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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예윤 May 11. 2022

Be My Love

훌륭한 예술작품은 과연 양면적이구나

 곡을 처음 들은  2020 중순 무렵, 클럽하우스라는 어플이 한창 유행할 때였다. 어플 내에  주제의 방들이 만들어지고  방에 들어가서 프로필을 걸고 음성만으로 대화하는 시스템.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1:1 대화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떼지어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고 내가 관심있는 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듣기도 하고 그랬었다.   정도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다가 역사 속으로 (거의) 사라진 어플이었다.

 어느날은 재즈 합주하는 방이 있길래 들어가봤다. 연주자들은 재즈 뮤지션들인 것 같았고, 코로나로 만날 수가 없던 시기였기에 각자의 집에서 인터넷 연결만으로 합주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나, 코로나 시대의 재즈 합주는 과연 어떨까 하고 듣던 중에 신청곡이 들어왔고, 피아니스트가 아 이 곡이요, 하면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5분 여의 시간 동안 나는 조용히 숨죽여 음악만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Be My Love> 라고 했다. 연주가 끝난 뒤 나는 바로 클럽하우스를 끄고 키스 자렛의 버젼을 찾아들었다.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앨범에 있는 곡이었다. 내가 이 노래를 몰랐다니. 아는 앨범인데. 충격을 받았다. 이래서 앨범 수록곡들을 모두 주의깊게 체크해야 하는구나. 그날 밤 같은 곡을 듣고 또 듣고, 자는 동안에도 들었고, 그 이후로도 나의 일상 속 많은 순간에 이 곡이 함께했다.

 곡의 멜로디는 뭉클하고 가슴 아린데 키스 자렛의 연주는 날카로워서 이질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칼로 살을 저미는 것 같은 연주인데 이렇게 따뜻하다니. 음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날카로운 따스함을 잘 살린 녹음이라고도 생각했다. 키스 자렛이 건강할 때 이 곡의 실황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도 해봤다. 아냐, 너무 슬펐겠지. 많이 울었겠지. 그래도 너무 좋았을 거야.

 그러니까 이 곡의 제목이, <Be My Love>이다. 이렇게 마음 아픈 곡의 제목이 그렇기까지 하니 집중해서 들을 땐 안 울 수가 없었다. 왜 <Be My Love> 일까 정말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고, 지나간 기억들이 조금은 되살아 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다. 이 곡이 왜 차갑게 들려야 하는지도 그래서 더 알 수 있었다. 마치 돌린 등에 말 거는 것 같았으니까. 그 등에 대고 마지막 한 마디를 하는 사람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한 마디는 간절하나 건조해야 했다.

 이 곡을 마침내는 재즈피아노 수업에서 다루면서 직접 연습하고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는 아주 예전에 봤던 찰리 코프먼의 <시네도키, 뉴욕>이 많이 생각났다. 결코 오지 않는,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우주 역사의 찰나의 시간동안만 살고 죽는다는 절망적인 독백이 있는 영화. 나에게 이 곡이 무척 로맨틱하고 감상적이면서도 끝없이 절망적으로 들렸기에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나에게 때로는, 아니 꽤 자주, 사랑이 그런 의미이기에.

 곡은 키스 자렛처럼 손이 아주 큰 사람이 치기 적합한, 반대로 말하면 나처럼 손이 작은 사람이 치기에는 꽤나 힘든 곡이었고, 나는 이 곡을 칠 때마다 미스노트가 심하게 나는 것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지인도 이 곡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훨씬 풍부한 감수성으로 표현하면서 연주하는 걸 봐도 딱히 손이 더 자주 가지는 않았다. 너무 좋아하는 곡이지만, 몇 개월 연습하다 보니 좀 지쳤던 것 같다. 일상의 BGM 정도로 전락해 너무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렇게 익숙한 곡의 악보를 외우지는 못했다는 점이 꽤나 웃기지만.

 그러다 202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D.P.>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조현철의 수상소감을 보게 됐다. 물론 그 작품도 그 배우도 수상소감도 <Be My Love>와는 일절 관계가 없다. 조현철이 상을 받고 나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투병 중이며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창밖에 보이는 빨간 꽃 그거 할머니라고,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죽음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그리고 세월호 아이들과 김용균 군과 변희수 하사를 언급하며, 그들이 죽은 후에도 여기 있다고,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보내자고 했다. 그 아름다운 수상소감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고, 조용히 떠올렸다. <Be My Love>를.

 참 웃기지, 이 곡과 닮은 사랑과 삶에 대해서는 <시네도키, 뉴욕> 이야기하며 그렇게 절망적으로 봤던 내가, 조현철이 말한 담담하고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서는 이토록 희망적이라니. 사랑을 떠올릴 땐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던 곡이 죽음을 떠올릴 땐 또 조금은 희망적으로 들리기도 하는구나 싶어 놀랐다. 훌륭한 예술 작품들은 어느정도 양면적이구나. 전부터 내가 양가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나 작품에 끌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도 과연 그랬다. 한 번 들어서는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그래서 좋은 곡. 들을수록 다른 느낌을 갖게 하는 곡. 갑자기 이 곡이 낯설게 들렸다. 새로운 국면이구나.

 아직 마스터를 못했다. 여전히 많은 미스노트를 짊어지고 간다. 어쩌면 결코 완성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여러 일을 겪으며 <Be My Love>에 대한 내 해석이 더욱 풍부해졌고, 그래서 이 곡이 내게 더 각별해졌다. 처음 들었던 그날처럼 나는 이 곡을 들으며 감동하고, 자주 울고, 마음 아파한다. 또 다른 일을 겪고 나서 곡을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도 하겠지. 인생을 오랫동안 함께 할 곡이라 조금 천천히 가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랫동안 듣고, 아주 오래도록 연주할 거니까. 꽤 긴 이 곡을 아주 긴 호흡으로 연주하는 키스 자렛처럼 천천히, 여유있게, 끝까지 집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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