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고 나서 그런지, 한동안 연락을 뜸하게 했던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다들 잘 살고 있었는지, 잘 살아내고 있었는지.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으니 엄청 긴 문장으로 만들어진 말들을 하기보단, "살아있어." 이 한마디면 설명이 되는 관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건, 저마다 무언가를 이루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의 시간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가끔은 "이게 맞냐?"라고 자조적으로 혼잣말을 하면서 괴로워하기도 했고, "내가 알빠임?"이라고 대차게 말하면서 웃어넘기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너는 지금 멈춰있는 거야? 아니면 흘러가고 있는 거야?라고.
어릴 때부터 술은 잘 못 마셔도 친한 사람들끼리의 술자리는 좋아했다. 적당히 늘어지고, 풀어지고, 두서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솔직한 감정들이 있는 시간들을 좋아했다. 물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덧 그런 자리는 알아서 피하게 되고, 편한 사람들과 편하게 마시는 자리를 선호하긴 했었다.
하지만, 반대로 술을 마시면 내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술을 처음 마시면 늘 그렇듯 울기도 하고, 미친 짓을 하기도 하고, 솔직한 마음들을 나도 모르게 툭툭 던져버렸는데 감정을 눌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다.
즐거움보단 참아내야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았고, 갖고 있는 성격상 그걸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풀어지고 늘어지면서 이 때다 싶어서 튀어나오는 감정들을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숨기고, 즐겁고 긍정적인 감정만 드러내고 사는 게 어른 같았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숨길 수도 없고, 감당하기에도 힘든 큰 슬픔을 겪고 나서 보니 예전부터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멈춰 서서 그 감정들을 처리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그 5년 동안 항상 멈춰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내 푸념 아닌 푸념을 들은 누군가는 말해준다.
"너는 멈춰있는 게 아니라 해결하고 있었던 거야."
푸념을 늘어놓고 있지만, 아니 가끔은 뒤쳐지는 거 같고,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했었는데 지금의 내가 내린 결론은 멈춰있었던, 해결을 하고 있었던, 뒤로 가고 있었던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독히 긴 겨울을 지나오고 있다면, 포기하고 싶고, 왜 나만 이런 시련이 있는 거 같고, 왜 나는 멈춰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이 나고 있는 상황에 있다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숨을 쉬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리고 같은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도.
겨울의 끝은 생각보다 너무 늦게 올 수 있지만, 결국 계절은 바뀌게 되어있으니 제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니 버티는 일조차도 고마울 일이라고 우리 모두 잘 살아내고 있다고.
어른들에게 수 없이 들었던 말 중에 "겨울이 있어야 봄이 따뜻한 걸 알아."라는 말을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내 삶이 한번 흔들려보고 보니 깊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 걸 보니 멈춰 있기라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었다.
물론. 앞으로 계속 누군가와 비교를 하고 내 삶이 초라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뒤처지는 것 같다고 울기도 할 것이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냐고 울기도 하겠지만 "내가 행복하면 된 거지!"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제 자리에 멈춰 서있더라도 크게 호흡하고 생명력을 마구 내뿜고, 흘러가는 거라면 유연하고 아름답게 흘러가야지.
그러니 또 잘 지내보자. 내 자신 그리고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