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축하합니다!
4월 15일은 아버지 생신이다. 올해 팔순이신데 코로나 때문에 내년으로 잔치를 미뤘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지난 주말에 남편과 대구에 사시는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 4시경 서울역에서 ktx를 탔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찬 기차는 마치 SF 영화처럼 삭막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부스럭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외국인 아이가 영어로 엄마와 얘기하는 소리마저 없었더라면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을 것이다.
마스크 때문에 호흡이 편치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 멀미라도 하듯 나는 얼마 못 가 잠에 빠져들었다. 꼬박 1시간을 잤다. 집 밖에서는 깊은 잠을 잘 못 이루는데 연일 기획서 작업에 피로하긴 했던 모양이다. 꽤 깊은 잠을 잤는지 입이 헤 벌어져 있었다. 마스크를 쓴 게 얼마나 다행인지.
서산에서 출발한 남편과 역에서 만나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6시가 넘은 시각. 더울 거라 생각했는데 제법 공기가 찼다.
“어휴, 추워.”
따뜻한 카디건을 입었는데도 몸이 오그라든다.
“대구라 따뜻할 줄 알았더니 아니네.”
남편도 대구 날씨가 의외라는 표정이다.
10여 분 차를 타고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전 마트에 들려 과일을 몇 가지 샀다.
바나나, 방울토마토, 딸기…….
박스에 담아 부모님 댁에 가니 진한 된장국 냄새가 확 풍긴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일을 하다 온 터라 무척 배가 고팠다.
간만에 엄마가 챙겨주는 저녁밥을 먹었다. 된장국인 줄 알았는데 닭개장이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시장한 김에 후룩 국물부터 떠먹었다. 맵지 않고 살짝 칼칼한 맛이 깔끔하게 목구멍을 넘어간다. 개운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국물 더 줄까? 국물이 뜨끈뜨끈해야 맛있지.”
건더기보다 국물을 더 좋아하는 내게 엄마가 묻는다.
“응. 더 줘.”
밥 한 그릇에 닭개장을 한 그릇 하고도 국물 반을 더 먹었더니 배가 불렀다. 친정에 올 때마다 일정에 쫓겨 밥만 먹고 가기 바빴는데 모처럼 하룻밤 자려니 마음이 여유로웠다.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갔다. 아담한 교회는 긴 좌석 하나에 한 사람만 앉도록 배치하고 강대상에는 아크릴 칸막이로 막아 놓아서 방역에 신경을 쓴 게 보였다.
광고 중에 목사님이 아버지 팔순임을 성도들에게 알렸다.
“처음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셨을 때 저의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줄 알았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새벽마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세요. 저보다 더 기도를 많이 하시는 거 같아요. 집사님이, 성도들이 기도하는 교회로 바꿔 놓으셨어요.”
가슴이 찡했다.
연로한 성도가 기도하는 교회.
안수집사인 아버지는 교회와 목사님과 성도들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본이 되고 계셨다.
떡과 음료를 준비하여 교회 성도들에게 드리고 목사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목사님을 뵙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 남매가 전부 서울에 있어서 목사님이 대신 자식처럼 신경을 써 주셨다고 한다. 그간 목사님의 얘기는 많이 들었기에 매우 감사했다.
“권위적인 목사님들도 많은데 잠깐 말씀을 나눠 보니 목사님은 다르시네요.”
“그렇습니까. 허허허.”
남편의 눈에도 목사님이 달라 보였던 모양이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이때 아직도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게 든든했다.
- 너희 둘이 와 줘서 마음이 좋아. 널 보고 나니까 또 금방 보고 싶어져.
화요일인 오늘 아침, 아버지는 고맙다고 전화를 하셨다. 얼마나 좋으셨으면 전화를 하셨을까. 또 금방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서 법이라고 할 만큼 무섭던 아버지는 흰머리가 하얗게 세는 동안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약해지셨다. 머리가 좋아서 지식적으로 뒤지지 않았지만, 나이 팔십이 되어서야 지식 때문에 세상을 올바로 살지 못했다고 자책하신다.
- 아버지는 과거에 매여서 살았던 사람이지만, 너흰 미래를 보고 살면서 계속 공부하니 얼마나 좋으냐.
“맞아요, 아버지. 경험 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전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비우기 위해서 공부해요, 아버지.”
- 맞아. 그게 공부지.
코로나로 남동생 둘 다 가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부부만이라도 다녀오자 했던 게 다행이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팔순 잔치를 내년으로 미룬 게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를 뵙고 나니 팔순 잔치가 안 왔으면 싶다. 아버지가 더 안 늙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