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그래서 주목받지 못한 슬픔에 대하여
'헬프'라는 딱 들었을 때에는, 아마 '도움'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같다. 그러나 '헬프'는 미국에서 가정부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의 가정부이다. 가정부라고 해서 요즘의 가사도우미가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정부들은 당연히 '흑인'이다. 이 영화는 주목받지 못했던, 60년대 미국 남부의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이다.
60년대 미국의 흑인, 그중에서도 여성
1960년대의 미국은 인종차별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심했었다. 남북전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차별적 세태들은 북부, 동부보다 남부에서 더 극성이었는데, 이 영화의 대사를 인용해보자면, 흑인 가정부들은 백인 아이를 기르면서도, 그 백인들과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는 신세였다고 한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흑인은 피부색만을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고, 그 차별들은 많은 흑인 인권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차별을 타파하는 과정 속에서도, 차별은 존재했다. 그동안 상영된 대부분의 흑인 인권에 관련된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흑인 ‘남성’의 노예생활, 해방,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흑인 인권운동 등, 흑인 '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차별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지만, 인권을 주장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분이 존재하는 셈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특이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흑인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가정부들은 물론, 그들을 부리는 백인 계층 역시 모두 여성이다. 주인공이 흑인 여성인 영화도, 또한 여전히 주조연급의 캐릭터가 모두 여성인 영화도 흔치 않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 주목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의 여성, 그리고 가정부라는 주인공의 직업상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은 집 안이고, 더 나아가 봐야 잭슨빌이라는 마을 하나뿐이다. 다른 흑인 인권 영화들처럼 과격한 시위의 장면이 나오지도, 감동의 연설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이 영화는 그 당시 일상 안에서 여전히 잔재하며, 모든 그들의 행동에 투영되어있는 백인의 우월의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흑인 가정부들에 대한 차별행위들에 대해 그리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어쩌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영화가 소소하고 소박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밝은 분위기와 밝을 수 없는 이야기
이 영화는 인종차별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 비해 굉장히 가벼운 분위기로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백인들의 홈 파티 장면과, 다이닝 파티, 그리고 여유로운 한때들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 그러면서도 조금은 들뜬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이런 영화의 밝은 분위기가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더 큰 갭을 만들어서, 이 주제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백인 여성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홈 파티를 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홈 파티를 준비하고, 파티를 즐기는 동안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는 흑인 가정부의 바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갭은 연말 파티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백인 여성들은 가난하고 굶주린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 파티를 연다. 그 자선 파티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연히 흑인 가정부들이다. 아이러니이다. 흑인을 돕기 위해 열었다는 파티에서 흑인은 여전히 차별 속에서 일해야 한다.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처지가 익숙하다. 그들의 부모가 그랬고, 그 이전도 그랬고, 아마 그녀들의 이후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백인이 흑인을 무시하고 차별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스키터(엠마 스톤)’나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는 백인이지만 흑인 차별행위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가정부들을 다른 백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한다. 나에게는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와 셀리아가 함께 치킨을 만드는 장면이 이러한 차별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으로의 교류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니에게 치킨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미니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다독여주는 존재이다. 때문에 치킨을 셀리아에게 가르쳐주는 장면은 셀리아가 처음으로 가정부 '미니'가 아닌, 사람'미니'의 감정을 공유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치킨은 흑인에 대한 차별과 관련된 음식이기도 하다. 치킨은 원래 백인들이 살코기를 먹고 남은, 뼈 많은 닭의 부위들을 흑인들이 쉽게 먹기 위해 만들게 된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장면을 봤을 때, 셀리아와 미니의 사람대 사람으로의 교감, 그리고 흑인으로 미니가 받은 차별의 다독임, 이런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다.
영화 전반적으로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너무 만족스러운 동시에 안타깝다. 이 영화는 크고 대외적인 인종차별 문제가 아닌, 소소하지만 생활 속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 더 이상의 흑인 차별은 없다는 이상향을 그리지 않는다. 단지 미니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에이블린이 차별받으며 일하는 것을 그만둔 것이 전부이다.
나는 이 결말이 이 영화와 가장 어울리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으로 당장에 세상을 뒤엎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본인들의 고통에 대해서 말할 용기를 주었고, 그 용기는 다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맞설 용기를 만든다. 그래서 그 용기로 그녀들은 작지만,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역시나 백인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뀐 것도 아니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결말이 안타깝고 동시에 만족스럽다.
다만 하나의 아쉬운 점은, 여전히 스토리의 흐름을 이끄는 사람이 백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대상, 흑인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시대였고, 그렇기 때문에 조력자인 백인 캐릭터가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스키터가 가정부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출판하고, 결국 작가의 꿈을 이루는 모습은, 여전히 백인 중심적인 흐름으로 영화가 그려진 게 아닐까 우려하게 만든다. 그리고 중간에 존재하는 스키터의 러브라인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요소였을까 싶다. 스키터는 이미 충분히 진취적이고,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다른 여러 장면에서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굳이 남자 없이 괜찮아라는 그녀의 진취적 모습을 러브라인으로 보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그 러브라인이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잘 드러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의 차별 문제를 그려내, 그녀들의 아픔을 좀 더 실감할 수 있었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었달까. 특히나 이러한 '차별'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밝은 분위기에 녹여내면서 그 갭 때문에 더 크게 느껴졌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남성 주인공 없이, 여성 캐릭터들만으로 이끌어진 영화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소재도, 영화가 그려내는 분위기도 다 마음에 든다. 다만 여전히 백인 중심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차별 문제를 참신하고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나의 별점 : 4.5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