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과 차이점
보이즈 플래닛 : 각 소속사 연습생이 서바이벌 참여자로 나와 경쟁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피크타임 : 무명 아이돌의 서바이벌 오디션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은 극명하게 갈린다.
보이즈 플래닛은 데뷔 전의 연습생이 대다수이다 보니 실력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 보컬과 댄스, 랩 등 기본기가 아직 갖춰지지 않은 연습생이 많아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키포인트다.
반면, 피크타임은 기본기나 실력은 갖춰져 있으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아이돌이다.
보이즈 플래닛은 신입사원, 피크타임은 경력자라는 말에 적극 동감한다.
보이즈 플래닛은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어 공연을 준비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뚝딱거리는 모습이 재밌고, 피크타임은 오래 함께 한 팀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아서 오디션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수준 높은 무대에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보이즈 플래닛에서는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가 드물어 ‘누가 잘하나’를 찾아야 한다면, 피크타임은 ‘누가 더 잘하나’를 보여주는 공연인 느낌이다. 원석을 찾아내 보석으로 만들어주는 보이즈 플래닛과 달리, 피크타임은 어떤 세공사를 만나 보석이 더 빛날 수 있느냐다.
각 프로그램의 포맷이 다르기에 재미 포인트도 다른 게 매력이다.
보이즈 플래닛의 한국인과 글로벌 참가자 대결구도도 흥미진진하다.
중국, 일본, 미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이 오직 K팝 가수가 되기 위해 자국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꿈을 찾아 한국에 온 것부터가 대단한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K팝의 위세가 이 정도였나 싶어 깜짝 놀라기도 했고, 프로듀스 101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에 반해 피크타임에서는 외국인을 볼 수 없는데 아이돌 세대의 차이를 볼 수 있어 4세대 아이돌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금하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짠내 나는 아이돌 성장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프로듀스 101이 본체인 만큼 보이즈 플래닛도 편집을 피해 갈 수 없다. 3회까지 진행된 현재, 이미 악편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걸 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자극과 경쟁을 유도하는 느낌이다.
프로듀스 101의 순위 조작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투표를 외주업체인 <삼일 PwC>에서 검증을 거친다고는 하지만, 제작진의 편집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보이즈 플래닛 제작진은 아이돌과 그 팬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팬들은 내 아이돌이 제일 빛나길 바라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함께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소외되거나 좌절하는 걸 참을 수 없어하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자극해 투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걸 다 알면서도 자극적인 막장 스토리에 빠져들게 되는 건 그 밑바탕에 깔린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악편이나 일부 참가자에게만 집중된 편집 탓에, 공연에 집중한 피크타임이 보기에 더 편하다는 시청자도 많다.
두 프로그램 다 시청률이 1%대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즈 플래닛의 화제성이 높아짐에 따라 피크타임도 덩달아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도 그 수순을 밟았고,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보이즈 플래닛이 3회 만에 대박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늘, 지난 수요일 3회를 방송한 피크타임은 본격적인 경쟁 미션에 들어가자 반응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짠내 나는 서사보다 엇비슷한 실력의 공연을 주로 보여주다 보니 자극성과 화제성에서 밀린다. 다들 잘하는데 다 보고 나면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2회까진 잘하고 못하고의 비교가 가능해서 올픽을 받은 팀이나 짠내 스토리가 있는 팀은 주목을 받았다면, 3회부터는 더 이상 스토리 면에서 보여줄 게 없다. 팀으로 참여하다 보니 개개인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어렵고, 애초에 스토리보다는 공연 포맷이라 이제 와서 갑자기 스토리를 강조하기도 애매한 모양새다.
1인 참가자들로 결성된 24시 팀이 주목을 받는 이유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편하게 보는 것보다 불안과 긴장을 유발하는 무대에서 더 흥미진진해지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연습생과 망돌이라는 설정의 활용
어떤 방송이든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 중심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엔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가 빠지면 프로그램이 밋밋해진다.
그걸 정확히 알기에 보이즈 플래닛 제작진은 욕을 먹으면서도 스토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억울할 수 있고 시청자 또한 우롱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욕하면서 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피크타임의 순수한 의도는 좋지만 이미 ‘망돌’이라는 강한 프레임이 작용하는 포맷에서 순수한 의도가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웹소설 현대 판타지에서 인기작의 설정이 ‘망돌의 성장’을 그린 스토리라는 걸 아시는지. 최근 방송된 ‘성스러운 아이돌’도 망돌과 몸이 바뀐 대신관이 남자 주인공이다.
피크타임에서도 어떤 1인 참가자가 망돌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닥치게 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사실 그 참가자의 포부가 피크타임의 의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피크타임 제작진이 망돌 키워드를 제대로 못 살리는 게 무척 아쉽다.
확실한 스토리를 보여준 알바돌 팀이 최종 승리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만큼 시청자는 공연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기억한다. 공연은 1회성이지만 스토리는 계속 남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보이즈 플래닛은 연습생이라는 인물 설정을 영리하게 활용해 성장이라는 기획의도가 돋보인다. 원석 같은 연습생들 속에서 프로가수인 이회택의 도전이 빛을 발하는 것도, 프로가수가 연습생이 되는 역발상 설정 자체로 이미 그에게 엄청난 서사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스 101에서 곡을 주던 아티스트였기에 더 신선한 충격이었다.
BTS 백댄서 출신으로 만렙을 찍은 듯한 성한빈도 첫 화 때부터 1등으로 밀어주는 모양새인데, 다들 킬링파트를 욕심 낼 때 혼자만 다른 팀원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인성까지 완벽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중간평가 이후 자진해서가 아닌 모두의 동의하에 킬링파트를 맡는 걸 보고 개인의 스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승부는 결국 스토리다.
불타는 트롯에서 첫 화부터 계속 띄워주던 황영웅도 결승 녹화까지 한 상태에서 과거 폭행 전과로 발목이 잡히지 않았던가. 실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개인사도 중요한 한국시장에서 과연 순수한 공연 오디션이 먹힐까.
시청자는 엔터테인먼트 직원이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연습생이나 무명 아이돌이 실력도 좋고 인성도 좋아서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도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동기부여가 되고, 이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아 서로 윈윈 하는 관계로 살아가길 바란다.
단순히 멋진 무대만 보여줘서는 동기부여를 받기에 부족하다. 이미 결과를 보여주는 아이돌은 넘쳐나고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피땀눈물의 현장은 시청자가 모르는 세계다. 시청자가 빠져드는 건 결과치인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의 모습이다. 무대 뒤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 스토리는 극적으로 완성된다.
서바이벌 경쟁에서 알맹이가 빠진 화려한 무대만으로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없다.
피크타임 역시 알바돌의 짠내 나는 스토리에 심사위원인 라이언 전이나 송민호가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던 것처럼 참가자들의 스토리에 좀 더 할애한다면 그들의 무대가 훨씬 돋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