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었어야 : 뮤지컬 <웃는 남자>

강남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부자들을 위해 열리는 기이한 쇼

by 예얀

주의사항 : 필자는 원작을 읽지 않았음 / 비추 리뷰 절대 아님 / 모든 배우 정말 잘하고 존경함 / 돈 내고 두 번 봄 / 줄거리 스포 있음 /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은 고려하지 않은 리뷰 /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24.01.11 자첫

규현 민영기 이수빈 김소향 강태을 문성혁 김영주


24.01.24 자둘자막

이석훈 서범석 장혜린 김소향 강태을 문성혁 김영주



평생을 밑바닥에서 입이 찢어진 채로 광대놀음을 하며, 자신을 보러 온 귀족에게 핏대를 세우고 조롱하는 20살 청년. 알고 보니 모종의 암투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귀족 세계에서 내쳐졌던 것으로, 사실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유일한 적자였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천지가 개벽하고 귀족의 세계에 입성. 보드라운 실크 이불에 잠시 이것을 누릴지 말지 갈등하다, 백성들 생각이라곤 빵부스러기만큼도 하지 않는 귀족 의회를 보며 각성을 촉구. 그러나 자신의 몸부림이 부질없음을 느끼고 자신의 행복할 권리를 찾아 다시 사랑했던 여인을 찾아가고, 종국엔 그를 따라 저승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벌써 4연을 올리게 된 <웃는 남자>는 되게 이상한 구석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상한 구석이란 이 뮤지컬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말한다. 티켓파워를 몰고 올 아이돌 보컬리스트를 1롤로 캐스팅하고, 서울 강남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극을 올리며, 시야가 확보된 좌석에 앉기 위해서는 인당 17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은... 목이 찢어져라 울부짖는 하층민 주인공의 목소리가 그저 장식이었음을 시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뮤지컬은 고급취미다. 물론 없는 주머니 사정 쥐어짜가면서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17만 원의 가치를 별 어려움 없이 환산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별 고민이 없이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웃는 남자>는 분명 돈값하는, 만족이 보장되는,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의 맛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3시간에 17만 원을 태울 수 있는 공연예술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 달 밥 값보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품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웃는 남자>는 시대적 배경이 무색하게 계층 의식을 묘하게 스루한 뮤지컬이다. 애초에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역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며 (빅토르 위고 원작이라길래 사실 이것을 기대했다.. 두유 히얼 더 피플 씽...), 제목 그대로 사회적 격랑 속 어떤 '남자'의 존재론적 비극을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각색해 낸 작품으로 보인다. 1막 초반에 우르수스가 관객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장면이 있다. 마치 콘서트처럼 '나를 기준으로 오른쪽 박수! 왼쪽 박수!'를 시키며 우리를 그 극중극 프릭쇼 보러 온 사람으로 위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지점이 참 애매하다. 그렇게 우리를 '적극적 방관자'로서 극에 끌어들이려 하면서도 거금을 들이고 쇼를 보러 온 관객의 '키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그윈플렌의 목소리는 극 중 귀족들만을 향하며, 그 화살촉은 추진력을 잃고 죽음의 낭만과 개인의 비극으로 추락해 버린다.


SE-C9A3E5F3-4706-4319-BA02-F19698C4A05D.jpg?type=w966 이 극에서 부페(아님)하고 타락한 귀족은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하고 싶은 거냐면, 나같이 사회에 불만 많고 급진적인 사람들은 <웃는 남자>를 보고 나서 많이 많이 아쉽다는 것이다. 이 뮤지컬의 목적은 관객들이 '와 돈값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17세기 영국과 지금의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거나, 서초구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내가 바로 고오급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임을 자각하거나, 그윈플렌이 '그 눈을 떠'달라고 호소하는 대상이 관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선 안된다. 애초에 공연예술에서 갑자기 외연을 건드리면 몰입이 훅 빠지는 것이니 그걸 수행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쳐도, 뒤돌았을 때 무엇이 남는가 했을 때는 배우의 역량, 극의 연출, 무대 미술 등에 대한 순수한 감탄뿐이었다.


돌아보니 또 내가 핀트를 잘못 잡았나도 싶다. 애초에 그윈플렌이 원하는 것은 계층 전복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할 권리였다. 그윈플렌은 고작 20살 된 청년이다. (물론 그 시대의 20살이면 나이 보정 +10은 해야 할 듯싶지만) 아무리 눈을 뜨라고 부르짖어도 자신의 힘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아버린 그에겐 데아의 곁 외에는 더 이상 있을 곳이 없기에 함께 하늘의 별이 되는 편이 나아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이왕 갈 거면 궁전에 불이라도 지르고 가지 싶었다. 아님 <그 눈을 떠>한 세 번은 불러 보고 포기해야지... 행복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비극적인 죽음... 개인적으로 나이가 좀 어렸을 땐 콘텐츠 속 죽음의 낭만이 참 좋았고 사랑이든 뭐든 파멸이 참 좋았는데 이젠 이 낭만이 더 이상 와닿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파멸은 가부장제 신분제 여성혐오 그 외에 모든 부패한 권력의 파멸뿐... 이건 내가 리지를 자15 찍은 뒤에 본 작품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대의를 이룩하는 숭고미가 아닌 사랑과 함께 죽어버리는 숭고미... 또한 마음을 울리긴 한다.


<웃는 남자>의 아쉬운 결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개인적으론 <눈물은 강물에>가 더 전면에 도드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데이빗의 강간미수 사건 후 여성 캐릭터 & 앙상블이 함께 부르는 넘버인데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었다. 빨래터라는 배경과 발랄 여성의 경쾌한 안무와 하모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며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까지... 누군가에겐 자칫 흘러가는 넘버로 들릴 수 있겠지만 광대놀음 무대 뒤 진짜 서민들의 모습을 잠시나마 깨끗하게 비춰주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뮤지컬이, 그리고 특히나 대형극이 원래 그렇지만 이야기를 쉽고 편하게 전달하기 위해 스테레오 타입과 이야기의 원형들에 많이 기댈 텐데, 그럼에도 묘한 것은 이 뮤지컬이 권성징악의 형태를 차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귀족은 욕심 많고 나태한 이들, 서민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의지하며 뭐... 근데 또 항거 그런 거는 없다. 데이빗과 그윈플렌이 칼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애초에 쉬운 전개에 예측 가능한 평평한 흐름으로 가는 뮤지컬이면 강간미수범 데이빗의 성기, 아니 손목이라도 잘랐어야 했는데 그는 '조시아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얻어 도망을 친다. 아 그의 도망을 조시아나가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윈플렌이 뽑아 든 칼로 손목이나 목을 썰었다면 데이빗은 이런 대사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OO는 지키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와중에 또 몇몇 캐릭터 설정은 굉장히 납작한데 특히 데아가 그러하다. 비극적이게도 장님으로 태어난 병약한 미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요정 같은 존재. 데아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며 살아있는 인물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눈물은 강물에>에서 폴짝 뛸 때뿐인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으나, 일단 캐릭터가 살아 숨 쉬어야 죽는 것이 아쉬운데 어쩌면 도구적으로도 쓰인 것 같아 (남주 옆에는 응당 요뎡여주) 막상 숨을 거두었을 땐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이 극에서 가장 슬픈 순간은 메인 인물 둘의 죽음보다도, 자식 둘을 동시에 잃은 우르수스가 무릎을 꿇어버리는 장면이다. 그윈플렌은 애비를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자살했으면 안 되는 거다... 그렇게 자식들은 와이어에 매달려 안드로메다로 가버린다.



8733.jpg?type=w966 아름다운 향시아나 출처 EMK 블로그


<웃는 남자>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는 그윈플렌도 데아도 아닌 조시아나 공작이다. 김소향이 나의 애배라서가 아니라... 진짜 조시아나 캐릭터가 가장 흥미롭고 입체적이고 그의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게 된다. 귀족 가문의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을 언니인 앤 여왕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끔찍하게 징그러워하며 무료한 삶 속 일탈을 꿈꾼다. 소설 같은 거 썼으면 잘 쓰셨을 듯. 덕분에 굉장히 투명하고 재밌는 심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윈플렌을 처음 본 순간 조시아나는 첫눈에 반해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윈플렌이 귀족 작위를 되찾고 앤 여왕의 명으로 둘이 결혼하게 되자, 조시아나는 갑자기 그윈플렌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매우 절망하며 조시아나의 모든 심경과 행동은 운명 반대편을 지향한다. 내가 청소하면 하고 싶지만 엄마가 청소하라고 하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기전과 조금 비슷하달까 (다름)


앞서도 말했듯이 그윈플렌이 심봉사도 눈 뜨게 할 성량으로 그 눈을 떠달라 간청해도 앤 여왕을 필두로 한 모든 귀족들은 '잊혀질 날'이라며 그의 시도 부질없다고 일축한다. 그 와중에 조시아나는? 자첫 때는 몰랐는데, 자둘 때 보니 <그 눈을 떠봐>에서 조시아나는 그윈플렌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왜 울지?'라는 혼란스러운 표정과 함께 그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마침내 가발을 벗어던지고 (내 성에는 차진 않는) 깽판을 치고 내려온 그윈플렌에게 한달음에 다가간 조시아나는 자신이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얘기한다.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네가 보여줬어." 그치만 그윈플렌의 눈엔 조시아나도 다 똑같은 귀족 작자들이다. 10톤 트럭급 현타를 맞은 그윈플렌은 각기쇼를 펼치고, 그 자리에 혼란스러운 조시아나가 선다. <내 삶을 살아가>에는 그래서 감동이 있다. 유일하게 각성의 여지가 있는 귀족. 물론 데이빗이 저지른 끔찍한 일을 알기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지만.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게 된다.





<내 삶을 살아가> 얘기하다가 갑자기 <내 안의 괴물> 소개하기.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최애 넘버는 바로 이거다. 오페라극장 뚜껑 날아갈 것 같은 경험을 할 수가 있다. 넘버를 들으면 알겠지만 굉장히 뭐랄까 좀 부끄러우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넘버로 마음껏 드러내는 여성에게 반했달까. 사실 입이 찢어진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 굉장히 kinky 한데 이건 억압된 귀족 여성이라면 응당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긴 하다. 관극하고 나서 동행인과 함께 그 부분에 대해 토론하며 '그... 그 초등학생 관람가 아니야?' 하면서 나왔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윈플렌과 데아가 어릴 적부터 남매처럼 자라왔다는 사실을 봤을 땐 둘의 사랑이 약간의 근친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파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IMG_0637.JPG?type=w3840 김소향 배우의 롤링페이퍼. 향시아나가 그렇게 빛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글을 마치며... 자첫 때 어쩌다가 내 뒤에 앉은 모녀가 나눈 대화를 들었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문구를 두고 "저것도 맞는 말인데.. 가난한 사람들 중엔... 그냥 게을러서 거기서 안 벗어나려는 사람도 있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내는 세금이 그런 곳에 쓰이면 아깝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가난을 개인의 비극이나 부족한 노력, 게으름 여하로 뭉게 버리는 사람들이야말로 오히려 게으른 사고를 하고 있다. 삶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당사자뿐이다. 온 가족이 17만 원짜리 좌석에 앉아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강남서초 같은 관객들에게 웃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 글의 대부분의 요지는 자첫, 그러니까 2층에서 관람한 후에 정리한 것이다. 그땐 뭔가 막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 극을 이러쿵저러쿵 아쉬운 점을 말하려고 드릉드릉하다가... 자둘 때 1층 3열에서 보고선 그냥 그 생각이 (잠시) 싹 사라졌다. 진짜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예술의 스케일감이란 무대 밖의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고, 두서없는 글을 읽은 분들께 참 시간 뺏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 참 좋은 극이다. 살면서 한 번은 꼭 보면 좋을 진귀한 경험을 선사하는 뮤지컬이다. 이제 와서 무마해 본다.



한줄평 :

부자들의 만족이 보장된 쇼, 웃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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