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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Oct 15. 2021

혼자 살아보니 어때?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혼자 살아보니 어때?"


어쩔 수 없이 시작된 내 독립생활 6개월 즈음, 결혼을 한 친구가 혼자 살게 되면 어떤지 궁금한 게 많다며 물어왔다. 친구는 부모님과 살다가 바로 결혼을 해서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다고 했다.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살짝 고민을 했는데 내 대답은 이거였다.


"혼자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감사해."




어릴 때부터 나는 결혼 전에 꼭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겁도 많은 내가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가 "정말?"이라고 몇 번이나 물어봤을 정도였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혼자 살진 못했지만 오히려 학교 기숙사 생활이나 사촌들과 살게 되면서 또래들과의 삶은 많이 경험해봤다.


또래들끼리 살면 각자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은 서로 맞춰가기 시작하고 서로 싫어할 행동들은 하지 않는다. 밤에는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으면서 대화도 나누고 같이 영화나 축구경기를 보거나,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


물론 혼자 살고 싶었던 내가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 경험이 어디냐' 하고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진짜 혼자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포구청역 어느 카페에서.


혼자 살게 된 과정이 엄청 설레고 원해서 한 시작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 떨어졌고 엄마의 자리를 제외하면 내 삶에서 크게 바뀐 것도 바꿔야 할 것들도 아직은 없었다.


겨우 반년. 정신 차리고 살기에도 바빴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제야 조금씩 소소함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30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 시간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쁘지 않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 색깔을 찾아가는 출발선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집은 언제나 엄마 위주로 돌아갔고, 나는 현생에 치여 사느라 감성이니 취향이니 생각해볼 겨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표현되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취향이 확고한 건 화장품! 옷은 항상 애들하고 부대끼고 활동성이 좋은 옷을 입어야만 했으니 캐주얼하고 편하면 땡이었어서 그나마 화장품이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걸 마구마구 골라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혼자 살게 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색감을 좋아하는지 등등 하나하나 다시 내 취향이라는 걸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느낌이다.


20살. 대학생이 된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뭘 싫어하는지 끊임없이 찾아보고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엄청 알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을 갖고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점점 색을 잃어갔던 것 같다.


언젠가 난 가끔 내 삶이 흑백영화 같다고, 그래서 색감 가득한 화장품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라고 친구한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의 내 삶이 흑백영화였다면,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하나씩 색을 채워가는 느낌이랄까?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사실 앞서 말했듯이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취향 찾기 여행 중이다.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 한 번에 촤르르 펼쳐질 나만의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타이밍.


4년 동안 혼자 살아오면서 TV 속 '나 혼자 산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처량맞거나 비참하지도 않다. 나의 혼자 살기는 재밌고, 솔직하고, 게으르고, 엉망진창인데 나름 질서가 있다.


그래도 확실한 것 하나는 여러 가지 색들이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정말 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아릴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에 더 잘 살 아내 보고 싶은 마음이 해가 갈수록 든다.


누군가 그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혼자 살아보니 어때?"라고 물어본다면 다시 한번 "이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해."라고 말하고 한마디 덧 붙일 것 같다.


"다시 나를 마주 보는 느낌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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