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병명, 새로운 무게
“삶의 의지가 사라져서요.”
여기는 내과가 아니니 증상을 자세히 말해 달라던 의사 앞에서, 확신에 차서 꺼낸 첫 마디였다.
’어’, ‘그’ 같은 주저어도 내뱉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저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우울증을 진단받기 전에도 자기가 우울증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이게 우울증이 아니면 우울증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했다. 아니, 이게 정상적 심리상태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나는 여기서 삶을 포기하겠노라 생각할 정도로 그 당시의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2020년 1월 6일이었나 그랬다. 하도 황당해서 날짜를 다 기억한다.
발걸음을 떼기도 힘들 정도로 심한 우울감과 미칠 듯한 자살사고가 하룻밤새 갑작스럽게 몰려왔다. 고통스럽기 이전에 일순 당혹스러웠다. 우울함 같은 감정은 스펙트럼 아닌가. 특히나 이게 병적인 것이라면, 본격적으로 증상이 시작되기 전에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정도의 잽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급성 위경련마냥 훅 들어온다고? 싶은 것이다.
그 감정은 너무 강렬해서 이런 내가 정말 무서워졌다. 다음 날 곧바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생각 정리도 못 하고 말도 못 꺼낼 경우를 대비해서 그때 느끼던 감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기까지 했다(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하다).
그렇게 다음 날 찾은 정신과는 사실 익숙한 곳이었다. 가을에 공황 증상으로 몇 번 찾곤 하던 로컬 병원이었는데, 갈 때마다 편안함이 있었고,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환자들을 보며 동질감도 느꼈다. 하지만 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재방문 의사 없음! 나는 낫고 싶었단 말이다. 암만 맛집(?)이래도, 메뉴만 바꿔서 또 오게 되다니.
말 대신 휴대폰 메모장을 넘겨받은 젊은 남자 의사는 의외로, 진단은 내려주지 않고 안정제 같은 약만 몇 알 처방해 주었다. 뭔가 시원찮았다. 우울증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고 갔는데,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게 내 조울증 병력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