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읽고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삶을 사는 것일까 상품을 사는 것일까? 소비, 물질, 욕망, 성공, 행복, 사람, 사랑, 완벽함, 환경, 이기주의, 기회비용, 경험, 시간, 가치, 성격은 모두 한 그물 안에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소비사회에서 살아간다. 소비사회에서 소비는 강제성을 띤다. 인간에 대한 애착은 상품에 대한 애착으로 전이된다. 상품은 사야 하므로 사는 것이며 인간은 주체성을 잃는다.
그렇다면 소비사회에서 인간이 상품을 사야 하기에 사는 심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상품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느낌을 원해서 구매한다. 그것이 주는 느낌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거나 소비함으로써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상품을 만드는 회사의 마케팅 전략이나 광고, 그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인식이나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광고는 당신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 완벽한 것을 보아라. 이것을 소비해야만 당신도 완벽해질 수 있다. 당신이 완벽해짐으로써 당신의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환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망인 행복을 자극한다. 아니, 어쩌면 행복처럼 보이는 쾌락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 편이 더 빠르고 자극적이니까. 그리고 당신은 강제된 소비를 주체적 결정에 의한 소비로 착각한다.
상품에 대한 강력한 애착은 공동체 해체와도 연결된다. 인간은 본래 공동체적인 존재이다. 공동체를 이루면서 느끼는 애정과 감정이 소비사회에서는 상품으로 옮겨진다. 인간이 상품의 논리에 주입되고 익숙해졌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적 대상은 상품으로 이동한다.
즉, 인간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이 상품에 대한 우선순위로부터 밀린다. 사회가 그것을 인식하고 태동해도 상품의 지위는 여전하다. 상품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특성을 갖는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상품이다. 나는 여전히 공동체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보다도 상품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경험 중 하나로 우상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일까?
나는 어제 제시 제이 콘서트를 다녀왔고, 그는 나의 어릴 적 우상이다. 나는 그가 노래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모든 것에 감동하였고 그의 노래는 내가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어제 콘서트가 끝난 후, 가수의 퇴근길에 그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며 나는 싸인을 받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경험을 돈을 주고 샀다. 티켓팅에 성공했고, 티켓을 샀기에 콘서트에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상품처럼 샀기 때문이었을까? 가슴이 터질 듯한 전율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행복이 상품으로 소비되었을 때에는 도리어 감동받지 못한 것이다.
지난밤, 제시 제이의 'Who You Are'을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 'Price Tag'를 들으며 짜릿함을 느끼고, 그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며 행복해한 소녀는 거기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싸인을 받고 눈을 마주치고 작은 얘기라도 나눠보려는 욕심에 가득 찬 팬 한 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제시의 노래를 사랑하고 힘들 때마다 그의 노래에 기댈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적어도 내가 그들을 상품으로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전까지는 말이다.
(4月 28日. 제시 제이 콘서트를 다녀와서,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