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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세사기 | 나를 울린 변호사들

전세사기 당한 것도 억울한데.. 왜 울리기까지 하세요

by 예지

이 이야기는

2023년 봄부터 진행되어 온

저의 전세사기(깡통전세)

경험담입니다.




그게 웃을 일인가요?


드디어 때가 왔다는 신호를 알아차리고는

가장 먼저 전세사기 피해센터에

법률 상담을 예약 했다.


실낱 같은 희망이었다.

전세사기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곳이라 들었으니까.


상담은 단 20분.

'너무 짧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안고

변호사 상담실로 향했다.


가장 먼저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을

했는지 물어왔다.


윗집 세입자가

4호 미충족으로 불인정 받은 이야기를 했고,

나도 같은 케이스라 지금은

피해자 인정이 안 될 확률이 높아

오늘은 법적 절차만

여쭤보러 왔다고 했다.


변호사는

법적 절차는 알고 계신대로라며,

민사로 보증금 반환 소송을 걸고

재산이 있으면 압류를 하고

없으면 돌려받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아주 빠르고 대충,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툭 내뱉었다.


나 :
그럼 제가 부동산을 상대로 소송하면...

변호사 :
할 수는 있는데, 안하시는게 나아요.
이긴 판례가 거의 없어요.

나 :
...그러면 제가 은행 대출이 있는데..
그건 회생을 하는게 나을까요?

변호사 :
젊은 분들 회생 많이하시죠.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하실거면 지금부터 준비하시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보증금 회수는 힘드실 것 같네요.


'네게 희망 같은건 사치야'라고 들렸다.


변호사는 덧붙여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아야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 조건이 안돼서..

기다렸다 하려고요"라 대답해도

변호사는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으세요"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내가 바란 건 소송을 도와달라는 것도,
돈을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내가 혼자 뭘 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것뿐인데.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짐을 싸며 푸념했다.


나 :
입주하고 4개월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거든요
당황스럽고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서 왔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나보네요

변호사 :
(웃으며) 1개월 만에 당한 사람도 있는데요?

나:
...네? (웃음이.. 나오세요?)


이 대화를 끝으로

15분만에 상담실을 나왔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의지는,

그렇게 말 몇 마디에 부서졌다.


이 상담을 위해 수련원에서 아이들도 뒤로하고

3시간 넘게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왔는데.


당장 진행할 수도 없는

피해자 인정을 받은 후에 고민하라는 말과

현재는 돈을 돌려받을

희망이 없다는 말 뿐이라니.


게다가 1개월만에 당한 피해자 얘기를 하면서..

웃어?


눈물이 났다.

자격지심인지 나의 못된 마음 때문인지

무시 당했다는 기분이 지워지질 않았다.


억지로 발걸음을 떼 센터를 나서서

꼴도 보기 싫은 그 집으로 돌아왔다.




법률 구조 공단..? 여기는 더 무서운데..



그리고 몇 주 뒤

법률 구조 공단에 상담 예약을 해

다른 변호사를 만났다.


긴장한 채 상담실에 들어갔다.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다.


또다시 무시당할까 두려웠고,

또다시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변호사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내 경우는 사기로 형사 사건 접수도 가능할 것 같다

희망적인 말씀을 하셨다.


다른 임차인들은 2년 이상 거주 하고 난 후에

임대인이 사라졌지만

나는 가장 마지막에 입주를 했고,

계약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의로 잠적을 한 것이니까

수사의 여지가 있을거라고 했다.


부동산과의 소송은

단체와 싸울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 없이는 힘들고,

민사는 이길 것이나

회수까지는 굉장히 긴 싸움이 될거다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개인 회생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레를 치시며 내 나이를 물었다.


"저.. 서른이요.."


회생은 절대 안된다고 하셨다.

최후의 보루로도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희망을 놓지 말라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법률적 지식 보다도

'괜찮다'는 전문가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너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용기의 말이.


몇 주 전과는 다르게

웃으며 상담실을 나설 수 있었다.




한계를 규정하지 않기



고등학생 때 법과 사회를 배우면서

법률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마음 속에선 '법'이라는 단어가

유독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누가 주눅들라고 한 적도 없고

법 앞에 서있었던 적도 없는데

나는 '전세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법'이 주는 중압감과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그 모든 낯섦과 막막함을 뒤로 하고

이제는 법을 마주하고 배워갈 차례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쉽지 않은 것을 해낼 때 나는 더 멋있으니까.


그게 나다운거니까.


오늘도 나와 나답기로 약속하고

두려웠던 것들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퇴거 명령'과 '이사'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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