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저히 이 사태를 인정할 수 없는 25년 차 핑크블러드인 나는 글을 썼다 지웠다 하고 수많은 화남과 이 어이없는 사태에 대해 엄청난 좌절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핑크블러드 중 한 명인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하이브, SM주식 좀 사둘걸 그랬다.
내가 오늘 들은 말 중에 가장 열받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나는 거의 초상집 분위긴데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재미를 봤다며 주식을 사놓을 걸 그랬다며 그러고 있다. 그래. 다를 수 있지. 나는 핑크블러드고 저들은 아닐 테니까.
하이브가 SM을 품었다는 기사를 보고 아침에 눈을 몇 번이나 감았다 떴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일이 일어났고, 나는 지금 25년 덕질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BoA와 소녀시대의 팬인지 알고 있다. 2022년 소녀시대의 15주년 컴백 기사가 뜨자마자 "축하한다."라는 카톡을 내가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말도 못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노동요로 '2022 Winter SMTOWN SMCU PALACE'을 듣고 있는 핑크블러드.
SM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핑크블러드라고 부른다. SM에서 공식적으로 공표한 네이밍이기도 한데 왜 핑크블러드가 되었냐면 SM의 로고 색상이 핑크색이었다. (현재는 좀 더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난 그때 그 핑크색의 스엠을 굉장히 그리워하는 편이다.) 유영진 아버님과 켄지 어머님의 노래에 반응하는 심장과 피를 가진 우리는 핑크블러드 그 자체.
맞다. 난 H.O.T 캔디를 시작으로 S.E.S, BoA, 소녀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뼛속까지 SM을 사랑하는 슴덕후로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2023년 오늘. 하이브에 흡수된다는 기사는 25년을 슴덕으로 살아온 나에게 엄청난 좌절과 깊은 빡침을 주었다.
위기다. 내 덕질인생 최고의 위기.
이수만 프로듀서의 퇴진이 붉어지고 SM 3.0 시대의 공표.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난 SM을 믿었다. (여기서 SM은 수만리쌤과 SM회사 그 자체다 )
광야의 출범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에스파가 메타버스라는 특이한 콘셉트를 들고 나왔을 때도, 무한확장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NCT도, 소녀시대는 모르지만 광야에서 소리의 여신 된 소녀시대 세계관도 나름 가열차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던 나였다.
하지만 카카오냐 하이브냐라는 기로에 서 있는 이 사건이 SM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이는 것 같아 명실상부 No.1이었던, KPOP의 문화를 만들고, 선도했던 과거의 영광이 퇴색되는 과정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정말 너무나 어이없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언제나 SM이 내놓는 아티스트와 그들이 만드는 앨범 자체가 하나의 ART 같았다.
하나의 주제를 풀어나가는 여러 가지 콘텐츠와 방식(티저 이미지, 패션, 티저영상 등). 특이한 가사와 아티스트들의 실력. 그래서 그 모든 게 집약된 앨범을 받아 들 때면 하나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게 내가 핑크블러드가 된 이유라고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 대표를 필두로 수많은 작품과, 사원인 민희진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펼치게 해 준 수만리의 눈이 정말 명확했다고 느낀 2세대 아이돌의 활동기는 "10년 전 난리 났던 SM이 다 가졌던 한 해"라는 짤로 돌아다닐 만큼 엄청난 작품들이 많았었더랬다.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본시장을 접수하고 오리콘 1위를 찍고 빌보드에 입성한 BoA, 아시아를 호령했던 동방신기의 활동기와 전 세계에 팬을 만들었던 EXO, 걸그룹의 부활을 이끌고 유튜브를 통해 세계에 KPOP을 알린 소녀시대, 대기록을 쓴 슈퍼주니어, 청량함과 독특한 패션 등 음악성을 인정받은 샤이니와 지금도 같은 그룹은 나오기 어렵다고 회자되는 F(x) 등등. (H.O.T와 S.E.S는 시작하면 10페이지 넘을 거 같아서 생략.)
그래 이 모든 시기에 난 핑크블러드였고 언제나 SM은 미래를 지향했고, 불가능이라고 했던 목표를 이루어냈으며 언젠가 수만리쌤이 말했던 한국에서 우리나라 말로 노래를 불러도 전 세계가 반응하는 세대가 도래했던 건 SM의 선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말대로 "SM이 길을 먼저 닦아줬기에 지금의 하이브가 꽃길을 걷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을 테니.
그래서 우린(핑크블러드) 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여러 회사를 레이블로 두지 않아도, 그래서 여러 레이블을 걸치고 거대해진 누군가가 나타나도 SM은 충분히 다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이 남은 것인지...
아! 광야는 남았다.
내가 걱정하는 이유. 그래 이렇게까지 열받을 일이냐고 물어본다면, 내 회사도 아닌데 이렇게 좌절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난 SM 고유의 색과 멋이 누군가에 의해 무너지고 깨져가는 걸 볼 자신이 없다고 말이다.
수만리쌤의 방식이 올드하다는 지적도 알고 있고, 4세대 들어서 SM가수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쩌면 H.O.T부터 에스파까지 SM은 항상 앞에서야 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세대가 변했고, 방식도 변했다는 것을 그래서 고유성을 지키면서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는 것을 놓쳐서일지도 모르겠다.
한번 들으면 꽂히는 노래가 아닌 "SM앨범은 5번 이상은 들어봐야 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게 어쩌면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심장과 피가 반응하는 핑크블러드들만이 누리는 음악이 되어버린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이해시켜야 하는 음악이 아닌,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과 세계관이 있어야 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유성을 잃어버린다면 그게 과연 뭐가 차별화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고유성은 나에게 이수만 프로듀서님이 가진 프로듀싱이었고, 새로움을 제시하고 변화가 잘 어우러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SM 자체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SM 운영진의 말도 맞는 말이지만 수만리 없이 SM특색과 고유성이 얼마나 유지될지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 그리고 카카오를 거론하는 순간 의문과 불안은 무한 열받음으로 표출된 것도 사실이다. 수만리쌤의 억울함에 대해 생각했지만 하이브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지금 좌절을 느낀다.
이제 내 플레이리스트는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돈이 움직이는 주식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일 테고, 결국 회사는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이 각자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지저분한 싸움만 남았다.
누가 이기던 이미 갈라졌고, 하이브로 소속되던 카카오로 가던 둘 중 하나다. 그래 그러고 보면 중국자본인 카카오보다 하이브가 낫겠지만, 'SM'이 하나의 '레이블'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지금의 경영방식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가 다 문제가 될 것이다.
난 SM이 자체적인 힘으로 다시 No.1을 찍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언제나 미래를 제시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고 이를 문화로 자리 잡게 만들었던 SM의 자체적인 힘을 진심으로 기대했다. 따라가고 뒤쳐지고 누군가의 도움으로만 움직이는 SM이 아닌 -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것을 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지만 적어도 25년을 핑크블러드로 살아온 나 의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울 정도다. 누군가는 자신의 KPOP은 여기서 끝났다고 하고, 누군가는 SM의 느낌이 없어지는 게 싫다고 말한다.
그래서 양쪽이 제시한 이 방법들 자체가 너무 별로다.
팬으로서 기만당한 거 같기도 하다.
하이브라니... 하이브라니...
(아이돌판에서 하이브랑 SM 팬들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아요.)
사랑했다. SM 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