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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세사기 | 무너진 집에서 피어날 결심

by 예지


이 이야기는 2023년 봄부터 진행되어 온 저의 전세사기(깡통전세) 경험담입니다.


2년이 지나 글을 쓰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며,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작성하는 글입니다.


(이전편을 읽고 시작하시면 더 좋습니다.)




나를 지켜준 사람들




외로웠다.

난 이런 상황이라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말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입술 끝에 맴돌았다.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불안함에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다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나를 불쌍하게 여길까봐,

내가 돈을 쓰는 것을 아니꼽게 볼까봐,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이야기가 퍼져 나갈까봐.


그래서 내가 바라는
멋있는 사람의 반대로 비춰질까봐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어차피 나를 멋있게 안 볼 친구들과

어차피 나를 멋있게 봐 줄

몇명의 친구들에게만 사실을 알렸다.


감사하게도 친구들은 그 날 이후로

내가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평소와 똑같이 나를 대했다.


당연했지만,

내겐 당연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좌절에 빠지는 날이면

전화를 붙들고 두시간씩 하소연을 해도

자기 일처럼 들어주고,

바로 달려나와 술을 사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외롭게 했을까.


반성과 감사가 동시에 일어났다.




삶이 말을 걸어오다




벼랑 끝으로 몰린 기분이 들자

오히려 삶의 많은 문제들이 간단명료해졌다.


삶은 언제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내게 던져주고,

나는 그 문제를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어차피 시련은 온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최선을 선택하자.


그렇게 마음을 따르기로 하고 퇴사를 했다.


퇴사 기념 케이크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수련원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해 일을 시작했다.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밤 10시 30분에 퇴근을 했다.


폭염주의보에도 야외 트래킹을 해내야만 했고,

잠시만 시간을 줘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해야 할 때면 큰 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렇게 5일이 지나면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몸은 녹초가 되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들이 남기고 간 편지 한 통에

내 일주일은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다.


'전세사기'

그런 단어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아이들과 매일 아침 담소를 나누고, 수업을 진행했다
이 치유가 멈추지 않기를
일주일의 보상, 아이들의 편지



지옥일거라 생각했던 시간들이

보람과 성취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문득 이게 다 전세사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따르지 않았던 내게

마음을 따르며 살라는 신호탄인 셈이었다.


감당해야 할 현실이 분명 버겁긴 했지만,

모든 것이 다 공부처럼 느껴졌다.


퀘스트를 깨가는 느낌이랄까.


결국 이 '전세사기'의 끝엔
어떤 내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자.





다음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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