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소심해져 간다는 것

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by 동치미


고등학교 시절 집에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게 됐을 때 아버지 말이 기억난다.


“너무 정을 주지 말아야 해 “


아버지도 누구 못지않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눈앞의 고양이를 귀여워하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이해가 잘 안 됐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이별은 이별이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양껏 사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해서, 미래에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너무나 슬플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행복한 만큼, 슬픈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게 내 일상이 된다. 머릿속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익숙하게 그 사람을 찾고 싶고, 또 찾게 된다. 그 사람의 말투, 표정, 옷 하나하나 신경 쓰이고 의미를 궁리한다.

과거에 내 애정을 담은 무언가보다 그 사람이 딱히 특별할 건 없는 것 같은데도, 왠지 모르게 눈이 가고, 찾게 되고, 안쓰럽고,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그게 문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을 내 일상에 더 들일 수록, 그 사람과 나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그 사람이 한 방 꽂은 칼은 나한테 천 개의 칼이 되어 꽂힐 걸 알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흑백인 누군가가 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 그 사람이 했다는 이유로 하루종일 신경 쓰이고 고민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언젠가 내 일상에서 사라진다면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듯이 시리고 허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한 나의 마음도 무한하지 않을 걸 이미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든 후부터인지, 사랑에 소심해진 나를 언젠가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 너무 많은 공간을 침범하지 않게 하려 하고, 그 사람에게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고 하더라.


내 마음의 장작을 그 사람에게 다 태워버리면, 내 몸을 따뜻하게 할 방법이 사라져 버린다. 장작을 태우면서도 간신히 동나지는 않도록 혼자 끌어안는 것이 결국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추워지는 게 두려운가 보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엔 단순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으레 걱정하는 드라마 주인공을 보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다.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게 당연하고 또 쉽게 보였다.


이제야 이해가 조금은 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왜 우리 집 고양이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 아버지는 언젠가 고양이와 이별할 날에 너무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 너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너무나 마음 아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아버지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정을 주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사투하고 있을지, 나는 쉽사리는 모를 일이다.




현재를 살으라는 것은 언제나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여겨진다. 현재를 살고 현재를 즐기려면, 나의 마음에 충실하여 내 눈앞의 사람을 향해 몸을 불사 질러야 한다. 후회가 없도록 태워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지나 상처받는 내 마음은 어떤가? 그건 누구도 함께 감당할 수 없는데, 그게 버겁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있으면 슬픔도 있고, 슬픔이 있어야 행복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지라,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아파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으면서도…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믿고 나중 생각 없이 무모해볼까 싶으면서도…


아. 걱정 없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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