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 지갑을 구찌 종이가방에 넣어 드릴게요

KTX에서의 명품 판매

by 날자 이조영

작년 4월, 아버지를 경산댁으로 모셔다 드리고 서울행 KTX를 탔을 때의 일화다.

김천쯤인가. 옆자리 사람이 내린 뒤 빈자리에 웬 아가씨가 앉았다.

향수 냄새가 확 풍겨 나도 모르게 아가씨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옷과 구두, 액세서리까지 명품으로 휘어감은 차림이었다.

의자마다 달린 플라스틱 탁자에 올려놓은 종이 가방 두 개.

그 안에는 각종 명품 화장품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포장된 상태도 아닌 채로.

이 많은 화장품을 일일이 들고 다니나 싶어 의아했다.


'뭐지?'


평범한 짐가방 같지 않아 수상한 눈초리로 종이가방을 힐끗거렸다.

그나저나 향수 냄새가 진동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향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고역인데, 아가씨는 샤넬 향수병을 꺼내 또 여기저기 뿌려댔다.

예쁘장한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어둡고 불안감이 느껴졌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향수 냄새를 꾹 참고 있을 때였다.


"저기……."


할 얘기가 있나 싶어 쳐다봤더니, 아가씨가 손바닥만 한 루이뷔통 지갑을 내밀었다.


"제가 부산에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서요. 이거 제가 쓰던 건데 3만 원에 사실래요?"

"……."


떨떠름한 얼굴로 아가씨 한 번, 지갑 한 번, 번갈아 쳐다봤다.

꼬질꼬질 때가 타고 군데군데 헤진 지갑은 천만 원을 주고 샀대도 당장 쓰레기통에 내던질 만한 비주얼이었다.


'이런 걸 사라고?'


쓰레기가 3만 원이라는 게 어이없어서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기차 안에서 쓰레기를 팔고 다니는 명품녀가 황당했다.


"아뇨. 괜찮아요."


눈을 감고 자려는데 아가씨가 다급하게 말했다.


"구찌 종이가방에 담아 드릴게요."


루이뷔통 지갑을 구찌 종이가방에 담아준다는 건 무슨 뜻일까?

구찌는 종이가방도 명품이라 가치가 있다는 뜻인가?

명품은 쓰레기여도 명품이고, 명품끼리는 브랜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건가?

내가 명품에 환장해서 구찌 로고가 새겨진 종이가방을 줘도 좋아할 것처럼 생겼나? 어딜 봐서?


'설마…… 내가 호구로 보이는 건 아니겠지?'


구찌 종이가방에 담긴 쓰레기 지갑을 물끄러미 보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기차 안에서 중고명품을 팔고 다니는 그녀의 정체가 궁금했다.

정말 자기가 쓰던 물건인지, 중고를 사다가 되파는 건지도 의심스러웠다.

신고라도 해야 하나 갈등이 일었다.

아가씨의 정체 여부도 확실치 않은 마당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을 만들 것인가. 그냥 3만 원을 주고 조용히 갈 것인가.

소란을 만드는 건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는 것이기에 나는 금세 타협점을 찾았다.


"아가씨, 얼마가 필요해요?"

"예?"

"3만 원만 주면 돼요?"

"공짜는 제가 미안하죠. 대신 지갑 드릴게요."

"난 명품 좋아하지도 않고 필요 없는데."


더군다나 이런 쓰레기를 가져다 뭐하게? 버릴 게 뻔한데 번거롭기만 하지.


"아이, 그래도 돈만 받을 순 없어요. 제가 팔려는 게 아니라 진짜 지갑을 잃어버려서 차비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럼 빌려줄 테니 서울 가면 계좌로 부쳐줘요."

"예? 아, 아뇨. 그냥 지갑 사시면 안 돼요? 구찌 종이가방에 넣어드리잖아요."

'하아…….'


구찌 종이가방이 뭐라고.

지갑을 버리고 종이가방을 명품백처럼 들고 다닐 것도 아닌데 뭐하러 가져가냐고, 글쎄.

루이뷔통 지갑이 아닌 구찌 종이가방을 3만 원에 강매당하는 기분이었다.

계속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은 데다, 억지를 쓰고 있는 아가씨가 딱해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 건넸다.


"지갑은 됐어요. 가져가도 안 쓸 것 같네요."

"아니에요. 가져가세요."


아가씨는 싫다는 내 앞에 쓰레기가 담긴 구찌 종이가방을 억지로 밀어놓았다.


'하아…… 자자, 자.'


짜증이 밀려와 질끈 눈을 감았다.


"저어……."

'또 뭐야?'


실눈을 뜨고 쳐다봤더니 이번엔 구찌 파우더.

동그란 뚜껑을 열어 분가루가 날리는 분통을 내 앞으로 내밀며 한다는 말이.


"이거 5만 원에 사실래요?"


장난하나.


"이제 그만요."

"3만 원에 드릴게요."

"아뇨."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싸늘한 표정으로 거절 의사를 표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다행히 아가씨는 더 이상 질척대지 않았다. 자꾸 향수를 뿌려대서 문제였지만.

오래간만에 기차 탔는데 좌석 운도 지지리 없지.

말 섞기도 싫어 모른 척 눈을 감고서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

한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 자리 맞으세요?"


좌석 주인의 말에 아가씨는 그제야 느릿느릿 일어났다.


"빨리 좀 나오시죠."


통로에 서 있던 좌석 주인이 재촉하자 아가씨가 그 남자를 빤히 노려보며 발끈했다.


"지금 나가고 있잖아요."


벙찐 좌석 주인의 표정.

일부러 그러는지 의자에 둔 중고명품이 잔뜩 든 종이가방을 천천히, 하나 하나, 꼼꼼이, 챙긴 그녀는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입석표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칸마다 이동하며 중고명품을 파는 그녀.

내게 팔 때부터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정말 입석이라는 것에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나, 진짜 호구였던 거야?'


중고 사이트도 아니고 기차에서 중고를 팔다니.

세상엔 별난 돈벌이도 다 있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와 딸에게 기차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그걸 왜 샀어?"

"불쌍하잖아. 젊은 애가 그러고 다니는 게."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엄마가 사주면 계속 그러고 다닐 거 아냐."

"그런가? 걔도 먹고살려고 하는 짓 아닐까? 오죽하면 그러고 다니겠어."

"어휴. 얼른 버려. 엄마는 그런 거 절대 안 살 거 같더니."


그렇다. 나는 호객행위에 호락호락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차 안에서의 불편함을 최소한 줄이고 싶었고, 그 순간 귀차니즘과 측은지심이 한꺼번에 발동해 3만 원으로 편안함과 적선을 택했다.

그러나 그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건 구찌 종이가방도 대단하게 얘기하던 아가씨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측은지심이 발동했던 게 그 부분이었다.

그녀는 어쩌다 명품족이 되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기차에서 중고명품을 파는 사람이 되었을까.

사람들은 명품을 사는 게 아니라 자부심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팔 때도 자부심을 파는 걸까?

그래서 그렇게 당당히 구찌 종이가방을 대단한 것처럼 말한 것일까?

쓰레기도 명품처럼 귀해 보였던 건지, 내가 호구로 보였던 건지.

명. 알. 못인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