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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원 Jan 14. 2024

편지 쓸 결심, 아들에게

소통과 배려의 글쓰기

아들, 미안하다.

엄마가 모처럼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왔어.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어. 

참, 엄마는 브런치 작가란다. 몰랐지? 넌 8년을 채 안 살았으니 브런치 작가라는 것도 모르겠지? 아니, 엄마가 설명해 주면 다 알 거야. 엄마가 쉽게 설명해 주면 모두 알 수 있는 너인데, 엄마가 넌 모르겠지? 라며 엄마 입장에서만 또 생각했네.

암튼, 브런치에 정말 두 달 만에 글을 쓰려고 들어왔어. 동화 쓰기에 집중한다고 안 들어오고, 독감에 걸려서 안 들어오고, 학년말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못 들어오고, 방학 때 많이 쓰겠다면서 계속 미루고 미루었던 글쓰는 작업실 같은 곳이야. 

위기철 작가의 <이야기가 노는 법>이라는 책이 있어. 위기철 작가님은 알지? 아홉 살 인생을 쓴 작가, 네가 재밌게 읽은 초록고양이를 쓴 작가란다. 위기철 작가님은 소설도 쓰고, 엄마가 어렸을 적에는 논리야 놀자 같은 어린이 철학서도 쓰고, 10년 전에는 동화작가를 위한 작법서 같은 <이야기가 노는 법>이라는 책을 쓰셨어.

지난주에 <시간 가게>를 쓰신 이나영 작가님의 특강을 듣고 이 책을 추천받았어. 그래서 바로 집 앞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을 해서 며칠 전부터 엄마가 공책에 적어가며 정독을 하는 책이란다.

이 책에서 그러는 거야.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작가가 있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작가가 있다는 거야. 엄마는 그 사실을 몰랐거든. 그래서 열심히 읽었더니 '하는 말'과 '듣는 말'이 다르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아냐, 넌 설명해 주면 결국엔 마지막에 가서는 다 아는 거 같더라. 그래서 우리가 대화가 잘 되잖아. 엄마는 네 글이 재미있고, 너는 엄마 글이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사이잖아.

자기중심의 글쓰기를 하는 작가와 독자 중심의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나뉜다는 거야. 물론 엄마는 이 이야기를 최근에 이재복 평론가님의 판타지 sf 창작 이론 수업에서 계속 들어서 알고는 있었어. 그런데 이 책에서 좀 더 쉽게 알려줘서 그 말이 엄마 마음에 쏙 들어왔단다.

이재복 평론가님은 우리가 근대교육을 받은 세대라서 고백의 문학에 길들여져 있다고 말씀하셨어. 신화시대의 사람들은 전승문학이라고 하는 민담과 신화형태의 글에 익숙해져 있는데 말이야. 그건 전승문학의 특성상 문자가 상용화되기 이전의 들려주는 이야기 시대의 일이지. 물론 이 고백의 문학은 권력과도 관련 있지만, 그건 너에겐 조금은 어려워서 아니 솔직히 엄마가 설명하기에 장황해서 나중에 알려 줄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고백의 문학과 들려주는 이야기 형태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있었어. 근데 이 책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와서 집중해서 읽었지.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고백을 강요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학교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잘 드러나게 글을 쓰는 교육을 많이 시킨다는 거야. 근데, 위기철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글은 '남의 감정과 생각을 잘 배려한 글이다!'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시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무척 반성했단다.

엄마는 말이야, 인스타를 열어 놓고 일기를 써 대고 블로그를 개설하고 줄곧 일기식의 자기 고백 글쓰기를 해 왔거든. 누가 읽든 말든 SNS 소통의 창구를 일기장으로 착각하며 글쓰기를 해댄 거야. 너무 부끄럽지 않니? 물론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엄마는 타자의 감정과 생각을 배려하면서 글을 쓴 기억이 거의 없거든. 그저 일관되게 내 생각만 주야장천 써 댄 거야. 누가 댓글이라도 달면 좋아요만 누르거나 하트만 누르고 대댓글도 달기 귀찮아했지. 그러니 어떻겠어? 조회수가 나오겠니? 그런데 엄마는 얼마나 안일한 생각을 했냐면 그래도 상관없다고 자기 위로를 하면서 난 직업이 있는데 굳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피곤한 소통을 하면서 글을 쓰고 SNS를 관리해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여태껏 일기만 써댄 거지. 그래서 부끄러웠던 거야. 엄마 스스로 엄마의 생각을 잘 아니까.

위기철 작가님은 게다가 동화작가가 되려면 일기 쓰기는 그만하고, 편지 쓰기를 하라고 하셨어. 그래서 지금 너에게 첫 편지를 써 보는 거야. 하하하.

엄마는 결심했거든, 더 이상 자기 고백의 글을 공개적으로 쓰지 않겠다고. 그리고 편지 쓰기에 익숙해질 거라고 다짐했어.

좋은 글은
내 느낌이나 의견을 잘 표현하는 글이
아니라
남의 느낌이나 의견을 잘 배려한 글이다.

넌 1년 동안 축구에 푹 빠져서 엄마가 책을 읽는 동안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지. 오늘은 첼시를 응원하고 있었어. 첼시가 페널티킥을 해서 이겼다고 좋아했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글을 쓰는 엄마 곁으로 왔지. 그리고 엄마한테 같이 들어가서 자자고 보채기 시작한 거야. 엄마는 그때 막 '글쓰기' 탭을 누르고 열 줄 정도 쓰고 있었거든. 엄마는 독서와 글쓰기를 방해받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지쳤나 봐. 오늘 하루 종일 소율이와 너에게 방해받았다고 생각했나 봐. 하루를 잘 살아왔다고, 오늘 하루 너희들과 소아과도 가고, 치과도 가고, 탕후루도 사 먹고, 무이숲에서 커피도 사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마당 잔디에서 넌 축구도 하고, 엄마는 정성껏 저녁을 차려주고, 저녁 먹고는 <심술쟁이 내 동생 싸게 팔아요> 독후활동도 너무 재밌게 했잖아. 

그런데, 마지막에 너에게 소리친 거. 그게 오늘의 너와 나 사이를 다 망친 것 같아. 엄마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어버렸어. 조금만 더 너를 이해했어야 했는데, 결국 샤우팅으로 하루를 마감했고, 너는 속상해서 침대에 돌아 누워서 말도 않고 자버리는구나. 오늘은 엄마와 네가 같이 자고, 소율이랑 아빠가 같이 자는 날인데 말이야.

꿈나라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아들아, 엄마가 고함지르는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다시 도란도란 엄마랑 이야기 꽃을 피우자꾸나.

오늘 네가 아프다고 해서 엄마가 맨손으로 너의 등과 온몸을 쓰다듬고 마사지해준 거 기억하지? 엄마가 공치사하려는 건 아니고, 늘 그렇게 다정하고 기분 좋게 배려하면서 지내야 하는데 속상한 마무리가 되어 아쉬운 날이네.

지금도 엄마의 느낌이나 의견을 잘 표현하는 글을 쓰고 있는 거 같다. 내일은 좀 더 너의 느낌이나 의견을 잘 배려하며 글을 써야겠어.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소통하는 엄마, 소통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밤낮없이 노력해야겠어.

잘 자렴 아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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