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이 이야기는 2023년 봄부터 진행되어 온 저의 전세사기(깡통전세) 경험담입니다.
2년이 지나 글을 쓰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며,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작성하는 글입니다.
이번편을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계약 해지? 기다림? 혼란 속의 선택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소액임차인이었다.
만일 건물이 경매에서 낙찰되면 최우선 변제금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그마저도 근저당 설정 시기가 한참 전이라 보증금의 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경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 반환 소송을 진행해도 되는 건지, 그렇게 해도 내가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어디에도 없었다.
계약이 해지 되면
소액임차인 권리도 사라지는게 아닐까?
보증금 반환 소송을 해도 소송 비용만 들고,
실질적으로 돈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던데..
괜히 받을 수 있는 돈마저 못 받는거 아냐?
여러 불안함을 안고 갈 바에야 대항력을 갖추고 기다리는게 맞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집주인이 경매를 막든, 경매가 개시 되어 낙찰이 되든. 최우선 변제금이라도 받아야지.
그게 맞다.
사라진 임대인 찾기
내가 임대인과 작성한 계약서 상 주소는 피해 건물의 2층이었는데, 정작 그 집에는 다른 임차인이 살고 계셨다. 등기부 등본에 나와있는 주소지를 포털에 검색해보니 한 상가 건물이 떴다.
건물 1층에는 네일샵이 있었고, 임대인 명의의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었다. 혹시 이곳에 임대인이 있을까 싶어, 윗층에 사는 세입자분이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얼마 전 우리는 새로 이곳에 입주했고, 그 사람과는 관련 없다"는 말뿐이었다.
단서라고 생각했던 주소마저 허탕이 되자 임대인 찾기는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네이버 부동산에 피해 건물이 올라왔다. [초급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 사실을 피해 주택을 나에게 소개한 부동산 중개인에게 알렸다. (편의를 위해 중개인 A라 하겠다.)
중개인 A는 “자신이 나서서 최대한 높은 가격에 집을 팔아보겠다”며 다방면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는 매물을 올린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부동산이 위치한 김포까지 찾아갔다고 했으나, 현장에서 해당 부동산 대표를 만나지는 못했고 임대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결국 임대인과 직접 연락이 닿지 않아, 설령 구매 희망자가 있어도 계약을 성사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개인 A는 김포 부동산 측에서도 이 매물을 진지하게 팔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으나 이런 실랑이 같은 상황이 몇 차례 오간 뒤, 해당 매물은 네이버 부동산에서 사라졌다.
2주 뒤 법원으로부터 임의 경매 개시 통지서가 날아왔고, 낙찰 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배당 요구 종기일 안내문과 신청서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종기일은 2개월 후였다.
나는 12월 초 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방문해 배당 요구 신청을 했다. 배당 요구 종기일로부터 경매가 개시 되기까지는 7개월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소액임차인이라 다행이시네요
지옥같은 시간이었으나 굳이 내가 그 지옥에 걸어 들어 갈 필요는 없었다. 미뤘던 운동을 시작했고, 좋아하는 배우를 더 자주 보러다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내게 벌어진 일들을 정리해 선배 피해자들에게 선례가 있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하나같이
"안타깝지만 포기하시는게 나으실 거에요."였다.
"그래도 소액 임차인이라 다행이시네요"
"어차피 돈은 못 받으실거에요..오히려 소송까지 가면 돈 더 쓰실테니 인생공부 비용이라 생각하시고 잊으시는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비슷한 사례가 있으니 이런 현실적인 조언을 하신 것이겠지만 속에서는 남일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는 미운 마음도 들었다.
내 마음은 내 나이만큼 단단하지 못해서 누군가와 분쟁을 하고 다투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었기에 정신건강을 위해서 포기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싶었다.
그러다 은행 대출이 떠올랐다.
몇 억의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겐 작은 돈이겠지만, 적은 돈으로도 쉽게 행복해지는 나로서는 평생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몇 천 만원을 갚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당장에 대출 만기는 1년 반 정도가 남아있었고, 아무리 아등바등 산다고 해도 7200만원을 벌 자신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끝까지 싸우자.
안되면 개인 회생을 하자.
살면서 개인 회생 경험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역시 난 특별해.
긍정 회로를 돌리며 단톡방에서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