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 감정에 이름이 붙기까지
다들 이런 줄 알았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하고
스물네 시간이 일분 일초 흘러가는 걸 아쉬워하고
나를 싸고 도는 모든 감정들에 몸 맡기고 갈대처럼 나부끼며
때로는 그 감정의 파고가 너무 커서, 내 작은 그릇이 버거워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당황도 잠시, 그 눈물이 슬픔이나 기쁨이나 하는 단순한 종류가 아닌 걸 아니까
그런 여러 겹의 내가 또 좋아서, 밤늦도록 잠 못 들다가 날 새곤 하는데
저만치 터 오는 동이 미치게 예뻐 버리거나 할 때도 있고
아무도 없고,
정신차리고 멀리서 보면 나도 없고,
세상에 빌붙어있는 거라곤 생명을 안 가진 사물들뿐이고
이미 눈코입 달려서 똑같이 생긴 칠십억 개 전봇대들도 아무 영혼 없이 움직이는 그 속에 나 하나 있을 뿐인데
이러고 있는 걸 멍청이들이 '산다'라고 이름붙여서 칠팔십 년 이어가라고 떠넘겨졌다는 사실이
너무 몸서리쳐져서, 한시라도 더 해먹기 싫어서 스위치 끄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전력낭비니까,
별안간 이 모든 것이 미치도록 서글퍼서 어떻게라도 분출하고 싶지만 또 정신차리니 그럴 힘도 없고,
그래서 더 슬퍼 버리는.
다들 이 정도 감정기복은 가지고 사는 줄 알았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니까. 그게 사람을 다른 존재와 규정하는 특징이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조금 다르게 규정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익숙한 단어였다.
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