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보호자 없이 두발자전거를 타보았다
인생 첫 따릉이 2021년 6월 19일
인생 두 번째 따릉이 2021년 7월 19일
20여 년 만에 다시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지만 곧바로 다음 기회는 오지 않았다. 따릉이는 사방팔방에 널려 있었지만 내 의지는 온갖 핑계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아직 장애물을 잘 피하지 못하니까, 딱히 목적지가 없으니까. 나에겐 큰 작정이 필요했다. 적당한 구간과 목적, 걷는 것보다 따릉이를 타는 것이 유리한 이유, 그 외 온갖 계산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하다 보니 따릉이를 끌다가 생긴 정강이의 멍과 종아리의 상처도 거의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 따릉이를 탄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나의 두려움을 넘어설 나름 적절한 기회가 왔다.
7월 중순쯤, 선제 검사 차원으로 우리 회사 전 직원이 코로나19 검사를 해야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원이 재택 중이었고, 마침 집 근처에 임시 선별 진료소가 개설되어 아침 일찍 가기로 했다. 지도 앱에 찍어보니 도보로는 15분, 자전거로는 3분 거리였다. 게다가 선별 진료소 가는 길은 횡단보도 한 번을 빼면 평평하다 못해 납작한 길이었고, 아주 널찍한 인도에 자전거도로까지 친절하게 포장되어있었다. 너무나 완벽한 구간이었다. 전날 밤 따릉이 1시간 이용권을 제로페이로 700원에 구매했다. 손잡이를 소독할 휴대용 알코올 스프레이도 구비했다.
7월 19일 아침 8시 50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따릉이 대여소에서 인생 두 번째로 따릉이를 빌렸다. 안장을 가장 낮게 조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페달을 굴렸다. 핸들이 내 의지와 다르게 꺾이며 발이 페달에서 떨어졌다. 어... 어떻게 탔더라... 한 달 동안 감각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겁내지 말고 페달을 밟는 게 가장 중요하단 말을 떠올리며, 한걸음 Closer를 웅얼거리며 냅다 페달을 밟았다. 조금 가나 싶었지만 앞에 놓인 가로등을 보고 겁부터 났다. 역시 같이 탈 사람이 있어야 했나, 정말 짧은 순간 반납을 고민했다. 결국 평평 납작 구간이 나올 때까지 난 그 무거운 따릉이를 정강이로 떵떵 차며 끌고 갔다. 내 옆으로 자전거를 탄 어르신들이 유유히 지나갔다.
넓고 안정적인 자전거도로에서 무사히 활주를 시작하고는 아주 잠깐의 속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2분도 되지 않아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가장 가까운 따릉이 대여소에 반납을 한 뒤 3분을 더 걷자 텅 빈 선별 진료소가 나왔다. 오전 9시에 도착했다. 총 10분이 걸렸다. 지도가 자전거로 3분 거리라고 했던 곳이었다. 무사히 검체를 채취한 뒤 나는 신나서 애인에게 연락을 했다. 너 없이 인생 두 번째 따릉이를 탔노라고. 검사가 어땠는지 따릉이가 얼마나 말을 안 들었는지 조잘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안전하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막상 적어놓으니 편도 2분 따릉이라니, 꽤 실망스러운 혹은 실패한 여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때의 나는 너무 뿌듯했다. 그래, 나 자전거 아직 잘 못 탄다. 2트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렇지만 한 달 만에 탄 것 치고는 어찌저찌 굴러는 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빌림과 동시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나와 따릉이는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도보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5분이나 단축이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강이에 멍이 또다시 들어있었는데, 그게 은근히 반가웠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대부분 발칙한 짓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 말은 우리가 행위를 너무 분절적으로만 이해하는 데에서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두 번도 어렵다. 그 말은 '점점 익숙해질 거야'라는 말의 한계를 보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해질 것이라는 말은 행위에 대한 결과나 보상이 너무 뒤늦게 오는 감이 있고, 그 행위를 너무 간접적으로 유도하며 무책임 해보일 수도 있다. 대신 행위를 '한 번, 두 번'으로 분절하면 사람은 단계를 인식한다. 지난번보다 더 나아진 점을 찾게 되고, 첫 번째 시도 때 내가 품었던 무용한 의심들을 거둘 수 있게 해 준다. 의심은 안개처럼 마음을 침범하는데 우린 그것들을 열심히 거둬줘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뒤에 가려져있던 용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용기 조차 필요 없어져 몸에 익어버리는 순간이 오는 것 아닐까.
요새 다들 하는 유행어인 '가보자고'가 참 마음에 든다는 어떤 사람의 트윗을 보았다. 의욕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이라고. 내 옆으로 자전거 수십대가 날 놀리듯 지나가든 말든 난 그냥 가보는 거다.
그러니까 멍이 들지 않고 따릉이를 탈 수 있을 때까지
따릉이에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도, 핑계를 버리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