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선별하거나 상실하지 않으려는 탐구자, 에드워드 리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는 <흑백요리사>에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실력이 출중한 출연자들의 화려한 요리 스킬 (그래서 보기가 굉장히 편한), 제한된 시간과 자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기본 원리), 그리고 심사위원의 맛깔나는 심사평 정도? 먼저 공개된 네 편은 내가 기대하던 것 그 이상을 벌써 채워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더 인플루언서>나 <오징어 게임>같은 서바이벌을 필두로 한 넷플릭스 콘텐츠에서 내가 싫어했던 부분들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며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이 없진 않았지만)이나 자극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미션-을 상당 부분 덜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출연진의 크리에이티브한 면모를 두드러지게 보여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겠다.
후반으로 가며 생존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프로그램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포인트에서 열광하고 있었다. 바로 디아스포라적 존재의 약진이었다. 에드워드 리, 이균 셰프. 많은 이들이 실질적 우승자로 꼽는 에드워드 리는 프로그램 후반부의 한 축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백악관 셰프’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다. 한국어는 서툴지만 어쨌든 한인은 한인이기에 ‘자랑스러운 한인’이란 수식어가 붙을 것 같은 그가 수행하는 역할은 ‘사실 한국이 해준 것은 없지만 타국살이 경험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정체성을 취사 선택 당하기 좋은 존재’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에드워드 리의 캐릭터는 환하게 생동하고 매회 도약했다. 묵은지 소스와 단감을 페어링한 샐러드로 시작, 젊은 양식 셰프들이 양식이라는 바운더리 내에서 조금씩 바리에이션을 줄 때 장을 전면에 내세운 장아저씨 컨셉으로 세련됨과 구수함을 밀어붙인다. 그리고 정점을 찍은 ‘나는 비빔 인간입니다’ 사건. 유비빔의 망령이 스쳐지나가며 웃은 사람들이 많았을 테지만, 사실 유비빔씨가 최고로 여기는 가치인 ‘비빔-융합’과 에드워드 리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굉장히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에드워드와 균, 두 개의 이름 그 어느 쪽도 긍정 해야 하는 이민자는 인생 전반이 비빔의 여정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이민자는 존재 자체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그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수행한다는 뜻과 동치다. 둘이 동일인인 동시에 어느 평행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타국의 이방인일수도 있는 정체성의 양립을 끊임없이 수행해낸다.
자기 정체성에 대해 일생의 고민을 해 온 이들이 내놓는 스토리에는 진심과 깊이가 담겨있다. 결승전에 함께 올라 간 나폴리 맛피아와의 차이는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나폴리 맛피아가 논커피 메뉴에 아메리카노를 기재하거나 자꾸만 이탈리아 본토와 지역 이름을 언급하고 나폴리는 원래 이렇다며 (물론 그도 타지에서 고생을 했고 할머니와의 스토리를 담은 게국지 파스타는 인상 깊었지만) 파브리보다도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니까 나폴리 맛피아에게 이탈리아는 정체성이라기보다 ‘지향점’이다. 반면 음식이라는 여정에서 에드워드 리의 나침반은 온전히 한국을 향해있지도, 미국을 향해있지도 않다. 에드워드 리의 지향은 양갈래 혹은 더 많은 갈래로 확산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요리는 탐구의 한 방법으로도 보인다. 한인 뿐만 아니라 이민자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나오는 다발성 지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오직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정체성’을 만든다.
우리는 에드워드 리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그의 정체성은 맥락과 청중에 의해 끊임없이 선택 당한다.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의 어눌한 외국인 발음을 흉내낸 ‘물코기’라는 말이 유행한다. 그가 정성들여 쓴 스크립트의 군데군데 어긋난 맞춤법을 보며 '귀엽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그는 한인 2세로서 현지인들에게 종종 이방인 취급 당했을 것이다. 타국도 조국도 어쩌면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한 경험과 고민이 알게 모르게 푹 고아져 그의 요리와 솔루션, 크리에이티브에 충실하고 진실된 스토리와 함께 녹아나온다는 점이 감탄스러웠다. 세상과 자신, 타인과 자신, 혹은 자신과 자신의 관계를 탐구하고 혼돈과 두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에드워드 리이며 동시에 이균이고, 이민자이며 한국인이고, 그 무엇도 상실하거나 선별하지 않고 품어내려는 그의 요리가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