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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15. 2021

향기나는 인연이 되는 법

인연을 대하는 자세

덧없이 날아가 버린 인연


인연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람과의 관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졌으며, 또 여전히 머물러 있는지 가늠만 하였을 뿐인데도 며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선뜻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인연이란 내게 가벼운 단어도 아니고 실체는 더더욱 아니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알기에 몇 글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한 건 나와의 약속뿐 아니라 공저하는 작가님들과의 약속이다. 억지로 문서 창을 열고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인연’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졌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지켜 튼튼하게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 헤르만 헤세


개중 헤르만 헤세의 말이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다. 살면서 하늘이 정한 인연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또한 아주 많은 인연을 만났다. 내 곁을 오래 머무는 가족은 제외한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튼튼하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덧없이 날아가 버린 인연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도 무거운 ‘인연’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하늘이 정한 인연 따위도 믿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데,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나를 누군들 믿을 수 있었을까. 나를 믿지 않았기에 남도 믿을 수 없었다는 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누군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던 나. 단단한 벽을 쳐놓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던 나. 타인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았던 나.

나의 꽉 닫힌 빗장이 열린 건 불과 1년이 조금 넘었다. 돌이켜 보니 그게 정확하다. 그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빗장을 열고 단단한 벽을 부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씩 걸어 나왔으니까.

상대가 어떤 사람이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란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안 뒤로 나는 불신의 세계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견고한 알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터. 하늘이 보내준 인연이든, 잠시 머물렀다 지나간 사람이든, 가벼운 바람처럼 스친 사람이든…… 그들의 존재 가치를 가볍게 여긴 나였기에 지금의 내게  ‘인연’은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였다.     

 

   

향기 나는 인연     


지금도 내 곁엔 많은 사람이 있다. 숙명처럼 인연이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쩌다 스치는 이름 모를 사람들도 있다. 센터 사람들, 글쓰기 회원들, 출판사 직원들, 공저 작가님들, 자주 오는 택배 아저씨, 정수기 점검하는 분, 시장의 단골 가게, 강아지 산책시키러 가는 공원의 주민들, 배달해 주시는 분들, 편의점 또는 슈퍼 직원들, 지하철에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승객들……. 그들 모두가 언제 어떻게 또 만나게 될지 모를 인연이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가벼운 인사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인사. 인연의 무게감을 알기에 그렇다. 인사가 모여 인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진심으로 인사를 건넨다. 사람을 소중히 아는 마음은 어떤 만남도 소중히 여기게 마련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나는 어떤 인연 앞에서든 겸허히 고개를 숙인다.

인연을 키우고 가꾸려면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연이란 나무에 화사한 꽃이 피어 향기가 삶에 가득하고, 그 향기가 주변에 퍼져 나가게 하는 일. 오래 머물든 잠시 머물든 그냥 스쳐 지나가든, 그 누구라도 나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윽한 향기를 함께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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