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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Nov 15. 2021

자유시간

서른다섯. 이제야 독립합니다.

코로나가 시작될 즈음인 2020년 3월.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가 만들고 있었던 app을 대표가 포기하면서 직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의 희망도 보이지 않아 퇴사를 하기로 했고 사회생활을 하고 처음으로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회사를 이직하면서 짧게나마 쉰 기간이 있었지만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이었다.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크고 무거웠던 나는 사회복지사로 전향하기 위해 첫 직장을 그만두고 2개월 정도 쉬고 취업을 했고, 그 후 직장에서 7년의 근무를 마치고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쉬기로 결정했을 때 갑작스러운 엄마의 투병이 시작되면서 다시 취업을 했기 때문에 사실 온전히 마음 편히 쉰 기억이 없다.


그랬던 나는 "무작정 쉴 거야."라는 결심에 대한 어색함, 설렘도 느끼는 등 조금은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나서야 마지막 퇴근길에 오를 수 있었다.

  



좀 쉬어야겠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대부분 사람들은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쉬는 것이 생각이 많아져서 힘들 것이라 판단했고, 일을 하는 시간 동안 정신을 집중할 수 있으니 그나마 숨통이 틔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픔은 너무 컸고,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2년이 지나서야 인정했지만 오히려 지금이니까 조금이나마 덤덤하게 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나 자신이 낯설기도 했지만, 정말 극에 달한 공황 증상과 지쳐버림 심신을 위해서도 잠깐 멈춰야 한다는 걸 인정했던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시간을 가진 건 근 4년 동안 제일 잘한 일이지 않나 싶다.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즐거움도 잠시, 쉬어본 적이 없던 나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혼자 뒤처지는 거 같고, 무언가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한심하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쉬기 시작했는데 뭐가 그렇게 어이가 없고 힘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랬던 나를 누구보다 차쌤이 정말 많이 진정시켜주셨다. "은영님. 안 해봐서 모르는 거예요. 사람마다 쉬는 시간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해봐야 쉴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정말 잘했다고 할 거예요."라고 알려주시면서.


처음 한 달은 무언가를 하려고 엄청 시도했다가, 결국 다 내려놓고 천천히, 급할 것 없이 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 종일 멍 때리고 있어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고, 가끔 운동을 하고, 저녁엔 산책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디를 가볼까 싶었는데, 나는 그럴 에너지 자체가 없었다. 쉬는데 여행 한번 가야지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건 난 정말 에너지 자체가 없었다. 


집에 있어도 피곤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을 정도였고, 남들이 한다고 해서 꼭 그걸 해야만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내 시간과 내 상황에 맞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도 필요했다.


어색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마음도 점차 너그러워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기억하는 긴장감도, 죽지 못해 하고 다녔던 웃는 표정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었던 모습도 지워지기 시작했다. 



산책.


한 친구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직장을 그만두고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울기만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세상이 싫어져서 한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일도 그만두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부러웠다. 다른 것보다 울 수 있다는 것이. 그때의 나는 감정들이 나오고 표현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올 수 있게 어쩌면 바로 쉬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싶어서 늦게 시작된 쉼의 시간은 그때 미쳐 마주 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이제야 그 감정들을 마주 보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스스로 보듬기 시작했다.


여러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그때를 표현하자면 독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억지로 눈을 뜨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웃거나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왠지 모를 안쓰러운 눈빛과 동정을 받지 않아도 되고, 싫은 사람들과 억지로 대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도 얻었고 그것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그때 알았다.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었고 성인으로 살아온 지가 몇 년인데 이런 자유를 이제야 느끼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이 시간을 충실하게 즐겨보기로 한 나는 정말 게으르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한 나는 '감정을 적어보세요. '라는 주문에 맞춰 써보기로 한 일기를 그제야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단어 하나 쓰지 못했을 정도였는데, 쉬기 시작하면서 단어가 나오고 문장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신이 돌아왔고, 저녁 한강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하고, 진심으로 웃기 시작하기도 했다.


삶의 마음가짐도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할 것."이라고 정해졌다. 억지로 무언가를 내 힘을 넘어서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약해지면 약해지는 데로 스스로를 인정하고 한심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고 행복한 일들을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원하게 되었다.


잠깐의 멈춤은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진심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고 정말 어이없게도 엄마와의 이별이 아니었다면 절대 가질 수 없었을 시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았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일 하지 마 은영아. 그냥 아르바이트하고 살아도 네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더 이상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 


엄마랑 이별을 하는 게 슬픈 거 알아. 그래도 내가 가야 네가 살 수 있어. 응급상황 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섭섭한 것도 알아. 근데 엄마가 확실하게 너한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야지만 네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거야. 지금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거라서 그래. "


그래. 엄마가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는지 안다.


엄마는 핸드폰에 남긴 짤막한 유서 같은 글에도 "행복하게 살기 원해."라는 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엄마는 위험한 순간이 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한테 미안할 때도 있다. 엄마의 희생으로 난 너무 잘 누리고 살고 있으니. 진짜 별로다. 


그렇게 수만 가지 감정을 마주 보고, 인정하고, 돌아보면서 7개월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코로나로 인한 최소한의 외출은 어쩌면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끊었던 교회도 인터넷으로나마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완전한 회복은 될 수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비우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한 게 아무것도 없었고 생산적이지도 않았던 그 시간이었는데, 어쩌면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필요했고, 명확한 타이밍이었다고 확신한다. 


금쪽같은 자유시간이었다. 정말.


"쉬는 시간 동안 뭐했니?"라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딱 하나다.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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