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두 번 군대 갔다

아들이 군대에서 안 돌아왔다!

by 날자 이조영

아들이 스무 살이던 그해.

일찍 군대에 갔다 오겠다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로 몸을 가누질 못했다.

보통 키에 54kg 정도 나갔으니 가뜩이나 깡마른 몸이 휘청거리는 모습에 정말 깜짝 놀랐다.

자라면서 큰 병치레 한 번 한 적 없던 녀석이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대학병원으로 가보란다.

큰 병일 거란 생각을 조금도 못하고 있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모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의사 앞에 아들이 앉고 그 옆에 앉았는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 의사 선생님 또한 화면을 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루푸스인지 강직성 척추염인지 좀 더 검사를 해봐야겠는데요.”


루푸스? 강직성 척추염?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즈음, 아들이 루푸스로 고생한다는 어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지인의 남편은 강직성 척추염으로 약을 먹는 중이었다.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라기에 꽤나 신경 쓰이겠구나, 안쓰러워했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아, 그런데 내 아들이…….

갖은 고생 끝에 이제 좀 마음 편히 사나 했더니 청천벽력이었다.

뭐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그랬으리라.

추가 검사를 하고, 일주일 뒤에 확실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던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빠 없이 큰 아들이 아픈 게 다 내 잘못 같아서…… 일주일 동안 눈물로 기도한 기억 밖에는.




인터넷 검색으로 루푸스와 강직성 척추염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 걸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남편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지인에게 증상을 상세히 물어봤다.

강직성 척추염이란?

척추에 염증이 발생해서 오래 방치하면 척추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질병.
허리, 발뒤꿈치, 앞가슴뼈 같이 뼈에 인대나 힘줄이 붙어 있는 부위에 많이 발생.
다른 기관으로 침범하는 경우 관절이 아닌 눈, 위, 폐, 심장, 신장 등 다른 장기로 퍼질 수 있다.
허리 통증은 디스크와 유사하지만 활동 시 통증과 뻣뻣함이 유독 크게 느껴지고 아침에 통증이 심해진다.
만성인 경우 관절의 운동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며, 개인마다 통증의 차이가 크다.

“언니, 치사율은 높지 않아요. 약 잘 먹고 운동하고 관리만 잘하면 생활하는 데 문제없어요. 너무 걱정 말아요.”

“루푸스면 어떡해?”


루푸스란?

만성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자기 자신을 공격하면서 생기는 질환.
장기 손상뿐 아니라 전신에서 염증 반응,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질환.


내가 알아본 바로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아들이 루푸스라는 엄마의 말로는 엄청 고생이 심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제발 루푸스만은 아니기를!’


차라리 강직성 척추염이 낫겠다 싶었다.

병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조금만 덜 아프고, 덜 고생하고, 덜 치명적인 병이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폭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듯 심란한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병원에 갔을 때.

“다행히 루푸스는 아니에요. 강직성 척추염입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루푸스가 아니어서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병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들은 군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군대에 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지금 상태로는 군대에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면제도 받을 수 있나요?”

“이 질환으로는 무조건 면제가 되진 않을 거예요. 현역 보단 공익 갈 확률이 높겠네요.”

“면제 아니면 그냥 현역 가려구요. 공익은 싫어요.”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면제가 가능할지도 모르죠. 써드릴까요?”

“아뇨. 괜히 불법 같아서 싫어요. 신검받아서 떳떳하게 현역 갈 겁니다.”


아들은 면제 아니면 현역을 가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어중간하게 공익을 가는 건 싫다며 몇 번이고 그 말을 강조했다.

몸이 아파서 군대에 가서 고생할 텐데도 제 뜻이 확고한 아들을 보자 왠지 안심이 되었다.

병에 낙심하지 않고, 꼼수 쓰지 않고 군대에 가겠다니 얼마나 대견한가.

군대에 가겠다는 아들을 말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 이후로 아들은 신검을 받을 때마다 5급을 받았다.

공익 판정.

단백뇨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치료가 되었다 싶어 신검을 받으면 같은 결과.

아까운 시간은 자꾸 흘러 어느덧 1년이 지나갔고, 아들은 결국 병무청에 항의했다.

“면제시켜줄 거 아니면 그냥 3급이라도 주세요. 현역 간다니까요!”


천신만고 끝에 벅벅 우겨서 현역을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들은 삐쩍 곯아서 훈련이나 제대로 받을지 염려스러웠다.




훈련소에 들어간 지 5일째였던 걸로 기억한다.

저녁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오, 아들! 몸은 괜찮아?”


몸 상태가 내내 걱정이었던 나는 그것부터 급히 물었다.

“어, 그게……. 엄마, 나 좀 이따 집에 가.”

“뭐?! 왜? 몸이 많이 안 좋아?”


가슴이 쿵쾅쿵쾅.

괜히 군대에 보내서 악화된 걸까?

“오늘 또 신검받았는데…….”

“또 단백뇨 나왔어?”

“……결핵이래. 하하하.”

“뭐……?”


7, 80년대도 아니고 웬 결핵?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강직성 척추염 걱정을 했더니만 난데없이 결핵이라니.

“전염될까 봐 바로 격리 조치야. 동기들한테 인사도 못 하고 집에 가야 해.”


헐.

그날 밤늦게 집에 돌아온 아들은 훈련소에 가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도저히 체력이 달려서 훈련을 못 받겠더라.”


며칠 뒤 아들은 피트니스에서 트레이너를 받아가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닭 가슴살과 계란을 삶아대느라 아주 괴로웠다.

매일 닭 가슴살과 계란을 삶는데 속이 미식미식. 온몸에 냄새가 밴 듯 가만있어도 계속 비릿한 향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매일 먹는지 운동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3개월쯤 지나자 아들은 점점 눈에 띄게 몸이 좋아졌다.

원래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인데, 그동안 너무 먹질 않아 체중 미달로 근육 만들기가 어려웠단다.

훈련소에서 직접 겪은 몸 상태로 인한 강한 동기부여, 규칙적인 운동 습관과 음식 조절, 몸의 변화로 인한 성취감.

그렇게 아들은 체력을 길러서 두 번째로 입소했다.


“갔다 올게, 엄마. 잘 지내고 있어.”

“그래. 잘 갔다 와.”

입대하는 아침, 아들과 나는 담백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들이 군대 가면 부모님이 운다고 하는데 나는 마냥 기뻤다.

아들이 건강한 몸으로 군대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훈련소에 들어간 지 얼마 후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또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신경이 곤두서서 아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핸드폰 너머로 아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이거 사격 1등 해서 포상으로 전화하는 거야. 하하하.”

“어머! 우리 아들 장해! 몸 아픈 덴 없고?”

“없어. 건강해. 엄마도 잘 있지?”

“그럼, 잘 있지. 엄마가 편지 쓴 건 봤어? 계속 써서 올리고 있는데.”

훈련소 홈피 게시판에다 아들에게 계속 편지를 써서 올리는 중이었다.

“어, 잘 보고 있어. 고마워. 근데 나한텐 기대하지 마. 편지를 쓰라는데 도저히 못 쓰겠어. 알지, 내 성격?”

“알지, 낭만이란 건 없는 놈이지. 호호호.”

“킥킥. 너무 섭섭해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야.”


아들이 보내온 편지는, 음…….

세 줄이었던가?

잘 지내지?
나도 잘 있어.
쓸 말이 없다.


훈련소에서 보내온 옷을 보면 부모님들이 또 운다는데, 난 웃었다.

아들이 군대에서 안 돌아왔다!

아들은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현역을 가겠다는 의지를 불살라 병무청에 항의를 하고, 난데없는 결핵으로 강제 퇴소당한 후에도 그 의지를 꺾지 않았다.

되레 형편없는 체력을 확실히 깨닫고는 몸을 만들어 두 번이나 군대에 갔다.

그리고 훈련을 마치고 다시 만났을 때 더욱 건강해진 아들을 볼 수 있었다.

딸은 훈련소에 가기 전부터 계속 놀렸다.


“퇴소식 때 아들 보면 엄마들이 많이 운다는데 엄만 안 울어?”

“어느 타이밍에서 울어야 하는 거야?”


건강하고 늠름한 아들을 보는데 웃음이 나야지 왜 눈물이 나야 하나?

나는 두 번이나 군대에 간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철원에 있는 기갑부대에 배치를 받은 아들은 군대에서도 운동을 꽤 열심히 했다. 숨이 차서 달리기를 못해 1등급을 받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고 했다.



군대에 두 번 가느라 몇 년이 훌쩍 가버리는 바람에 제대 후 학업을 계속하기보다는 직장을 택한 아들.

그러던 어느 날은 단박에 담배를 끊어버렸다.

최근엔 다시 헬스장을 다닌다.


“살이 너무 쪘어. 오랜만에 운동하려니 힘드네. 다시 트레이너 두고 운동해야 할까 봐.”

살이 튼 허벅지를 보여주며 아들이 그런다.

‘나 또 닭 가슴살과 계란을 삶아야 해?’


허여멀건한 닭 가슴살과 비릿한 향이 되살아나서 속이 울렁울렁.

“그나저나 병원엔 안 가도 돼? 약은 계속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지금은 아무 이상 없으니까.”


아들은 예전에 운동을 시작한 후로 약을 딱 끊더니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았다. 귀찮아서라고 말은 하지만 그때부터 뭔가 건강해져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 건강해져서 강직성 척추염이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몸과 정신이 건강한 아들로 내 곁에 있어주는 게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지.

건강한 몸으로도 군대를 기피하는 사람이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회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군대에 두 번 간 아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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