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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Jun 02. 2023

생리

내 몸은 배틀 그라운드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지금 제정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늦지 않게 전쟁 물자를 공급해야 한다. 전시비축물자로는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글루텐과 전분의 대공급이 이뤄진다. 다른 포탄은 직접적인 수요가 없다.


중심부에는 언제나 직격으로 폭탄이 투하된다. 전투 병력이 전격 동원된다. 최전방으로 전력이 동원되는 탓에 손과 발이 저릿해진다. 부수적 피해는 입가 주변까지 올라온다. 매번 달라지는 진형을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누구의 싸움인지 어째서 자행되는 싸움인지 알지 못한 채 내 몸은 전장으로 사용된다.


내 몸조차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몰려온다. 전쟁 명분도 알지 못한 침공에 눈물이 흐른다.


한 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시위도 해보았다. 전쟁의 여지가 보일 때 즈음 물자 공급을 중단하고 병사들을 내쫓으려 했다. 말 그대로 공원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시위의 행진에 참여했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어도 소용없다.

 

-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몸은 고요하다. 시끄러운 함성과 폭탄의 여파로 부어있던 몸은 가라앉는다. 정규군이 떨어져 나간 후 나의 몸은 평온하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온 후에야 내 몸이 전장으로 이용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정신이 조금 더 맑아지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전쟁의 결과물을 치우는 일. 그간 밀린 일과 숙제를 시작한다. 내 몸이 희생되는 며칠 사이 세상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구나.


세포적 공분이 몰려온다.


대체 내 몸에서는 누가 싸우는 것인가.


누가 이득을 보자고 자행되는 싸움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내 몸속에서 치러지는 전쟁이 자연의 축복이고 신의 계시란 말인가.


자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여성으로 태어나서 싸워야 할 존재가 안팎으로 너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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