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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Jan 18. 2021

업계 비밀, 특수 알바의 취미생활

취미와 직업의 선순환

나는 드라마 리뷰어다.    


2015년부터 했으니까 햇수로 7년째. 알바 개념이긴 하지만, 오래 해서 그런지 이젠 드라마 대본 분석은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그전에 3년간 드라마 공부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과제로 냈던 대본으로 소설을 썼고, 소설은 한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하여 2014년이던 그해 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원래는 드라마 공모전에 내려고 준비하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3차에 걸친 공모전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수상한다고 해도 모든 작품이 제작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칫 수상만 하고 빛도 못 본 채 사라질 운명.

몇 년 동안 공들여 기획한 것이기에 어떻게든 드라마 제작을 하고 싶었다. 그전에도 두 작품이나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안 되면 글을 접고 딴 일을 할 작정이었다. 내겐 마지막이자 필사적인 도전이었고,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초조하고 절박했다.  


‘공모전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전략을 바꿔 소설로 먼저 내기로 했다. 출판사에서 드라마를 해도 좋겠다며 제작사 여러 곳에 기획서를 보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교회 봉사를 하러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 출판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작가님, 드라마 계약하재요! 출판사로 오세요!”

‘꺄아아아아!’


진심으로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버스 안이라는 게 원통할 지경이었다. 그곳이 길이었다면 펄쩍펄쩍 뛰고 난리법석을 떨었으리라. 소설을 쓴 지 10년 만의 쾌거였다.


‘살았다.’


작가로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던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2006년도에도 드라마 계약을 한 적이 있었지만, 제작 단계에서 결국 무산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 계약은 벼랑 끝에서 만난 행운이었다. 아니, 동아줄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계약하고 드라마 제작진 요청으로 초반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드라마 리뷰어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리뷰 했느냐고?     

 

그건 말할 수 없다. 업계 비밀이라고 해두자.

내가 하는 일은 드라마 기획서와 대본을 분석하여 피드백해주는 것이다. 가끔 시나리오도 있지만, 대부분 드라마다. 때문에 드라마를 시청하는 건 나의 특수 알바에 필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떤 드라마든 1, 2회는 챙겨 보려고 노력한다.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감이 좋으면 본방사수도 불사한다. 모든 드라마를 제시간에 챙겨 보기는 어렵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님이나 배우가 나오는 건 의무적으로라도 보려고 하는 편이다. 좋은 작품은 볼거리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다.


“저 장면에서 저렇게 넘어간다고? 신선한데.”

“오, 대사 굿!”

“주인공 서사가 좀 미흡해.”

“구성이 타이트하면 좋을 텐데. 너무 늘어져.”

“와아, 반전 좋아. 저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찾는 거야?”


메모, 메모, 메모!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는 각종 색상의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는다. 도저히 순수한 시청자 모드일 수가 없다. 설정, 인물, 구성, 대사, 내용.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나는 열공 모드로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다시 보기가 없던 시절        

    

나의 인생은 드라마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집에 TV가 생긴 후로 드라마 보는 게 낙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학교에 가면 아이들을 모아놓고 드라마 얘기를 ‘다시 보기’ 수준으로 해주곤 했다. 내 이야기에 넋이 빠져 듣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어찌나 신이 나던지.

드라마 이야기를 해주며 나의 상상력도 덩달아 발달했으리라. 드라마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수많은 영감을 주었다. 작가의 꿈을 잃지 않은 것도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


‘드라마 작가가 될까, 시나리오 작가가 될까? 난 소설가가 꿈인데.’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성장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그 꿈을 이뤘다. 비록 드라마 작가는 못 되었어도, 드라마 리뷰어는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수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었고, 작가의 고충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제작 과정과 환경을 알게 된 후로 어떤 드라마든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재미없다고,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막장이라고, 배우가 연기를 못 한다고, 연출이 거지 같다고…… 내가 본 게 전부인 양 폄하할 수가 없다. 이면에 자리한 깊은 고뇌와 노력마저 깎아내리고 싶지 않아서다. 혼자 소설을 쓰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협업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천 배는 어렵다는 걸 경험한 뒤 오히려 크나큰 겸손을 배웠다.

드라마로 인간을 배우고, 인생을 깨닫는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성장할 때 나도 같이 성장한다.

나에겐 드라마가 친구이고 스승이다.           


드라마 몰아서 보기   


감명 깊게 본 작품 또는 본방 때 놓친 작품은 끝날 때를 기다려 몰아서 본다. 그때야 비로소 시청자 모드로 돌아와 2, 3일은 취미생활을 만끽한다.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쭉 이어서 보면 일부러 분석하려고 하지 않아도 드라마의 전체 구성부터 대사, 연기, 할 것 없이 더 잘 보이고 잘 들린다. 본방 때는 놓치는 부분도 그 부분만 다시 돌려서 볼 수 있으니 좋다.

가장 좋은 건 집중도가 높아지니 감수성도 폭발한다는 것이다. 배꼽 빠져라 웃기도 하고, 주인공인 양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드라마에 몰입하여 나도 모르게 분통을 터뜨리며 욕할 때도 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어깨를 움츠리고 바짝 긴장한다. 주인공이 위기를 넘기면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쉰다.

냉철하게 분석할 때는 찬 서리가 머릿속에 내려앉은 것 같다가도, 드라마에만 집중하니 소녀처럼 반응하는 나는 완전히 딴사람 같다. 메모도,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도 없다. 그렇게 2, 3일 드라마를 보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취미와 직업의 선순환이랄까.

국정원도 아니건만, 업계 비밀 특수 알바 드라마 리뷰어.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본다. 때론 냉철한 어른처럼, 때론 감수성 예민한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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