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괜찮겠지?' 2년 만에 꺼내놓는 전세사기 피해자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2023년 봄부터 진행되어 온 저의 전세사기 (깡통전세) 경험담입니다. 2년이 지나 글을 쓰는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며,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작성하는 글입니다.
전세 사기를 알아차리고 난 후, 같은 피해자들과 오픈채팅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 주변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 전세사기에 관한 기사가 뜨면 피해자들이 멍청하다며 욕을 하는 댓글에 찬성 표시가 1000개를 훌쩍 넘었고,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이 제정된 당시에도 세금낭비라며 피해자들을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 여기는 시선에 저는 제 피해 사실을 주변에 조차 알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혹여나 나를 그렇게 바라보진 않을까, 혹은 타인의 타인까지의 귀에 들어가 제가 불쌍한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 스스로도 저를 그런 사람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나는 틀렸다. 내 선택은 실패했다. 나는 어리석다. 이건 내 잘못이다.'
저는 마음 깊은 고민은 때론 가장 가까운 사람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그리 가깝지는 않다 여기는 사람에게 더 잘 꺼내어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어렵게 이야기를 했던 한 지인에게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라는 대답을 면전에서 들은 후로는 더 마음을 닫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나가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친구 한 명에게 말을 하면 그 친구가 자신의 부모님, 혹은 자신의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이야기해 나에게는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타인이 '너 괜찮니'라고 물으며 만남이 시작되는 일도 약간은 버거웠습니다. '아무'는 아니지만 '아무'에게나 하고 싶지는 않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는 털어놓았습니다. 1년이 지난 후에는 부모님께도 말씀드릴 수 있었고요.)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경매가 개시 조차 되지 않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하필 집의 단점이 점점 크게 느껴지던 터라 그 집에 계속 사는 상상만으로도 지옥 같았습니다. 그 반지하 냄새를, 그 벌레들을, 그리고 그 집을 선택한 나를 감당하는 일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아주 약간은 더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으로 헤아려주신다면 감사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저를 먹어 살려야 하는 집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했습니다. 기어코 아침에 눈을 떠야 했고, 출근을 해야만 했습니다. 더 이상 무기력하게 지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이건 돈의 문제야. 돈 문제는 늘 내가 겪어 왔던 일이고 지금은 이걸 해결할 수 없으니까 그 밖의 것들을 챙기며 살자.'는 마음이 저를 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경매가 개시 되었고, 유찰이 반복되다 결국 집은 어느 낙찰자의 명의로 넘어갔습니다.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다음 낙찰자분도 꽤나 큰 금액의 대출을 끼고 집을 구매하셨더라고요.) 낙찰 이후 해야 할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포기하라는 말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자라는 마음에 인터넷에도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찾고 여러 기관에 물어가며 8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너는 그걸 잘하는 사람이라 시작해야만 해.
넌 대단해.
세상은 너에게 그것들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어.
지금 제 책상 옆에 붙어있는 글귀입니다. 제가 제게 쓴 짧은 응원의 메시지이자 제 의지입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해왔고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준 제가 대견하고 기특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한번 더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무슨 프롤로그가 이리도 거창하냐 물으신다면 저는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니 대답하겠습니다. 이 일은 제 30년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자 가장 큰 기회인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그저 시련과 악몽으로 치부하고 남은 삶을 원망으로 살아갈지, 반대로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로 삼을 것인지는 제가 하기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1살의 패기 넘치던 제가 했을 선택을 한번 더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좋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하는 선택을요.
분명 '전세사기'라는 큰 일은 안일하고 나태하게 그리고 '그렇게는 살지 말아야지'했던 삶을 결국 살고 있는 제게 벌어져야만 했을 일일 겁니다. 저라는 사람은 응당 전세사기를 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제대로 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벌어졌을 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했습니다. 혼자만 읽는 글은 아무리 잘 써도 나만의 일기일 뿐이니까요. 어떻게든 나아가보겠습니다. 20대 초반까지, 널뛰는 그래프의 인생 곡선을 살고 싶다는 철없는 소망을 품었었는데 30대가 되어서야 그 바람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전세사기 외에도 지금 제 인생에 벌어진 재밌는 사건들이 많은데 이 모든 것들을 브런치북을 통해 여러분께 전달하고 여러분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아니, 실은 그저 한 분이라도 제 얘기를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너진 집에서 피어나는 중입니다' 브런치북은 사건의 시간 순서에 따라 연재될 예정입니다.
응원과 댓글은 언제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