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 잘 맞는 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배우들이 자주 작품을 같이 하는 것도 호흡 때문이다.
내 원작으로 드라마를 할 때도 잠깐 보조 작가로 일했지만, 기획 단계에서조차 작가와 감독의 의견 일치를 보기란 매우 어렵다. 드라마라는 장르가 협업 체계이기에 그렇다.
기획 단계만 3년 이상씩 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도 대단한데, 대박이 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지금도 본업 외에 드라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 쉽사리 보이질 않는다. 연구하지 않고 피상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는 작가, 감독, 배우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다.
핑계가 통하지 않는 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적어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으니까.
프로라는 타이틀은 지구의 서쪽 끝에서 하늘을 떠받친 아틀라스처럼 무겁다.
우리가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동안,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매번 신선하고 새로운 관점을 갖기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을 다양하게 키워야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의 관점은 언 바닥에 꽂힌 쇠꼬챙이처럼 꽤 단단하고 고정적이다. 유연함을 잃지 않기 위해 끝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을 키우려고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지만, 그 또한 자기 위주의 경험일 뿐 얼마나 새로운 시도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려 한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정말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피상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습관은 쉽게 포기하고 핑곗거리를 찾게 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정체성인가?
아니다.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신체 피부의 일부를 보고 나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신체는 나라는 존재를 담은 그릇일 뿐,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낭만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낭만닥터 김사부 2를 보다가, 나도 김사부처럼 낭만이 뭔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말하는 낭만이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든 시대에,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지켜할 할 신념은 낭만이 아닐까 한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주의자인 김사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누구보다 현실을 사는 사람이다. 그의 치열한 경험은 타인의 시선에서 함부로 ‘운’ 또는 ‘감’이라고 일컬어진다.
김사부는 말한다.
운과 감은 결코 거저 생기지 않는다고.
수많은 경험 속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할 때에야 비로소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자신을 믿기에 당당할 수 있고, 어떤 경우라도 양심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기적인 게 당연시되는 요즘, 낭만적인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나도 낭만적인 세상에서 낭만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