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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Jul 13. 2022

제주도 미술관 투어 1: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간 시간

중학교 미술시간에 명화 그리기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아크릴 물감을 활용하는 미션이 있어 아크릴 물감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명화를 찾다가 이중섭의 '흰 소'를 그렸다. 수업시간에 다 완성하지 못하자 선생님께서 물감을 빌려주시며 집에서 완성해 오라고 하셨고, 그 그림은 그 해 학교 축제에 전시되었다. 이렇듯 내게 이중섭은 '흰 소', 나의 학창 시절 추억에 일조한 작가 정도로 인식되었으나 이번 이중섭 미술관 방문은 내게 '이중섭'에 대해 알아갈 기회가 되었다. 이중섭 미술관은 꽤나 언덕 위에 있는데, 미술관 바로 근처에 이중섭이 피난 시절 잠시 머물렀던 친구집과 그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 있다. 전시 관람 전 둘러본 작디작은 집과 이중섭이 바라봤을 것 같은 언덕 위에서의 바다 풍경 등 작품보다 이중섭의 삶을 먼저 접한 뒤, 전시를 관람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통해서도 이중섭의 삶을 들여다본 것만 같았다.


ㅣ이중섭의 생애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정주의 민족학교인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의 지도를 받으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호는 대향大饗이다. 1936년, 21세 이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시작했고, 1937년에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작가 수업을 받으면서 동시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재학 중 작품 활동 시기인 이때 그는 벌써 <독립 전>과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출품하여 신인 작가로서 각광을 받았고, 1940년대에는 각종 공모전을 출품한 작품을 통해 상을 받기도 했다. 유학 시절 이중섭은 그의 아내가 될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쓰이물산 자회사의 중역인 마사코의 아버지가 극구 반대하며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일제의 군국주의가 조선인 학대로 이어지자 이중섭은 귀국하여 원산에 머물게 되었고, 이때 들판에 나가 그리기 시작한 소가 나중에 소 연작으로 이어진다. 멀리 떨어지게 된 이후에도 이중섭은 마사코를 향한 사랑을 놓지 않고 엽서에 그림을 그려 보내기 시작했다. 마사코는 결국 1945년 4월 태평양전쟁 중 원산으로 이중섭을 찾아와 5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가 된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고, 태성, 태현 두 아들을 낳으며 이중섭 생애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그해 겨울 월남하여 부산 피난민 수용소에 들어갔다.

이후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의 한 농가, 지금의 이중섭 미술관 자리에 정착했다. 전쟁 중 어렵고 가난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사랑하는 두 아들과 바닷가에 나가 게와 물고기를 잡는 것은 이중섭의 큰 행복이었다. 이후 이중섭의 그림에 게와, 물고기, 어린아이가 꾸준히 등장하는 것도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궁핍한 삶이 계속되면서 이중섭은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갓집으로 보내고 평생을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고독 속에 살아가게 된다. 예술을 놓지 않고, 전쟁 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1956년 초여름, 우울증과 폭음, 간염으로 서대문적십자병원에 입원한 뒤, 4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생을 마쳤다.


ㅣ은지화


은지화, 1950년대, 이중섭 미술관 소장


은지화는 이중섭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으로 어려워진 그의 삶 속에서도 예술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았다는 가장 덤덤한 증거다. 이중섭은 캔버스에 유채 작품이 단 한 점밖에 없는 작가다. 그는 두꺼운 골판지, 종이, 엽서, 담뱃갑 은박지 등 그의 현실을 절실히 드러내는 재료를 가지고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은지화 속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게, 물고기, 어린아이 등으로 그의 그리움, 고독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투박하게 휘갈겨 그린 듯한 거친 선들, 새겨진 선 안으로 스며든 검은 잉크, 서로를 묶으며 엉켜있는 사람들,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을 보다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과 가장으로서의 자책감 등의 감정을 무표정한 얼굴에 숨긴 채 다방 한쪽 구석에서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는 이중섭이 보이는 것만 같다.


ㅣ섶섬이 보이는 풍경과 해변의 가족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년, 이중섭 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내 기억이 맞다면) 미술관 1층 전시실의 입구 쪽 벽에 전시되어 있고, 작품의 사진이 미술관 옥상에 작품 속 풍경의 방향에 맞춰 전시되어 있다. 거칠고 투박한 이중섭의 대표작들과 달리 (특유의 붓터치가 아니면) 이중섭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결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의 풍경화는 대체로 이중섭의 특징을 찾기가 힘든데 그 이유는 한 가지 대상을 오랜 시간 관찰하고 되풀이하여 그려냄으로써 자기화하는 이중섭의 작품 제작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잠시 머물던 피난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여러 일을 했던 점을 생각하면 제주의 풍경을 자기화하기 쉽지 않았을 듯하다. 작품 하단의 농가는 현재 사라지고 없지만 작품의 주인공인 섶섬과 제주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워 이중섭이 그림을 그리며 이 풍경을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봤는지 상상할 수 있다. 분명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 생활 중 그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평화로운 일상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의 제주 피난 시절이 그의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거라고 추측하는 이유 중 이 작품이 가진 따뜻함과 평화로운 분위기도 일조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유홍준, 유홍준의 美를 보는 눈 3. 안목, (주)눌와, 2018, 210-216p

이용우(고려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이중섭 소고(小考), 현대미술관연구 제 5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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