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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촉발 노란초 Jan 21. 2020

2) 새로운 인류의 탄생

정리했던 기술트랜드 2019 시리즈 3. 바이오

"나는 유전자 분석으로 암을 치료한 최초의 사람이거나 이런 방법을 썼음에도 죽은 거의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2011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췌장암 원인을 밝히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하면서 남긴 말이다. 당시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만달러, 약 1억원에 달했다. 잡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고 그들은 그의 변이 유전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몸 상태는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고, 치료할 수 있는 약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같은 해 10월 사망했다. 그렇게 잡스는 떠났지만 그가 시도했던 유전자 분석 기술을 이듬해 2012년부터 병원 진료에 활발히 활용되기 시작했다.


유전자 분석은 크게 두 가지 기술로 설명할 수 있다. DNA 염기 서열을 읽어 유전정보를 추출하는 유전자 ‘해독(sequencing)’ 기술과 유전 정보를 필요한 용도로 가공하는 유전자 ‘해석(interpretation)’ 기술이다. 2003년 처음 시도했던 유전자 해독에는 27억달러(약 3조원)가 소모됐으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해독 비용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2017년 1월 유전자 분석 장비 업체 일루미나(Illumina)는 유전자 분석 장비 노바섹(Novaseq)를 내놓으며 “이제 약 100달러(약 12만원)에 개인 유전자 지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해독기를 통해 얻은 유전정보는 유전자 해석 기술로 다시 활용된다. 유전자 해석 기술은 가공 전 정보인 유전정보에 다양한 유전기술이 가미돼 탄생한다. 국가나 단체마다 서로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유전 정보에 접근하기 때문에 유전자 해석 기술은 서로 다르다. 질병을 분석하기 위한 해석 기술도 있을 수 있고 치료하기 위한 기술이 있을 수 있어 해석 기술끼리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2003년 인간의 전체 게놈 정보를 분석하려는 '게놈 프로젝트(HGP·Human Genome Project)'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과학계와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30억쌍의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비용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결국 더 싸게 더 빨리 하지만 정밀하게 해독하는 기술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한 번에 여러 개의 DNA를 동시에 해독하는 ‘병열 해독 기법’이 개발되면서 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분석해 적합한 항암제를 찾아주는 파운데이션메디신의 서비스는 10만달러, 우리 돈으로 1억원에서 500만원 선으로 20분의 1로 줄었다.


잡스 사후 유전체 진단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함께 많은 투자가 이뤄지면서 기술 개발 속도가 점점 빨라져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알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독된 개인 유전자는 개인에게 특정 질환이 발생한 위험도를 미리 알아내거나 개인의 체질에 맞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개인별 맞춤의료”가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유방 절제술이다. 게놈프로젝트로 확인된 인간의 표준 유전자와 졸리의 DMA 염기서열을 비교했을 때, '브라카(BRCA)1' 유전자 변이가 발견돼 유방암 예방을 위해 절제술을 받은 것이다. 이 소식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유전자분석을 통한 예방의료에 대한 인식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감한 선택은 뉴욕 타임즈에 기고되면서 예방의료가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기고문이 발표된 이후 영국 내 21개 대학 의학 센터에서 유전자 분석과 절제 수술을 받은 여성의 숫자가 기존 대비 2.5배 급증했으며 약 5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유전자 분석과 수술 환자들의 숫자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이러한 변화가 결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님을 보여 주는 사례다.


 유전자 분석은 암 등 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질환 자체를 없애는 데에도 이용된다. 말라리아는 아직도 후진국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 중 하나다. 말라리아는 주로 매개체인 모기에 물려서 발병하는 경우가 많아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수컷 모기에게 방사선을 처리해 생식 능력을 없애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나중에 태어날 알에서만 작동하는 자살 유전자 아니면 날개만 망가뜨리는 유전자 등을 넣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아무리 해충이라도 개체수가 줄어들면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적극 시도되기 어려웠다. 최근 이러한 생태 파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2015년 미국 UC 어바인의 제임스 교수는 말라리아에 저항성을 갖는 모기를 조작하였다. 즉 모기는 그대로 두면서 말라리아만 막을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 이러한 획기적인 방법은 유전자 분석 및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유전자 조작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생태계 파괴 가능성 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유전체 데이터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약 200만명. 하지만 더욱 더 많은 환자 데이터가 구축되어야 그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도 손쉽게 유전자 분석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저렴한 비용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 바이오 기술 역사에서 세번째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분석 비용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 분석 비용이 무어의 법칙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심리적인 최저 비용인 1,000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들은 Illumina, Life Technology, 454 Life Sciences, Pacific Biosciences 등이 있다. 454 Life Sciences의 경우 2007년 10만 달러였던 비용이 2011년 1만 달러 대로 줄었으며 2015년에는 4,0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시장을 주도해온 Illumina는 2014년 ‘HiSeQ X10’이라는 유전자 분석 시스템을 출시했고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분석비용이 1,000달러 선이다. 제이 플래틀리 Illumina 회장은 “1,000달러로 게놈을 분석하는 것은 인간 게놈 분석의 ‘마하의 한계’를 허무는 것으로 정신적인 이정표를 세우는 것일 뿐 아니라 향후 전례가 없는 무수히 많은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이후에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로 매우 흥분해 있다”고 언급했다. 분석 비용 하락은 바이오 기술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초석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유전자 분석 진단 저변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이다.


유전자 분석이 실질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유전자 조작이나 복제 또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유전자 분석의 결과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해 맞춤형 신약을 개발하는 것부터 ‘신체 개량’을 목표로 기술이 개발되는 것, 바로 그것이다.


2015년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를 유전자 가위로 편집했다. 여기서 편집했다는 의미는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뒤 자궁에 착상하는 실험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8년 1월, 중국에서 최초로 체세포 핵치환 복제기술을 이용한 원숭이 두 마리가 태어났다. 복제양 돌리 탄생 이후 22년 만이다. 이 복제원숭이들에게는 ‘중화(中華)’의 한 글자씩을 따서 ‘중중(Zhong Zhong)’과 ‘화화(Hua Hu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이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영장류 원숭이를 완벽하게 복제해냈다는 소식은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영화 가타카에서 나왔던 것처럼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아이의 성별, 머리색, 피부색, 성격, 지능 등을 선택해 만들어내는 “디자이너 베이비”, “세포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장기 이식, 영화 아일랜드에서 나온 것처럼 “복제인간(클론)”을 활용한 장기 이식 및 대리모, DNA의 문제점을 고친 “재조합 DNA”을 통해 소인증 치료제인 생장호르몬, 간염 예방을 위한 B형 간염 백신과 같은 “단백질 생산”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이처럼 유전자 조작기술이 가능한 이유는 “유전자 가위”덕분이다.

유전자 가위란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부위를 자르는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를 활용해 유전자를 재배열하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을 말한다. 1,2,3세대 유전자가위가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단 4개의 나라에서만 보유한 기술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생명윤리법 규제와 시장 여건으로 인해서 국내보다 해외에서 실험하고 있어 학계에서는 정부측에 관련해서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의 경우 유전자 가위 기술 확보가 중요한 유전자 치료제/세포 치료제 시장이 연 30% 가깝게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세포치료제는 살아있는 세포를 치료에 이용하는 것이다. 1990~2000년대에 허가받은 세포치료제는 주로 피부세포나 연골세포를 이용한 피부재생·연골결손 치료제였으나, 최근에는 암, 퇴행성 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줄기세포 및 면역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들이 개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세포치료나 유전자치료의 경우 기존의 치료제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므로 암뿐만 아니라 신경퇴행성 질환, 유전병 등 난치성 질환의 치료를 가능하게 할 기술로 기대되어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세포치료제나 유전자치료제는 연구개발과 상업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체내에서의 효과 발현 미흡, 생명윤리와 관련된 이슈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포 배양·조작 기술, 유전자 분석·조작 기술 등의 발전으로 기술적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고 있다. 

세포치료제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술 및 상업화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이슈가 있다. 먼저 현재까지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의 경우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 효능에 의존한다는 점, 상용화 되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 등이다. 세포치료제는 기존 의약품과 비교해 가장 ‘개인 맞춤형’에 근접한 치료제라는 점에서 병원 시술 과정이 중심이 되며, 기존 의약품과는 다른 사업 모델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 병원 뿐 아니라 기반기술을 보유한 연구기관, 재료, 의료기기 등 연구개발 인프라에 해당하는 주체 등과의 협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전자 분석의 비용이 낮춰지고 유전자 조작이 쉬워지고 복제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도 더 격해지고 있다. 인간 스스로 신이 되는 “호모데우스”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세계미래회의(WFS)에 따르면 2025년 유전자 기술이 20세기 미국·소련 우주전쟁처럼 발전할 것으로 예측했다. 

 고령화 인구의 증가로 건강과 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초고속 유전자 해독 기술의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체내외 기관을 유전자 조작 또는 복제를 통해 대체하는 시대. 그 시대가 오면 과연 지금의 인간과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인간종 “포스트 휴먼”의 탄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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