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나에게 휘몰아친 너
(<기생충>에 대해 할 말은 정말 한 트럭이기 때문에,
언젠가 따로 다룰 거고 여러 글에서 무심코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꺼내려고 한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깐느를 뒤집어 놓았다고 했다.
이제는, 정말 그 영화가 왔다.
2019년 5월 29일, 국내 정식 개봉 하루 전.
CGV에서 '스타 라이브톡'을 진행한다고 했다.
소식을 늦게 접한 탓에 내 주변 서울권은 모두 매진이었고,
경기 남부에 있는 오리 CGV의 작은 상영관에 겨우 남은 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상영관은 작았고, 맨 앞 열은 스크린을 올려다보아야 했으며
그마저도 잘 보이지도 않았다.
영화의 미려한 미장센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역부족인 자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두 시간이 넘도록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완전히 홀려 버린 내가 처음 한 행동은,
바보 같게도 그 아이에게 톡을 보내는 일이었다.
나 기생충 봤어. 미쳤어.
너가 이거 봤으면 좋겠어.
아니, 너랑 같이 보고 싶어.
<기생충>을 그 애가 좋아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아니, 안 좋아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 애는 어둡고 진지한 사회물과 안 친한 편이었고,
폭력적인 장면이나 강렬한 자극에도 취약했다.
그럼에도 그 애한테 이 영화를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이런 영화도 있다고, 내가 이런 걸 보고 뻑이 갔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너가 내 <기생충> 같은 사람이라고,
나는 소리 없이, 이미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며칠 뒤 그 애랑 본 영화는 다른 거였다.
평일 저녁, 심지어 심야영화였다.
정말 얼마나 설렜는지.
바쁜 일정 다 끝나고 영화 챙겨보려면 심야밖에 시간이 없다는,
그 이유가 구실에 지나지 않기를 바랐다.
영화는 환상적이었다.
꿈, 노래, 모험, 사랑, 모든 것들이
디즈니의 손을 거쳐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이 아름다운 영화에 완전히 빠져버리는 그녀였다.
영화가 끝나고,
그녀는 타이밍 좋게 걸려온 친구 전화를 받았고,
흥분에 차서 친구에게 <알라딘> 예찬을 늘어놓았다.
"야, 알라딘... 이런 게 영화지.
기생충 그런 어두침침한 영화 왜 보냐?"
...정도만 기억난다.
하지만 그녀가 기생충을 보지도 않고 '어두침침한 영화'라며 싫은 티를 내지 않았어도,
나는 그녀에게 <기생충> 영업을 당장 그만두었을 것이다.
<알라딘>을 좋아하는 그녀가 너무 좋아서.
그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에 푹 빠져 버리는 그녀의 눈에
<기생충>의 어두운 현실을 담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걸 지켜주기로 했다.
그러고 벌써 육 년이 지났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화, 기생충 그리고 알라딘,
그리고 두 영화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나에게 강렬했던 그녀.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던 내 자신이
가끔, 드문드문 그리워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