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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Mar 29. 2022

이석훈의 자리

'같은 자리' 앨범 리뷰

“가수란 직업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 늦었다 해도 용기 내고 싶었다. 변화와 다름을 원했고, 또 필요로 했다. 거기에 다양함까지도… 가사와 노래를 천천히 표현하는 법도 달라졌기에 거기에 맞는 곡이 필요했는데 마침 적합한 선물을 주셨다.”


                                                                                                - 이석훈의 ‘사랑은 또’ 트랙 스토리




SG워너비의 보컬로 데뷔 후 14년, 솔로로 홀로서기 후 12년.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결코 짧지 않은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이석훈은 데뷔 후 14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가수란 직업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며 용기 내 발매한 앨범 ‘같은 자리’에서는 같은 자리에서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라는 이석훈의 음악이 다양함을 더해 담겨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감성을 담고 있어 하루 종일 듣기 좋다는 어느 팬의 말처럼 이석훈의 이번 앨범에서는 매일 같은 날들, 같은 자리에서 떠올릴법한 익숙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한층 성숙해진 감정과 보컬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은 또'

떠나가는 사랑에 대해 슬픔 이상의 허무함을, 그 허무함이 만든 인생의 쓸쓸함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수가 얼마나 있을까. 첫 솔로 싱글 앨범부터 이번에 발매한 정규앨범까지 시간 순대로 듣다 보면 데뷔 때부터 완성형이었던 이석훈의 보컬이 끝없이 성장하다 이번 앨범에서 정점을 찍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두 번째 싱글 앨범의 수록곡 ‘가을이 지나간다’에서는 이별의 쓸쓸함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에 떨림 등으로 감정을 한껏 드러냈고, 슬픈 오보에 멜로디가 그를 뒷받침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사랑은 또’에서는 어떤 기교로도 꾸며지지 않은 단정한 목소리가 간주 없이 홀로 들려온다. 목소리를 받쳐주는 것은 단출한 피아노 소리뿐이다. 목소리만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공허한 온도 속에"라는 가사의 상실감과 공허함을 표현해낼 수 있는 그이기에 가능한 도입부다.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노래를 이해시키는 것, 설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달력을 위해 발음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듯이 이전보다 또박또박해진 발음은 가사의 전달력을 높였다. 때로는 말하듯이, 때로는 울부짖듯이 표현해내는 그의 보컬은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있는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이해시킨다.


누구에게나 어떤 모양으로든 있는 ‘사연’, 행복한 사연도, 안타까운 사연도 한결같이 "특별한 사연"이라고 표현하는 이석훈은 듣는 이에게 "말 못 한 특별한 사연" 들려달라고 대담하게 말한다. "난 걱정돼 하루 끝 지쳐가는 그대를 감싸 안고서 눈물 흘리며 너의 옆에 있을게"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그 단단한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확신마저 더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석훈의 장점인 호소력 짙은 감성과 그를 잘 드러내는 보컬은 "새롭게 시작되는 또 다른 기적 또 이렇게 불러본다" 가사에서 폭발하듯이 터지며 듣는 이의 사연이 어떤 모양일지라도 자신의 사연을 특별하게끔 여기는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 


군입대 전 선물같이 남기고 간 싱글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았지’에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못하고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았지 누군가 말해주기를"라며 소망하던 청년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이번 앨범의 ‘하루의 끝’에서 대범하게 "슬퍼하지 마요 눈물 흘리지 마요"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크게 내쉬던 숨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언젠가 보았었던 희미한 기억들도 모두 사라져 가고"라는 가사를 부르는 이석훈의 보컬을 듣다 보면 "오롯이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부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노래했다는 이석훈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잊히지 않는 건 / 하루의 끝 그곳에 있단 걸" 가사를 듣다 보면 이석훈의 삶 속에서 지쳤던, 하지만 그 하루의 끝에서 ‘괜찮다’라는 위로를 받은 그의 어느 날을 바라보는 듯하다. 곡을 듣는 내내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이석훈만의 위로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 '연애의 시작'을 이은 이석훈의 설렘 가득한 곡

이석훈도 "첫 만남부터 나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던 곡"이라고 말한 것을 보니 그의 목소리는 애절한 곡만큼이나 설렘이 가득한 곡과 잘 어울린다. 후렴의 "왠지 오늘따라 네가 더 보고 싶어" 가사를 듣다 보면 ‘왠지’라는 단어가 이렇게 설레는 단어였나 싶을 정도로 듣는 이를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곡이다. 이석훈의 솔로곡 중 가장 유명한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가 떠오르는 곡으로, 바라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는 연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가사와 이석훈의 설렘 가득 담은 보컬이 인상적이다. '왠지'라는 단어 뒤에 숨어 조그맣게 고백하던 마음은 자연스레 다음 트랙인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야'을 통해 재즈풍의 일렉 피아노와 기타, 색소폰을 만나 위트 있게 고백하는 마음으로 자라난다. '왠지'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야'까지 이어 듣다 보면 지치고 무료한 삶 속에서 이석훈의 설렘으로 물들어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가을이 지나간다'가 수록된 이석훈의 두 번째 싱글 앨범 '다른 안녕'에서 그는 부모님을 주제로 직접 작사 작곡한 곡 '당신의 자리'로 앨범을 마무리했다. '당신의 자리'에서 그는 부모님의 미소 뒤의 슬픈 눈물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동시에 '나 여기 있어요 어디 가지 마요'라고 고백할 만큼 치기 어렸다. 그랬던 그는 이제 옆에 있지 않아도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

이석훈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담긴 곡, 지붕

이석훈의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한 마디로 탄생한 곡, '지붕'은 그의 첫 정규 앨범에서도 마지막 트랙에 위치하여 앨범을 대한 모든 감사함과 영광을 늘 그의 지붕이 되어주신 어머니께 돌린다. '지붕'은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다른 곡들과 달리 (대중적인 발라드곡처럼)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구성하여 이석훈의 진솔한 감정 하나만을 돋보이게 한다. 곡의 전개에 맞춰 서서히 커지는 감정을 잘 담은 보컬과 그를 뒷받침해 풍부해지는 반주는 곡을 듣는 이로 하여금 곡의 따뜻함에 포근하게 감싸 안긴 듯한 느낌을 준다. 사는 것이 힘에 부칠 때 이 곡을 들으면 꼭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의미 있는 이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꾸준히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해온 그가 이번에 스스로 말했듯이 "용기 내어" 정규 앨범을 발매한 것에 감사하다. 가수에게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싱글 앨범 여러 개를 낼 수 있는 시간과 노력, 타이틀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록곡들은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걱정.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을 통해 그가 앞으로도 '같은 자리'에서 늘 그랬듯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행복을 주는 음악을 계속 들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믿음은 삶을 살아가다 이석훈의 위로, 행복, 용기가 생각날 때 우리를 그가 머무르고 있는 '자리'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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