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 보이기에 사 왔어. 눈에 띄었을 때 사 오는 게 낫겠더라고. 그날 되면 또 귀찮아서 안 살지도 몰라."
"어머! 너무 예쁘다. 흐음~ 꽃향기가 확 나네."
"오빠가 웬일이야? 카네이션을 다 사 오고."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선물해본다. 초등학생 때도 안 주던 걸. 큭큭. 손재주가 너무 없어서 미술시간에 만든 건 도저히 줄 수가 없었어. 똥 손이라 가위질이 안 돼. 난 똑바로 자른다고 잘랐는데 삐뚤빼뚤 핑킹 가위질이 되더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만든 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엄마 입장을 몰랐던 거지."
"오~, 너도 이제 엄마 입장을 알 나이가 되었구나. 고마워, 아들!"
아들은 어렸을 때 카네이션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게 목적이었다고 했다.
칭찬을 듣고 싶어서 잘 만들고 싶었단다.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고 의욕이 살아나는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칭찬에 인색한 엄마였다.
돌이켜 보면 사는 게 팍팍해서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답습한 결과였다.
나 또한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싶은 아이였지만,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었다.
아버지가 하신 최고의 표현은 빙그레 웃는 게 다였다. 덧붙여 '다음엔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요구가 뒤따랐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는데...
점점 의욕이 사라졌다. 소심한 반항도 했다.
나는 점차 아버지와 멀어졌고, 아버지가 싫어서 결혼이란 피난처를 선택했다.
결혼이란 피난처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몇 년 후 피난처는 허무하게 사라졌고, 오랜 시간을 길거리에 나앉은 것처럼 벌벌 떨면서 지냈다.
혼자 남매를 키우면서 내 삶은 바닥을 쳤다.
파산, 이혼, 정신적 충격.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폐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각본이었다. 누군가가 내 인생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만 같았다.
각본대로 사는 것에만 익숙했던 나는 유연하게 각본을 바꿀 수 있는 대처 능력이 없었다.
내가 멋진 연기자가 되지 못하는 게 그지 같은 각본 때문이라 원망했다.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에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칭찬하고 보듬어주는 엄마가 되지 못했다.
나도 아들처럼 잘 만든 카네이션을 주고 싶은 마음만 급급했다.
향기 그윽한 생화보다는 아무 느낌 없는 인조 같던 삶.
아이들에게 인조보다는 생화 같은 삶을 보여주고, 칭찬해주고, 안아주고, 꽃향기를 불어넣어줬더라면 어땠을까.
꽃길이 아닌 꽃 한 송이로도 충분했을 텐데.
정말 그렇다.
내 인생도 꽃길이길 간절히 바랐으나, 지금의 난 꽃 한 송이에 감탄하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가.
스물일곱 살인 아들은 처음 카네이션을 사 오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똥 손 아들이 만든 너덜너덜한 카네이션이라도 기뻐했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
처음 제 손으로 사보는 카네이션 화분을 고르며 조금은 설렌 감정을 느꼈으리라.
아들이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었다는 게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오랫동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구나 싶어 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