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처음 카네이션을 받았다

똥 손이라 미안해!

by 날자 이조영


어버이날, 뜻밖의 선물


지난 5월 5일, 직장을 마치고 온 아들이 카네이션 화분 두 개를 갖고 들어왔다.

크고 작은 하트 모양과 검은색 땡땡이가 앙증맞은 플라스틱 포장지 속.

하얀색 화분에 담긴, 연분홍색과 진분홍색 카네이션.

자잘하고 여린 꽃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연둣빛 꽃받침과 초록빛 이파리들이 싱그러워 한참을 들여다봤다.

진한 꽃향기가 방안에 만발한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꽃향기인지...

절로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콧속에 스며든 향기는 금세 가슴에 천연향을 뿌려놓은 것처럼 화사한 느낌을 준다.

덩달아 산뜻한 기분도 꽃향기와 함께 몸 전체에 퍼져나간다.

순간,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해된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그나저나 그 화분이 아들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들은 아기자기한 맛이라곤 없는 녀석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그럼에도 이 날 아들이 준 카네이션은 특별하다. 아들에게 처음 받아보는 거니까.


"회사 앞에 보이기에 사 왔어. 눈에 띄었을 때 사 오는 게 낫겠더라고. 그날 되면 또 귀찮아서 안 살지도 몰라."

"어머! 너무 예쁘다. 흐음~ 꽃향기가 확 나네."

"오빠가 웬일이야? 카네이션을 다 사 오고."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선물해본다. 초등학생 때도 안 주던 걸. 큭큭. 손재주가 너무 없어서 미술시간에 만든 건 도저히 줄 수가 없었어. 똥 손이라 가위질이 안 돼. 난 똑바로 자른다고 잘랐는데 삐뚤빼뚤 핑킹 가위질이 되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만든 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엄마 입장을 몰랐던 거지."

"오~, 너도 이제 엄마 입장을 알 나이가 되었구나. 고마워, 아들!"




아들은 어렸을 때 카네이션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게 목적이었다고 했다.

칭찬을 듣고 싶어서 잘 만들고 싶었단다.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고 의욕이 살아나는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였다.

돌이켜 보면 사는 게 팍팍해서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답습한 결과였다.

나 또한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은 아이였지만,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었다.

아버지가 하신 최고의 표현은 빙그레 웃는 게 다였다. 덧붙여 '다음엔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요구가 뒤따랐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는데...

점점 의욕이 사라졌다. 소심한 반항도 했다.

나는 점차 아버지와 멀어졌고, 아버지가 싫어서 결혼이란 피난처를 선택했다.

결혼이란 피난처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몇 년 후 피난처는 허무하게 사라졌고, 오랜 시간을 길거리에 나앉은 것처럼 벌벌 떨면서 지냈다.

혼자 남매를 키우면서 내 삶은 바닥을 쳤다.

파산, 이혼, 정신적 충격.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폐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각본이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만 같았다.

각본대로 사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는 유연하게 각본을 바꿀 수 있는 대처 능력이 없었다.

내가 멋진 연기자가 되지 못하는 게 그지 같은 각본 때문이라 원망했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에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칭찬하고 보듬어주는 엄마가 되지 못했다.

나도 아들처럼 잘 만든 카네이션을 주고 싶은 마음만 급급했다.

향기 그윽한 생화보다는 아무 느낌 없는 인조 같던 삶.

아이들에게 인조보다는 생화 같은 삶을 보여주고, 칭찬해주고, 안아주고, 꽃향기를 불어넣어줬더라면 어땠을까.

꽃길이 아닌 꽃 한 송이로도 충분했을 텐데.

정말 그렇다.

내 인생도 꽃길이길 간절히 바랐으나, 지금의 난 꽃 한 송이에 감탄하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가.




스물일곱 살인 아들은 처음 카네이션을 사 오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똥 손 아들이 만든 너덜너덜한 카네이션이라도 기뻐했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

처음 제 손으로 사보는 카네이션 화분을 고르며 조금은 설렌 감정을 느꼈으리라.

아들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게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랫동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구나 싶어 짠했다.


'나도 너에게 그렇단다, 아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포장지에 새겨진 문구가 처음 보는 것인 양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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