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

찬란하게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 그리고 그 '모양'

by 예은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What would I say?). 마냥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얘기로 만 치부하기엔 이 영화는 다루고 있는 아픔이 많고, 이 아픔만 내비치기엔 둘의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애틋하다. 사랑. 그래, 이 영화는 그들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비정상적이라고 취급됐지만,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 아름답고도 아픈, 그리고 많은 의미를 담게 된 그들의 사랑을 이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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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부수다

이 영화를 가볍게 보자면, 어쨌든 사랑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안에 감추고 있는 의미가 꽤나 깊이 있다. 우선 나는 이 영화가 여러 가지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부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깨부수고자 하는 정형화된 이미지의 첫 번째는 '신'에 대한 이미지이다. 영화에서 물고기 인간, 혹은 괴생명체로 불리는 '그'(나는 이 글에서 '그'라고 표현하겠다.)는 아마존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이다. 이런 '그'를 보고 리처드(마이클 섀넌)는 신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라며 '그'가 신 임을 반박한다.


나 또한 이 부분에서 놀랐던 이유가, 살면서 한 번쯤 신의 형상을 그려볼 법한데, 내가 그린 신의 형상은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 그중에서도 백인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실 신이 꼭 인간의 모습을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데도 우리는 은연 듯 신을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리곤 한다. 사실 우리가 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그'야말로 진정한 신일수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그'를 통해서 신에 대한 이미지를 깨부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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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미지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는 '인간'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진다. '그'는 인간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나마가 '물고기 인간'이고, 대다수는 '그'를 괴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인간'으로 정의 내린 이미지에 그는 꽤나 부합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생김새가 전형적인 인간의 이미지에 가까운 우리는 당연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익숙한 명제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그'를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부하려는 리처드에게서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그'를 보호하고자 한다. 엘라이자는 '그'를 돕기 위한 행동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남긴다. 그녀의 말로부터 우리는 이 명제를 다시 실감할 수 있다. 우리도 스스로를 당연하게 '인간'이라고 명명할 수 없다. '인간'다운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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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양, 그리고 셰이프 오브 워터


이 영화는 이렇듯 다양한 이미지들을 타파하는데, 가장 크게 깨부수는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사랑'에 대한 이미지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탄생과 동시에 언제나 인간과 함께한 감정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어떠한 정형화된 틀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가령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사랑한다는, 지금은 너무나 구시대적인 시각이 되어버린 고정관념 같은 것 말이다. 지금 막연히 이상형을 상상해보라! 고 한다면, 아마 나는 같은 한국인의, 같은 대학생 정도의 나이대의 남성을 상상할 것이다. 세부 조건이 어떻든 말이다.


이러한 정형화된 틀이 '사랑'의 형태를 그동안 옭아매고 있었다면, 이 영화는 이 틀을 간단히 벗어던지고 나와버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특이'하다. 말을 못 하는 여성과 인간인지도 의심받는 '그'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특이하다'라는 설명 자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사랑은 '아름다울 '순 있어도 '특이'하지는 않다. 그 어떠한 조건도, 어떠한 정형화된 틀도 사랑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설명하는 사랑의 '모양'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이 셰이프 오브 '워터(water)'인 게 이해가 된다. 이 영화에서 다시 정의 내리는 '사랑'은 마치 물과 같다. 사랑도, 물도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 수도,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통에 담아두고 통 모양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통을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또한 이 세계의 만물을 아우르는 물처럼 '사랑'도 모든 것을 아우른다. 물이 조건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도 조건부로 구성되지 않는다. 즉, 이 영화의 제목 자체가 사랑을 뜻하는 셈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물의 모양은 어느 하나의 형태로 규정할 수 없다. 사랑의 모양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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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영상, 아름다운 음악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러한 규정될 수 없는 사랑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영화를 보는 건지 한 편의 동화를 읽은 건지 싶을 정도로 영화는 황홀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정적이고 담담하게, 또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엘라이자와 '그'의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미국의 60년대의 감성과 더해져 약간은 복고스러우면서도, 그래서 익숙한 클래식 영화의 사랑 이야기처럼 둘의 사랑은 보인다. 이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영화가 흘러가다 보면, 엘라이자와 '그'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대상들이 아닌, 그저 한 명의 '여성'과 '남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영상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이 영화의 감성을 더 증폭시킨 요소는 음악이다. 잔잔하고 조용하게라도 이 영화의 모든 장면에 배경음악이 깔려있다. 때로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때로는 영화 속 TV 소리로 빈 곳 없이 꽉 채운다. 나는 이렇게 계속 존재해 있는 음악이 두 연인의 소리의 부재를 채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엘라이자도 '그'도 '소리'로 말을 하지 못한다. 수화를 통해, 그리고 눈빛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지만, 둘 사이에 소리로 된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가 너무 정적이고 조용할 수도 있는데, 이 빈 공간들을 영화의 배경음악들이 꽉 채우고 있는 것이다. 또 영화 안에서 음악은 엘라이자와 '그'가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말은 못 하지만 들을 수는 있는 그들만의 소통의 방법인 셈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음악 덕분에 이 영화는 더욱 꽉 채워질 수 있었고, 더 아름답고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일조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정말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였다. 아프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감독은 세상 더할 것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표현해낸다. 영상과 음악이 선사하는 아름다움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한 영화이다. 심지어 여기서 그치지도 않는다. 이 아름답고 아픈 사랑 이야기 사이사이에 감독은 많은 메시지, 특히 사랑의 정형화되고 고착화된 이미지에 의문을 남긴다. 그리고 이 의문 끝에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랑의 모양을 물에 빗대어 표현한다.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참 찬란하고,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한, 그래서 짙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나의 별점 : 4.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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