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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세사기 | 건물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사람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과 부동산 인도명령 그리고 홀로 남다.

by 예지

이 이야기는 2023년 봄부터 진행되어 온

저의 전세사기(깡통전세) 경험담입니다.





드디어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을 하다



반신반의했다.


경매가 끝나 피해액이 확정이 되긴 했으나,

4호 조건(집주인의 세입자 기망 의도 입증)은

도대체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까.


이걸 충족할 수 있을 때

신청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알게 된 관리인과 집주인의 거짓말 같은걸

잘 증명하면 되지 않을까.


반나절 정도 고민을 하다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 건수가 급증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지금 신청해도

3개월 이상 걸린다나.


일단은

되든 안되든 신청을 하자.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되면 숨 돌릴 틈 생기는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탈탈 털어

메신저와 문자 캡처까지 첨부해

신청을 마쳤다.


피해자 신청 1차 불인정.jpg 결정 후 통지까지 꼬박 3개월 하고도 3주가 걸렸다.


그렇게 미뤘던 큰 산 하나를 넘었지만,

또 다른 산이

곧바로 내 앞에 놓였다.



부동산을 인도하라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을 마친 며칠 뒤,

내게 또 다른 현실이 닥쳐왔다.


낯선 번호에게서 온 문자였다.


“낙찰자의 대리인입니다.
ㅇ월 ㅇ일 잔금을 치르면
집을 비워주셔야 합니다.
이사 날짜를 정해서 알려주세요”


생각보다 더 이른 연락이었다.


배당 요구를 신청했기에

결국 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최우선 변제금을 제외하고는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 한 상황이었기에

보증금을 다 돌려받은 것이 아니니

집을 점유하고 버티라는

온라인의 글들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최대한 버텨보기로 하고

문자를 무시했다.


‘쫓겨나는 것도 억울한데, 이사는 또 어디로 가라고. 이사비라도 받아야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찌 보면 죄 없는 낙찰자를 괴롭히는 것 같아

마음이 물렁해졌다가도,

협박식으로 보내오는 문자를 읽고 있으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협박을 해?'

하는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어째서 이 집의 주인이라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못된 걸까.


SE-d4e81c06-0294-4c34-ace0-c7b4744b3f42.png
SE-9d7cadce-3166-45fe-a3dc-a64e85182c85.png 누가보면 저한테 돈 주고 나가라고 하는 줄 알겠어요.
SE-38f8664a-4dcb-4c93-b99c-27a745751d55.png 법원 통지도 없는데 그 사이에 문자를 몇 통 했더라 .. 저도 이사비 주면 나갈게요




문자로는 강하게 굴었지만,

사람들이 집을 드나드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문고리를 확인했다.


벌렁거리던 심장은

단단히 잠긴 잠금장치를 눈으로 확인해야만

진정이 되었다.


혹시나 우리 집 문을 두드리진 않을까,

혹은 법원에서 또 무슨 얘기를 하러 온 건 아닐까,

밖에 나가면 해코지를 하려는 건 아닐까 하며

숨소리라도 들릴세라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며칠 뒤 법원으로부터

인도 명령 소장을 받고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잠시나마

합법적으로 집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일이었다.


2주쯤 지났을까,

이변 없이 부동산 인도 명령이 떨어졌다.


SE-e9e99479-0fbf-42a3-999e-4187dd18fc6d.jpg 강제 퇴거 명령까지 받을까 고민하다, 달라는 게 없을 것 같아 낙찰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무너진 집에 남은 마지막 사람



그쯤

다른 세입자 분들은

하나 둘 이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의 이사 일정을 여쭤보니

다들 내 예상보다

일찍 이사를 결정하셨다.


어쩌다 보니

그 건물에서 유일하게 혼자 살고 있던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


이사 갈 집도 없이

이사 갈 준비를 했다.


늘 켜져 있던 옆집과 윗집의 불빛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복도를 지날 때 켜지던 보조등도

작동을 멈췄다.


이젠 그 작은 불빛조차,

내 길을 밝혀주지 않았다.


텅 빈 건물은

어둡고 고요했다.


KakaoTalk_20250722_231259405_01.jpg 집으로 돌아오는 길, 쌓인 눈 위엔 내 발자국 뿐이었다.

"이 건물에 혼자 살아요?

건물이 조용하네요”


에어컨을 철거하러 오신 기사님이 물었을 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스 점검 담당자님도,

짐을 빼는 세입자분들도 나를 보며

다들 똑같이 말했다.


“아가씨 혼자 무섭겠어요.

문 잘 걸어 잠그고 있어요.”


타인의 걱정 어린 마음을 받을 때까지는

훈훈했다.

이게 이웃의 정이구나.


허나 매일 밤이 되면

어둠과 적막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진짜 무서웠다.


매일 밤, 불안에 떨다 지쳐 잠들었다.


하지만 하루 월세라도 아껴야 한다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버텨냈다.


만족스러운 집을 구하기 전까진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그래서...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또다시 부동산의 문을 두드렸다.





* 참고할 점


경매 종료로 퇴거하셔야 할 경우,

강제 퇴거 명령을 받으시길 추천 드립니다.


퇴거 명령을 받고 이사를 나오게 되면

지자체 '주거 지원' 대상에 해당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매입 임대 주택 우선 입주, 월세 지원 등

지원이 필요하신 경우 상담을 받아보세요.


저는 이사 후에 알게 되어 지원 받지 못했지만,

복지과 담당자님께서

제 상황을 고려해서 상담해주시더라고요.


저는 120 다산 콜센터에 전화해서

복지과 담당자님과 연결하여 상담했습니다.




다음 편에 '이사'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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