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티키 타카

누에고치 아버지

by 날자 이조영


하마터면 아버지를 모를 뻔했다.


아버지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신다.

올해 일흔아홉이신데, 이야기의 내용은 참 한결같다. 당신의 일대기를 이야기하듯 레퍼토리가 똑같다. 등장인물도 똑같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데 아버지 친구 ‘배봉걸 씨’는 똑똑히 외울 정도다.

다른 사람이 얘기 좀 할라 치면 어느새 당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두어 마디 하면 중간에 가로채 아버지 식으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한마디로 티키 타카가 안 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엄마다.

엄마는 이야기를 꺼내다가도 대화가 되지 않으니 화를 내고 벌떡 일어나 버린다.

아버지는 멋쩍어하면서도 습관을 버리지 못하신다.


‘아버지는 왜 저렇게 배려심이 없이 이기적일까?’

‘연세가 여든이 다 되어 가는데 할 얘기가 저것밖에 없나? 이미 지나간 과거가 무슨 소용이람. 차라리 최근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더 재미있을 텐데.’

‘엄마는 저런 아버지랑 어떻게 살았지? 진짜 갑갑하겠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 당신 이야기를 하기에 바쁜 아버지는 대화의 기피대상이었다.




작년 4월, 부모님이 대구 옆에 있는 경산으로 이사를 가셨다.

엄마가 먼저 경산으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었고, 이삿짐을 보낸 뒤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역으로 갔다.

사실 아버지와 같이 기차를 타는 게 고역이었다. 또 혼자 떠드실 게 분명했으니.

평일이라 남동생들이 함께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모시고 갈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당일 날 아침, ‘2시간만 참자’는 심정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KTX를 탔는데 동대구역까지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셨다.

기차 안이 조용해서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주위의 분위기를 모르는 듯했다.

아버지에게 작게 말씀하시라, 계속 부탁을 드렸다.

기차 안이라 도망 칠 곳도 없으니 꼼짝없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오늘은 제대로 들어보자 싶었다.

이야기하시는 아버지의 얼굴 표정, 밝기, 자세, 제스처
목소리 톤, 크기, 강세, 높낮이, 떨림
신체 느낌, 호흡, 무게감, 압력 등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때 친구들과 교회에서 국수를 먹던 이야기를 할 때 소년처럼 순수한 표정이 나오고,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좌절했던 이야기를 할 때 그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친구인 배봉걸 씨가 등장할 땐 짓궂은 표정이 되면서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활력이 넘쳤다.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너무나 생소했다.

숱하게 들었던 아버지의 레퍼토리가 처음 듣는 것처럼 다르게 느껴졌다.


‘그동안 아버지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드셨겠구나.’


순간,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 연세가 여든이 되어가도록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자세히 듣지 않았으니 공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피할 생각만 했다.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하마터면 아버지를 모를 뻔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 게 정말 좋으셨던 모양이다.

이사한 집에 가서도 내내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엄마에게도 자랑삼아 이야기하신다.


“딸내미랑 같이 기차 타고 와서 기분이 좋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야.”


엄마와 둘이 주방에서 짐 정리를 하던 중에 엄마가 묻는다.


“얘, 아버지가 말씀 많이 안 하시디?”

“왜 아니야. 2시간 동안 계속 말씀하셨어. 후후.”

“어이구, 니가 힘들었겠네.”

“괜찮아. 재미있었어. 자세히 들었더니 새롭더라고.”


그날 밤 짐 정리가 다 되지 않아서 근방에 사는 이모 집에서 잤다.

너무 피곤한 데다 잠자리가 바뀌어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다.

방 밖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핸드폰을 켜니 새벽 5시 반.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요양보호사인 엄마와 이모는 출근하기 전에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모가 먼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엄마는 주방에서 요리를 마저 하느라 바빴다.

소파에서 TV로 뉴스를 보고 계신 아버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아버지의 모닝 토크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정치 얘기다.


'헉! 눈 뜨자마자 골치 아픈 정치 얘기라니! 좀 더 누워 있을걸.'


후회막심이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끊을 타이밍이 보이지 않는다.

그날 서울로 올라와야 해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도 마지막이겠거니 금방 마음을 비웠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기차 안에서 했던 것처럼 경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방에서 뒤집개를 들고 엄마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얘, 어제 기차에서도 저렇게 떠들었니? 아이고, 무시라!”


누가 노인이 힘이 없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머리에는 아직도 쌩쌩한 엔진이 돌고 있다. 그리고 누에고치처럼 끊임없이 말을 잣는다.

비록 티카 타카는 되지 않지만, 이젠 누에고치 아버지가 예전처럼 피곤하진 않다.

열심히 말을 잣는 모습을 보면 누에가 생각나 쬐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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