이 곧 내가 되어 있는 날이 올까?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열정이 식지 않도록 노력했어. 내가 무엇을 하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아. 그것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느끼는 게 중요하지.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 아침에 침대에서 깨어나 따끈따끈한 바닥을 짚을 때의 발바닥 감촉, 밤새 갈증이 났던 목구멍을 정수기 물로 촉촉하게 적시는 것, 내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는 것…….

그 모든 감촉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야.

살아 있는 것…….

그래, 그 어떤 것도 내가 살아 있는 것을 넘어설 순 없어.




너의 사랑과 지지는, 인생의 물음표에 큰 힌트가 되었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워.

나는 올해도 너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살아볼 생각이야. 너의 편지를 보니 할 일이 꽤 많더군. 차근차근 하나씩 해봐야지. 어쨌거나 너의 낡은 책장 다섯 번째 칸에 꽂힌 에세이는 정말 궁금해. 너에게 받은 편지와 너에게 쓴 답장이 같이 책에 실릴지는 나도 모르겠거든. 사실 실리든 안 실리든 상관은 없지.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는 우리만 알아도 그만이니까.

네가 그렇듯, 죽음 앞에서 초연한 사람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게. 적어도 너의 초연함과 편안함을 깨진 않을 거야. 가뜩이나 물음투성이인 내가 제일 궁금한 건 아름답게 늙는 법이거든.      


추신 : 궁금한 게 있으면 내가 편지할게. 어느 날 더이상 너에게 답신이 없으면 그때가 답이 곧 내가 되었다는 거로 알게. 사랑해. 그리고 그때까지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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